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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여배우들의 사담, <데브라 윙거를 찾아서>
박혜명 2006-04-18

로잔나 아퀘트가 태어나서 처음 본 영화는 <분홍신>이다. 데브라 윙거가 주연한 이 영화는, 사랑에 빠진 발레리나가 현모양처가 되라는 남자의 요구와 일을 하고 싶은 자신의 욕구 사이에서 갈등하다 자살한다는 줄거리를 가졌다. 로잔나 아퀘트는 자문한다. “그 둘을 다 하는 것은 가능할까?” <데브라 윙거를 찾아서>는 여배우와 엄마로서 살아가는 문제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데브라 윙거…>를 보는 가장 큰 재미는 내로라하는 할리우드 여배우들의 대거 출연이다. 기네스 팰트로, 멕 라이언, 샐마 헤이엑, 다이앤 레인, 샤론 스톤, 우피 골드버그, 홀리 헌터, 프랜시스 맥도먼드, 샬롯 램플링, 제인 폰다,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등이 아퀘트의 인터뷰에 응해 사적인 경험과 의견을 털어놓는다. 멕 라이언은 아이가 5살이 될 때까지 촬영장에 늘 데리고 다녔고 아이가 학교에 들어간 이후로는 영화를 1년에 한편만 찍기로 타협을 보았다. 우피 골드버그는 일을 더 중시하다 딸과의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간극을 만들고 말았다. 가정 때문에 일에 소홀해지면 여배우로서 게으른 자신을 자책하고, 일 때문에 가정에 소홀해지면 엄마로서 자격없는 자신을 자책한다. “끝없는 죄책감뿐”이라는 어느 여배우의 말은 공감을 끌어낼 만하다.

아퀘트의 주제는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더라도 꽃다운 나이를 지난 그녀들은 자신의 열정과 인생 경험을 쏟아부을 작품이나 캐릭터를 만나기 어렵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멋진 중년 여배우들인 수잔 서랜던이나 메릴 스트립은 그녀들에게도 똑같은 우상이다. “마흔이 되고 나니까 몸이 편해졌다. 배우로서의 재능도 더 풍성해졌고 그 재능을 쓰고 싶다.”(홀리 헌터) “오래 버티는 게 최고다.”(우피 골드버그)

문제는 다시 여배우를 성적인 대상으로만 한정하는 풍토로 옮겨진다. <데브라 윙거…>는 결국 여배우란 이름으로 거론할 수 있는 모든 주제를 유영한다. 아퀘트는 고급 레스토랑이나 호텔방의 푹신한 소파에 앉아 인터뷰이들이 쏟아놓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 중요하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다큐멘터리의 엄격하고 날카로운 주제의식은 따라서 없다. 할리우드 여배우들의 사담을 엿듣는다는 것이 유일한 장점이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가 다른 영화나 다큐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점이라 꽤 큰 장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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