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주간 야구 때문에 울고 웃었다. 4년 전 월드컵 이후로 이처럼 순간순간 마음을 졸이긴 처음이다. 미국전 승리 이후 잠자리에 누우면 천장에서 야구공이 왔다 갔다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두 번째 한일전까지 이겨버리자 한국 선수들이 <공포의 외인구단> 주인공처럼 보였다. 미국과 일본에서 설움받던 선수들이 울분과 분노를 삼진과 홈런과 안타로 설욕하고 있었다. 이쯤되면 누군가 이봐, 이건 야구만화가 아니라고, 라고 한마디 해줘야 할 것 같다. 물론 극적이던 연승행진은 아쉬움을 남기며 끝났다. 불합리한 대회규정이니 뭐니 말이 많지만 김인식 감독의 말대로 “진 것은 진 것이다”. 야구 같은 확률의 스포츠에서 6승1패면 충분히 흥분할 만한 기적이다.
야구팀의 선전 덕에 2006년 월드컵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커질 것 같다. 야구도 세계 4강에 들었는데 축구가 16강에 오르지 못하면 그 국민적 허탈감은 ‘줄기세포 없다’처럼 심리적 공황 상태를 낳을지도 모른다. 이런 걱정을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월드컵 마케팅이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본인이 동의하지 않았는데(동의고 뭐고 할 의식상태가 아니긴 하지만) 새로 태어난 아이를 붉은 악마라 규정짓는가 하면 멀쩡한 젊은이가 한낮에 길거리에서 “대~ 한민국”을 외치기도 한다. 이런 CF를 보면서 광기를 느끼는 게 나만의 일일까. 그런가 하면 공중파 방송에선 매일 뉴스시간에 월드컵 관련 꼭지를 만들어 보도하고 있다. 월드컵이 지상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라 그렇다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왜 매일 한국 대표팀 얘기만 떠들면서 애국심 고취에 열을 올리는 것인가. 나는 축구팬이지만 이런 현상이 반갑지 않다. 국가대표 축구팀에 올인하는 상황 속에서 스포츠를 스포츠로 즐길 수 있는 여건은 오히려 줄어들기 때문이다.
스포츠에 애국주의나 민족주의, 혈연 지연 학연에 대한 애정, 상업주의 등이 끼어드는 건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지금의 월드컵 열풍은 과도하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휩쓸린다는 느낌을 줄 정도다. 그것은 스포츠를 즐기는 데 필수조건인 자발성을 휘발시켜버린다. 마치 군대에서 고참들 때문에 억지로 축구를 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누군가 등을 떠밀어서 축구를 할 때 단지 공이 거기 있어서 뛰어다녔던 때와 같은 흥은 나지 않는 법이다. 그런가 하면 시청 앞 광장 응원과 광고판매를 둘러싼 소란은 누군가가 나의 여흥을 규격화된 깡통 속에 집어넣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2002년에 아름다웠던 거리 응원이 수공예의 아름다움을 간직했다면 이번엔 공장에서 붕어빵처럼 찍어낸 붉은 물결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아쉬운 건 더이상 의외성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사실이다. 2002년의 기억이 짜릿했던 이유와 2006년 야구대표팀의 활약에 흥분했던 이유는 무엇보다 그 모든 과정이 예상치 못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번도 승리하지 못했던 월드컵에서의 승리, 감히 대적할 수 없다고 믿었던 상대에 대한 승리, 두 가지 모두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트리는 것 같은 감동을 주었다. 2006년 월드컵에서도 그런 반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스포일러를 너무 많이 봤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중에 감동하게 좀 내버려두면 안 되겠니, 하는 말이 번번이 목구멍을 간지럽힌다.
P.S. 지난주 김영하 작가에 이어 이번주엔 신정구 작가가 ‘이창’ 코너를 떠난다.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두분의 글을 볼 수 없다는 점이 못내 아쉽지만 이창 코너에 새로 모실 두 필자가 앞선 두분 못지않은 재미있는 글을 써주실 거라 기대한다. 다음주부터 <한겨레21> 기자인 신윤동욱씨와 <ME> 기자로 일했던 소설가 권민성씨가 격주로 이창 코너를 맡을 예정이다. 김영하, 신정구 두 작가에게 독자 여러분을 대신해 감사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