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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필버그와 큐브릭의 만남,

비평가의 입장이란 것도 곤란할 경우가 없지 않다. 예컨대 스필버그 영화를 이야기할 때 그렇지 않을까 싶다. 스필버그 영화를 비하한다면 대중영화에 관한 식견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주기 쉽겠다. 반대로 지나치게 칭찬한다면 비평가로서의 자격을 심각하게 의심받을지 모른다. 같은 이유로 비평가적 시각으로 스필버그 영화를 논한다는 것은 사실,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스필버그 영화 중에서 개인적으로 아끼는 작품을 하나 들자면 <A.I.>다.

<A.I.>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킨다. <우주소년 아톰>이 그것. 비록 기계의 몸을 지니고 있지만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며 누구보다 절실하게 “인간이기를 갈망하는” 소년의 이야기인 것. 어느 미래, 하비 박사는 감정을 지닌 로봇을 개발한다. 데이비드라는 이름의 로봇이다. 데이비드는 사이버트로닉스사의 직원 헨리와 모니카 부부에게 입양된다. 부부는 아들 마틴이 식물인간인 상태라 로봇을 입양한 것이다. 처음에 낯설어하던 모니카는 데이비드를 차츰 아들로 대하게 된다. 그런데 마틴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자 데이비드는 길가에 버려지는 신세가 된다.

잘 알려진 대로, <A.I.>는 두 거장의 숨결이 배어 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생전에 만들고 싶어했던 프로젝트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왔기 때문이다. 완성된 <A.I.>에 관한 평단의 반응은 비교적 호의적인 편이었으나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를 선호하는 이라면 완성된 영화에 불만을 가질 대목도 없지 않겠다. 아마도 데이비드가 로봇 폐기물 축제에 참가하고, 인간들이 로봇을 잔인하게 폐기처분하면서 광분하는 장면 등이 <A.I.>에서 큐브릭 감독의 흔적을 담고 있는, 가장 근접한 대목이 아닐까 싶다. 지극히 염세적이고 문명비판적이므로. 반면, 스필버그 영화의 시선에서 보면 <A.I.>는 어느 감독작보다 심금을 울린다. 주인공인 데이비드는 이미 감정 프로그램이 입력되어 있으므로, 즉 어머니를 사랑하게끔 프로그램되어 있으므로 어머니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믿는다. 그리고 ‘피노키오’에 관한 동화까지 후반부에 가세하면서 영화는 애절한 기운을 더해가는 것이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만든 <미지와의 조우>와 <E.T.> 등의 영화에서 스필버그 감독은 가장 강력한 멜로드라마적 호소력을 지니는 SF영화를 완성한 바 있다. 이 영화에서 인물들은 입으로 하는 대화 대신 음악과 심장으로 대화하는 방법을 각기 선보였다. 가장 원초적이면서 역설적으로, 현대판 멜로드라마의 새로운 모델을 세운 것이다. <A.I.>에서 이는 영원한 꿈과 사랑을 ‘입력’받은 꼬마 로봇의 이야기로 변형된다. 할리 조엘 오스먼트의 연기에 힘입어 영화는 눈물샘을 콕콕 자극하는 최루성 멜로드라마로 거듭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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