폴 오스터의 초기 대표작인 <뉴욕 3부작> 중 첫 번째 에피소드 <유리의 도시>가 그래픽 노블로 다시 태어났다. 세상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감추어버린 한 남자가 살아가는, 미로와 같은 도시로서의 뉴욕이 종이 위에서 그림으로 그려지고, (소설에서) 선택된 언어들로 되살아난다. 만화가로서는 처음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쥐>의 아트 슈피겔만이 기획에 참여한 작품이기도 하다.
뉴욕에 사는 소설가 퀸은 아내와 아이를 잃고 윌리엄 윌슨이라는 필명으로 탐정소설을 쓴다. 퀸은 한밤중에 폴 오스터라는 이름의 탐정을 찾는, 잘못 걸린 전화를 받는데, 반복되는 잘못 걸린 전화에 그는 폴 오스터라는 사립탐정인 척하고 의뢰인을 만나 사건을 맡게 된다.
폴 오스터의 원작은 폴 카라식과 데이비드 마추켈리에 의해 해체되고 다시 쌓아올려지는 듯한 변신을 통해 그래픽 노블 <유리의 도시>로 다시 태어났다. 사각형의 프레임은 창문, 감옥의 문, 도시의 구역, 빙고판으로 확장되어나가고, 엄격한 직선의 총집합인 뉴욕을 구성한다. 그래픽 노블로 보는 <유리의 도시> 속 인물들은 레이먼드 챈들러가 쓴 탐정시리즈물의 필립 말로우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을 소설에서보다 더 닮아 있다. 탐정을 자칭하게 되는 <유리의 도시> 주인공 퀸의 사건 탐색은 사적인 탐색으로 변모한다. 사건 해결과 동시에 도덕의 혼란, 불확실성, 무의미가 드러나며 거대한 도시의 신화가 탄생한다. 그래픽 노블 <유리의 도시>는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폴 오스터의 원작을 아는 사람에게나 모르는 사람에게나 진귀한 경험이 되어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