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KBS2 <상상플러스> 지난 1월31일 방영분. 배우 김수로가 꼭짓점 댄스를 선보인다. 다른 출연자들이 대오를 맞춰 따라한다. 대부분 포털사이트에서 검색 1위에 등극한 꼭짓점 댄스는 수만명의 네티즌이 ‘월드컵 공식 댄스로 정하자’고 서명운동을 벌여 화제를 낳았다. 방송 9일 뒤 김수로의 첫 단독 주연작 <흡혈형사 나도열>이 개봉했다.
#2 SBS <야심만만 만명에게 물었습니다> 2005년 9월5일 방영분. 배우 김수미가 어린 시절 어머니를 위해 유리그릇을 훔쳤다가 어머니에게 혼난 사연을 이야기한다. 김수미는 “국화꽃 무늬만 보면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말하다가 눈물을 흘린다. “첫 월급을 탔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드릴 수가 없었다”는 그의 모습에 방청석이 숙연해진다. 이틀 뒤 김수미가 출연한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가 개봉했다.
#3 SBS <일요일이 좋다―X맨>, KBS <해피선데이―여걸식스>에 지난 1월8일부터 2주 연속 출연한 <투사부일체>의 출연진. 1월9일과 16일의 SBS <야심만만…>에도 연이어 등장했다. 1월10일에는 KBS2 <상상플러스>와 1월20일 MBC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에 출연하며 이들의 오락프로그램 출연은 마무리됐다. 네티즌의 극심한 비난에도 1월19일 개봉한 <투사부일체>는 610만명을 기록하며 한국영화 역대흥행 7위의 성적을 거뒀다.
요즘 TV 오락프로그램은 영화 홍보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토크쇼와 주말 주요 오락프로그램에 개봉을 앞둔 영화배우들이 대거 얼굴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주로 코미디물 배우의 주무대로 여겨지던 토크쇼에 다른 장르영화의 배우들마저 가세하면서 오락프로그램 출연은 영화홍보의 최전선이 됐다. 충무로의 마케팅 속설 중에 ‘신문, 인터넷, 버스와 지하철 광고를 비롯한 모든 광고홍보 수단은 그걸 사용하거나 소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도달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안 보는 사람은 없다’라는 표현이 있을 만큼 영화홍보에 TV의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배우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들은 광고로 치면 SA급에 속한다. 그 시간대 스팟광고 15초를 하는 데 1천만원이 든다. 그런데 배우가 자기 영화를 소개할 기회가 생기는데 그걸 마다할 마케터는 없다”라고 <흡혈형사 나도열>의 마케팅을 담당한 아이엠픽쳐스 김민국 팀장은 말했다.
<투사부일체> TV 출연 후 인지도 상승
프로그램 방영 2∼3주 뒤에도 TV 옴부즈맨 프로그램에서 다뤄질 정도로 여파가 컸던 <투사부일체>. 마케팅을 담당했던 시네마제니스 이점애 대리는 “원래 개봉이 1월27일이었는데 19일로 당겨지면서 방송이 한주에 몰렸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방송사의 지침상 이미 개봉된 영화를 홍보하는 성격의 출연은 규제된다. 이 대리는 “배우들이 최선을 다하는 상황에서 마케터로서의 욕심도 있기 때문에 눈앞에서 출연을 포기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투사부일체>는 제작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인지도 상승이 절박했다. <투사부일체> 출연진의 오락프로그램 출연을 통한 홍보전략은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다. 영화사쪽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 순위가 50위권에 머물렀는데 <일요일이 좋다―X맨>의 첫 방영 이후 단숨에 10위 내로 진입했다”고 설명했다. TV 홍보가 위력적인 배경에는 오락프로그램 출연이 인터넷의 입소문과 연동되는 특성이 있다.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를 홍보했던 이진 실장은 “세계야구클래식(WBC)만 해도 TV보다 인터넷과 위성DMB의 시청률이 높았고, 이것은 TV를 인터넷으로 재확인하는 젊은 소비자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다. 출연배우의 입담이나 에피소드가 인터넷을 통해 회자되면 해당 영화의 인지도는 수직으로 상승한다. 공중파 연예프로그램에서 일하기도 했던 영화홍보사 유쾌한 확성기의 류순미 실장은 “주요 TV오락프로그램을 통한 영화 인지도의 도달률은 80%에 이른다. 특히 광고가 취약한 지방에서의 영화 인지도를 고려하면 절대적인 홍보수단”이라고 말했다. 마케팅 격언대로 이런 ‘인지는 선호로 이어진다’는 점이 중요하다. 꼭짓점 댄스로 대박을 터트린 <흡혈형사 나도열>의 경우, 준비된 마케팅도 주효했다. 김민국 팀장은 “최초로 배우의 오락프로그램 출연 자체를 온라인과 신문광고로 선보였다”고 했다. 이후 꼭짓점 댄스가 인터넷을 통해 인기를 모으자, 마케팅팀은 보도자료에서 이를 널리 알리는 발빠른 후속조치를 취했다.
