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실한 기독교도 에밀리(제니퍼 카펜더)는 전액 장학생으로 대학에 입학한다. 에밀리는 가족과 처음으로 멀리 떨어져 생활해야 하는 점이 마음에 걸리지만 어려서부터 꿈이었던 선생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한다. 무언가 타는 냄새 때문에 새벽 3시에 눈을 뜬 그는 헛것을 보고, 환청을 듣고, 몸의 근육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끔찍한 경험을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이 심해지자 학교까지 포기하고 병원을 찾지만, 의사들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결국 에밀리의 부모는 신부 리처드 무어(톰 윌킨슨)를 찾아가 엑소시즘을 청한다. 그러나 신부가 엑소시즘을 행한 이후 에밀리는 죽고, 신부는 과실치사 혐의로 법정에 선다.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는 1976년 독일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악령을 내쫓는 의식인 엑소시즘을 다루는 영화는 1973년 <엑소시스트>가 만들어놓은 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엑소시즘 장면이나, 괴로워하는 소녀의 모습도 <엑소시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감독 스콧 데릭슨은 악령 들린 소녀가 겪게 된 무서운 경험담이 아니라 엑소시즘을 한 신부가 법정에 서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에 무게중심을 두고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를 완성했다.
때문에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는 선과 악이 대립하는 전형적인 공포물과는 다르다. 영화는 에밀리가 어떻게 귀신에 들렸는지 그리고 얼마나 흉측하게 변해가는지에는 결코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악령에 들린 에밀리의 고통스런 모습을 볼 수 있는 순간은 목사를 비롯해 재판에 참여한 이들이 당시를 회상할 때뿐이다. 변호사 에린(로라 리니)의 질문이 끝나면, 에밀리의 끔찍한 사진을 보여주고, 신부가 증인석에 오르면 엑소시즘 현장이 겹치는 식이다. 그러니 목이 180도 돌아가는 식의 충격적인 장면을 기대한다면 크게 실망할지도 모른다. 감독은 이런 구성을 택한 이유를 “엑소시즘과 악마에 관한 이야기가 전형적인 호러영화의 소재 이상으로 보여지길 바랐다. 그래서 무섭고 충격적인 장면을 냉정한 재판장면과 교차로 편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신부의 변호를 맡은 에린의 입을 통해 “에밀리 로즈를 죽인 건 누구인가”와 “악마가 실제 존재하는가”를 진지하게 묻던 영화가 내놓은 결론은 다소 실망스럽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당연한 이야기가 가져온 공허함은 공포영화의 다른 가능성을 엿본 감독의 재기와 배우들의 열연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