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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범’들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다, <천국을 향하여>
문석 2006-04-11

온몸에 폭탄을 감고 무고한 인파 속으로 뛰어들어 자폭을 감행하는 자들은 대체 어떤 존재인가. 종교적 신념으로 무장한 광신도인가, 정치적 증오심으로 똘똘 뭉친 냉혈한인가. 자살 테러 임무를 맡은 팔레스타인 청년 두명의 이틀 동안을 그리는 <천국을 향하여>는 테러 행위 자체나 그 결과보다는 그 동기에 초점을 맞추며 ‘테러범’들의 내면 속으로 들어간다.

이스라엘이 강제로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지대, 흔히 웨스트 뱅크라 불리는 이곳에는 팔레스타인들이 숨죽인 채 살아가고 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곳곳을 누비고 있어 도시 전체가 ‘거대한 감옥’인 이곳의 삶은 척박하기 짝이 없다. 혈기 왕성한 20대 청년 사이드(카이스 나셰프)와 할레드(알리 술리만)가 느끼는 갑갑함은 더욱 심하다. 숨막히고 지루한 나날을 살아가던 이들은 어느 날 비밀 결사조직으로부터 “너에게 임무가 주어졌다”는 통보를 받는다. 이들이 맡은 임무는 이스라엘의 텔아비브로 잠입해 자살폭탄 공격을 감행하는 일이다. 게다가 결행일은 바로 다음날이다. 사이드와 할레드는 ‘결국 올 것이 왔다’는 투로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만,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마침내 다음날, 이들은 이스라엘 국경을 넘지만 일이 틀어지면서 사이드와 할레드는 헤어지게 된다. 할레드는 조직과 다시 접선하지만 사이드는 연락이 두절된 것이다. 조직은 사이드가 배신할지 모른다고 의심하고, 할레드는 오랜 친구인 사이드를 찾아 나선다.

자살 테러를 감행하는 모든 이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사이드와 할레드의 경우는 종교적 열정에 사로잡힌 것도 아니요, 정치적 증오심이 극악스러운 것도 아닌 듯 보인다. 그들의 알라신에 대한 믿음과 이스라엘에 대한 혐오감은 이스라엘 점령지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평균치를 크게 넘어서지 않는다. 그런데도 두 청년이 조직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려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사이드에게는 가족사의 비극이라는 약점이 있고, 할레드에게도 뭔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러한 개인적인 사정보다는 그들의 사회적 존재 조건 자체가 이 극단적인 행동을 수긍하도록 했음을 보여준다. 그들의 ‘출정’을 앞두고 비밀조직의 우두머리는 알라신의 뜻을 목숨 바쳐 수행하는 순교를 통해 내세에서 천국에 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이드와 할레드는 ‘순교자’라는 호칭이나 내세의 영광을 원하지 않는다. “이 지옥에서 사느니 상상 속의 천국을 믿는 쪽을 택하겠어”라는 할레드의 이야기처럼, 그들이 테러라는 길을 선택하는 것은 옥죄고 짓눌리는 현실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두 청년, 특히 사이드의 실존적 고뇌에 초점을 맞추는 탓에 이 영화는 존재적 또는 심리적 스릴러로 읽히기도 한다. 중반부 이후 이 영화가 뿜어내는 서스펜스는 주인공들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 자칫하면 주위 사람들까지 산산조각낼 수 있는 ‘인간폭탄’의 방황은 시종 긴장감을 자아낸다. 이 영화는 사소한 폭력의 이미지도 드러내지 않지만, 이러한 내밀한 묘사 덕분에 폭력에 대한 엄청난 공포심을 만들어낸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정치적 함의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흥미로운 점은 팔레스타인 출신 감독이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을 일방적으로 두둔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의 폭력성은 지나치는 대화에서 두루뭉수리 표현되거나 검문소에서 정면으로 대립되는 강렬한 시선으로 묘사된다. 이 영화에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내면화된 존재로만 드러난다. 차라리 비판은 팔레스타인으로 향하는 것 같다. 사이드를 좋아하는 수하(루브나 아자발)는 반이스라엘 투쟁을 펼친 팔레스타인 영웅의 딸임에도 그가 임무를 맡게 된 것을 눈치채고 ‘폭력은 폭력을 낳을 뿐’이라고 비판한다. 그녀는 또 팔레스타인 조직이 배신자를 잔인하게 처단한다는 사실 또한 비난한다.

하지만 <천국을 향하여>가 좀더 강조하는 바는 이 아수라장에서 선과 악, 참과 거짓을 명확히 구별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수하는 사이드와 함께 사진관을 찾았다가 진열대에 꽂힌 비디오테이프의 정체를 궁금해한다. 이 테이프에는 자살 공격에 나서는 전사들이 출정에 앞서 굳은 의지를 드러내는 모습이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에 대한 반역자의 처단장면을 담은 테이프 또한 존재한다. “판매도 하고 대여도 되는” 이들 비디오테이프처럼 영화 곳곳에 담겨 있는 이 혼탁한 아이러니의 시선은 부조리한 세상을 바라보는 유일한 앵글이다. 인물들과 거리를 두려는 연출 의도가 명확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모습이 가슴 저리게 느껴지는 건 그 부조리함 때문일 것이다.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네덜란드에서 유학한 하니 아부 아사드 감독은 이 영화를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실제로 대립하고 있는 웨스트 뱅크의 나블루스에서 찍었다. 그는 영화의 배경장소에서 촬영을 진행한 것에 대해 “나는 이 영화를 가상의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지만, 동시에 리얼리티와 가까이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제작진은 이스라엘 군대의 로켓이 바로 옆에서 터지는 광경을 봐야 했을 뿐 아니라, 이 영화가 친이스라엘영화라고 판단한 팔레스타인의 한 결사조직으로부터 위협을 받기도 했다. 결국 촬영은 나사렛으로 옮겨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아부 아사드 감독은 “나는 살인을 반대한다. 또 자살 공격이 중단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난 자살폭탄 공격을 수행하는 이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내게 그것은 극단적인 상황에 대한 지극히 인간적인 반응이다”라며 이 영화의 제작배경을 설명했다. 지난해 베를린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던 <천국을 향하여>는 올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지명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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