영화사는 흥행위해, 방송사는 시청률 위해
영화사가 흥행을 위해 비난을 감수하며 오락프로그램 출연에 뛰어드는 것처럼 방송사는 시청률을 위해 영화배우들에게 무대를 제공한다. 겹치기 출연이나 간접광고 조항 때문에 방송위원회의 경고 조치를 받는 상황을 감내하며 방송사가 입담이 좋은 배우들을 유치하는 것은 오로지 지상과제인 ‘시청률’ 때문이다. 프로그램 내적인 측면에서는 오락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모 방송작가의 말처럼 “일반 게스트들에 비해 영화배우들의 입담이나 화제의 내용이 신선하다”는 면도 부분적으로 작용한다. 옴부즈맨 프로그램을 통해 겹치기 출연을 비판하는 곳은 방송사다. 하지만 겹치기 출연을 불사하는 것도 방송사다. 최근 시청자들의 거센 비난을 샀던 <투사부일체> 출연진은 대부분의 오락프로그램에서 20∼25%를 상회하는 시청률로 자체 시청률 기록을 대부분 갈아치웠다. 시청률 제일주의와 흥행 제일주의라는 자본주의적 공통분모가 결합되면서 오락프로그램 출연의 과열 양상은 가속화됐다. 영화마케팅 일선에서는 “예산이 적은 영화일수록 TV프로그램 출연은 효과적이고 중요한 홍보수단”이라는 견해를 피력하지만 동시에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약한 출연진으로는 오락프로그램 출연 자체를 방송사에서 거부한다”는 딜레마도 안고 있다.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을 마케팅한 비단길 김진아 실장은 “배우가 약하면 방송홍보를 하고 싶어도 절대 못한다. 아무리 사정해도 시청률 앞에서 방송사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코미디 외의 영화 홍보에는 부적절
모든 영화가 오락프로그램 출연으로 좋은 효과를 거두지는 못한다. “말장난에 가까운 유머, 감각과 일상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토크쇼와 오락프로그램에는 아무래도 코미디영화가 적합하다. 출연 프로그램의 시청률과 영화 흥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사례는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 <투사부일체> <흡혈형사 나도열> 등 코미디물이 강세다. 오락프로그램에서 환대받는 김수로, 차승원, 임창정 같은 배우들도 코미디영화의 아이콘으로 인식된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러한 입담과 말장난에 모든 출연자를 끼워맞추는 방식이다. 김민국 팀장은 “2000년 즈음에만 해도 배우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지금은 쇼프로그램의 성격에 맞춰 배우가 이야기하는 형태”라고 말했다. 영화평론가 허문영은 <한겨레> 3월9일치 “재담꾼 강요하는 ‘오락TV’”라는 글에서 “예컨대 백윤식이 출연한다면 그의 재담 거리가 아니라 그가 자기 분야에서 이룬 성취를 질문해야 한다. 이건 공익 이전에 예의의 문제”라고 평했다. 오락프로그램 출연의 대안으로 새로운 영화 전문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방법은 어떨까. 하지만 문제는 다시 시청률이다. 배우들의 진지한 대화가 시청률을 높일 수 있다면 방송사는 주판을 튕기며 자발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달려들 것이다. 모든 마케터들이 입을 모아 “TV가 없어지지 않는 한 이러한 양상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오락프로그램에 환호하는 대중의 눈높이가 바로 영화 흥행의 눈높이”라는 현장 관계자의 말처럼 모든 것은 리모컨을 누르는 시청자들의 손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배우 TV출연 10계명
현장 영화마케터들이 밝힌 오락프로그램 출연 10계명
1. 시청률 최고의 프로그램을 고른다. 2. 성격이 비슷한 프로그램에 반복해서 출연하지 않는다. 3. 영화 성격에 부합하는 프로그램을 배우와 신중히 논의하고 출연을 결정한다. 4. 노출 빈도보다 중요한 것이 프로그램의 방영 시기다. 일정 조정이 생명이다. 5. 배우의 이미지 메이킹과 성격을 최대한 고려한다. 6. 단답형 대답으로 일관하거나 방송을 싫어하는 배우가 억지로 출연하면 역효과가 난다. 7. 토크쇼 프로그램이라면 영화 소개보다는 일단 시청자를 즐겁게 해줘야 한다. 8. 비방송 용어를 주의한다. 9. 배우의 단면적인 특성만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한다. 10. 방송 출연이 잦은 편이 아닌 배우라면 한 프로그램 출연에 집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