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영화의 최대 관문은? 만약 당신이 ‘부산국제영화제’라고 답했다면 그건 절반짜리 정답에 불과하다. 미학 또는 축제의 관점에서라면 당연히 부산영화제가 아시아를 대표하겠지만, 영화산업에선 단연 홍콩필름마트가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23일 4일간의 일정을 마친 홍콩필름마트는 나날이 성장해가는 아시아영화의 힘과 이에 대한 세계의 관심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28개국에서 408개 업체가 참여해 그동안 열린 행사 중 가장 큰 규모로 기록되는 이번 필름마트는 10회째를 맞아 몸집을 더욱 부풀렸다. 지난해부터 신설된 HAF(홍콩 아시아 필름 파이낸싱 포럼. 부산영화제의 PPP와 같은 성격)가 2회째를 맞았을 뿐 아니라 음악산업의 마켓인 홍콩 뮤직페어까지 신설한 것이다. 이들 행사를 주관하는 홍콩무역발전국의 레이먼드 입 부총재는 “논스톱 교역 플랫폼”이라는 표현을 쓰며 이번 행사의 성격을 분명히 했다. 아시아 지역의 영화 등 영상물 그리고 음악 콘텐츠를 홍콩 중심으로 거래하자는 것이다. 2월 베를린영화제 기간 중 열리는 유럽필름마켓(EFM)과 5월 칸영화제 때 거행되는 칸 마켓 사이에 개최되는 탓에 실제로 많은 계약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한계를 갖고 있음에도 이처럼 아시아와 세계의 영화 관계자들이 홍콩에 한데 집결하는 이유는 중국이라는 배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홍콩필름마트에서 오가는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은 13억 인구가 존재하는 거대한 중국시장으로 진입하려는 쪽이거나, <영웅> <연인> <무극> 등의 대작으로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중국영화를 가져가려는 쪽임에 틀림없다. 때문에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해인 1997년 이 마켓이 처음 열렸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해 보이기까지 한다.
행사의 열기는 중국에 대한 높은 관심 반영
지난해에 비해 덜 떠들썩했다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올해 이곳을 찾은 방문객이 지난해보다 1천명 이상 많은 4천명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중국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가기 때문이다. 특히 2004년 중국-홍콩 경제무역협력강화협정(CEPA) 체결 이후 홍콩과 중국은 더욱 긴밀해졌다. 중국 정부는 입장료 수입을 중국쪽과 외국 영화사가 나눠 갖는 ‘분장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외화를 1년에 20편으로 묶어놓고 있는데, 이 협정 이전까지 홍콩영화는 이 쿼터의 제약을 받는 외화로 분류됐다. 하지만 CEPA는 홍콩영화를 중국영화와 동일하게 간주하도록 해 홍콩영화는 수량의 제한없이 중국시장에 소개되고 있다. 또 지난해부터 홍콩 자본이 100% 중국 극장에 투자할 수 있게 됐다. 결국 홍콩은 중국시장에 관심을 두고 있는 여타 국가의 관계자들로선 일종의 대기처가 된 셈이다.
필름마트가 23일 밝힌 설문조사 결과 또한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행사 기간 중 이곳을 찾은 관계자 34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75%가 “홍콩이 중국과의 합작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최고의 플랫폼”이라고 답했다. 또 부스를 연 영화업체의 74%와 방문객의 64%가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필름마켓으로 필름마트를 꼽았다.
한국 업체들에도 관심 쏟아져
물론 홍콩필름마트에서 홍콩과 중국 업체만 관심을 얻은 것은 아니다. 한국 업체들도 큰 관심권 안에 있었다. CJ엔터테인먼트, 쇼박스, MK픽처스가 독립적으로 부스를 차렸고, IHQ, 롯데엔터테인먼트, 튜브엔터테인먼트, 미로비젼, 씨네클릭 아시아 등이 영화진흥위원회 부스 안에 사무실을 두고 바이어들을 상대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실제 계약이 이뤄진 것은 극히 적지만, 예정에 없던 상담이 꽤 많이 이뤄졌고, 대부분 칸 마켓에서 다시 만날 약속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영화 후반작업 업체인 HFR과 방송사인 MBC도 독자적인 부스를 만들어 눈길을 끌었다. 특히 디지털 색보정(DI) 등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HFR은 영화마켓에 처음 모습을 보였다. *** 이사(이름은 내일 확인해주겠음)는 “여기에 나와보니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번 참가는 어떤 성과를 기대한다기보다는 경험 차원에서 이뤄진 것인데, 중국이나 타이 업체에서 진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MBC 또한 한류의 주역인 드라마를 적극적으로 판매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배급사 포르티시모의 마이클 베르너 대표는 “한국영화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더불어 열린 세미나에서 아시아의 영화 제작자들은 아시아영화의 활황을 반기지만, 지나친 편중현상을 경계했다. 홍콩 어플로즈 픽처스의 진가신 감독은 중국 본토의 거대 영화에 모든 자원이 집중됨으로써 “아시아의 중저예산 영화 제작자는 위기를 맞았다”고 토로했다. 이주익 보람영화사 대표도 “중국 감독 5%만이 돈을 가져가고 나머지는 어려움을 겪는 ‘승자독식’이 판치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의 이점은 대단하다”
레이먼드 입 홍콩무역발전국 부총재 인터뷰
-홍콩필름마트가 10주년을 맞았다. =필름마트는 그동안 아시아 영화산업, 연예산업의 플랫폼 역할을 해왔다. 10년 전만 해도 아시아 지역에는 영화와 관련된 마켓이 없었다. 당시 아시아의 영화 바이어들은 미국영화와 유럽영화를 사기 위해 미국, 유럽의 마켓을 직접 가야 했다. 그러나 1997년 필름마트가 생기면서 유럽과 미국의 프로듀서와 배급자들이 홍콩으로 찾아왔다. 또 아시아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필름마트는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97년 당시 필름마트에 참가한 업체는 70개뿐이었지만, 올해는 400개가 넘는 업체가 참여했다. 필름마트는 이제 칸 마켓, 아메리칸필름마켓(AFM)과 함께 황금의 삼각형을 이루게 됐다.
-홍콩 영화계의 호조는 중국시장과도 관련있는 듯 보인다. =지난해 중국 박스오피스에서 최고 흥행을 기록한 10편 중 6편이 홍콩영화거나 홍콩과 합작한 중국영화였다. 홍콩의 이점은 대단하다. 우리는 중국 문화를 잘 이해하고 그들이 원하는 바를 어떤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잘 알고 있다. 또 우리는 중국 영화인들보다 세계시장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게다가 2004년 CEPA가 체결되면서 홍콩영화는 외국영화 쿼터 제한과 무관하게 중국시장에서 상영될 수 있게 됐다. 올해 들어서는 홍콩 자본 100%로 극장을 설립할 수 있게 됐다. 이제 중국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훨씬 좋아진 것이다.
-올해부터 부산에서도 아시아필름마켓이 열린다. =우리도 아시아필름마켓이 잘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문제는 영화 바이어들이 그리 많이 돌아다니지 않는다는 점이다. 1997년 우리가 필름마트를 열었을 때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이 행사를 열지 말라고 충고했다. 사실 마켓간의 경쟁은 치열하다. 이 속에서 밀라노필름마켓이 없어졌다. 불행한 일이지만 마켓 또한 승자가 독식하는 상황이다. 아시아필름마켓은 이 엄청나게 힘든 장에 뛰어든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