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나’는 지도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다. 워싱턴의 정치가와 중동의 석유재벌, 헤즈볼라 지도자 등을 취재해 <시리아나>의 시나리오를 쓴 감독 스티븐 개건은 이 영화의 제목이 실제 워싱턴의 싱크 탱크가 사용하는 단어라고 말했다. “그들은 언제든지 중동 지역의 국경을 재조정할 수 있다는 은유적인 의미로 그 단어를 썼다.” 그러므로 머나먼 이국 중동과 미국에서 일어난 별개의 사건을 다루는 <시리아나>는 그 두 지역 사이의 보이지 않는 사슬을 폭로하는 영화이기도 할 것이다.
베테랑 CIA 요원 밥 반즈(조지 클루니)는 개혁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중동 산유국의 왕자 나시르(알렉산더 시디그)를 암살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 임무에 실패해 조직으로부터 버림받은 밥은 누가 나시르의 죽음을 원했는지 추적하기 시작한다. 명민하고 지도력이 있는 나시르는 제네바에서 에너지 분석가로 일하는 브라이언 우드먼(맷 데이먼)을 경제고문으로 영입해 석유에서 얻는 부(富)를 늘리고 국민에게 재분배하고자 한다. 그러나 미국 정부와 기업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협하는 나시르 대신 방탕한 그의 동생을 왕위계승자로 세우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나시르에게 유전채굴권을 빼앗긴 석유기업 코넥스는 그보다 작은 회사인 킬린과 합병을 선언하지만 뇌물수수 의혹을 받아 난항에 부딪힌다. 여기에 코넥스의 일자리를 잃고 자살테러범이 되는 파키스탄 소년 와심의 스토리가 덧붙여진다.
세 가지 스토리가 교차하는 <트래픽>의 작가였던 개건은 그보다 스토리 하나가 많은 <시리아나>를 촘촘하고 정교하게 끌고 간다. 그 솜씨가 놀라운 까닭은, 다중구조를 취하는 <숏컷> <매그놀리아> 등과 달리 <시리아나>는 사건과 인물이 포개지는 순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코넥스를 위해 일하는 변호사 베넷과 코넥스가 축출하고자 애쓰는 나시르, 코넥스의 음모를 파헤치는 밥은 상대의 존재를 모르는 채 추상적인 개념에 가까운 거대기업으로 연결될 뿐이다. 그리고 투명한 장막에 가깝던 그 사슬이 죽음으로 연결되는 마지막 순간, <시리아나>는 냉정한 시선과 충격에 가까운 분노가 동시에 느껴지는, 보기 드문 파장을 획득한다. 개건은 “<시리아나>는 정치선전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때로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를 선동할 수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