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신경증적 뉴요커, 소심한 유대인의 대명사, 우디 앨런 영화제가 4월22일부터 28일까지 필름포럼에서 열린다. 슬랩스틱코미디에서 일명 ‘도시극’에 이르기까지, 그는 스스로 시나리오를 쓰고 주인공이 되어 마치 자신의 가치관과 삶의 태도를 반영하는 듯한 남성 캐릭터를 끊임없이 창조하고 풍자해왔다. 이 유사 우디 앨런들은 정서불안과 애정결핍에 시달리며 ‘쉴새없이 수다를 떤다, 고로 존재한다’.
아카데미 감독상, 작품상, 각본상, 여우주연상(다이앤 키튼) 수상작인 <애니 홀>(1977)은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희극작가인 남자와 가수가 꿈인 여자의 로맨틱코미디다. 여전히 배경은 뉴욕이며, 영화의 대부분이 두 남녀 사이를 오가는 부조리한 대화들로 채워진다. 무엇보다 인물들이 자신의 과거를 훔쳐보는 설정이나 화면 밖을 향해 말을 거는 모습, 애니메이션 삽입, 과감한 화면분할 등의 형식적인 실험으로 가득하다. <애니 홀>과 더불어 우디 앨런 특유의 대사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맨하탄>(1979) 역시 엇갈리는 남녀관계와 소심한 남자주인공의 내면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방송작가인 남자를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이 얽혀 우정을 나누고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속에는 우디 앨런의 영화적 신념 혹은 그의 취향이 집결되어 있다. 이를테면 누군가가 ‘폭력보다는 풍자가 훨씬 낫지’라고 주장하는 장면이나, 남자주인공이 잉마르 베리만을 예민하게 옹호하는 모습, 그리고 그가 자신보다 30년 이상 어린 여자에게 사랑을 느껴가는 과정 등은 그저 영화 속의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흑백으로 촬영된 도시의 배경, 그리고 이제는 중년 배우가 된 다이앤 키튼과 메릴 스트립의 젊은 매력이 참으로 아름다우면서도 쓸쓸하게 다가온다. 한편, <카이로의 붉은 장미>(1985)에서는 스크린 속 세상과 스크린 밖 현실을 넘나드는 로맨스가 펼쳐진다. 평범한 삶에 지친 웨이트리스(미아 패로)는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남자주인공과 사랑에 빠진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삶은 영화가 되고 영화는 삶이 된다. 우디 앨런의 영화적 상상력이 극대화된 꿈같은 작품이지만, 그의 작품 세계에서 순진한 해피엔딩을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특정한 정체성없이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인간을 그린 <젤리그>(1983)에서도 우디 앨런은 가짜 다큐멘터리와 뉴스 필름 등을 이용하여 현실과 허구를 가로지른다.
이 밖에도 화려해진 할리우드 스타들의 단역 시절을 보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성공한 영화감독이 과거를 되돌아보는 영화 <스타더스트 메모리즈>(1980)에서는 샤론 스톤을, 연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남미의 바나나 공화국에서 게릴라군의 리더가 되는 남자에 대한 풍자극 <바나나 공화국>(1971)에서는 실버스터 스탤론을 만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섹스에 관해 알고 싶은 모든 것(그러나 차마 묻기를 두려워했던 것들)>(1972)이라는 황당무계한 제목의 작품은 섹스에 대한 7개의 질문과 그에 대한 우디 앨런식 답으로 채워진다. 우리는 그저 그가 온몸으로 들려주는 기발하면서도 진지한 대답들을 지켜보며 웃어주면 된다. 가끔은 그의 소심함을 연민하고, 가끔은 그의 비겁함에 낄낄거리고, 가끔은 그의 송곳에 찔려 아파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