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화나 딜러가 된 중산층 미망인의 이야기 <위즈>
방영시간 | 월·화 새벽 5시·오전 8시·밤 12시(주 2회분 방영) (재방) 금 오전 10시·10시30분, 일 오전 7시·7시30분(폭스채널)
엔지니어였던 남편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기 전까지 낸시 바트윈은 중산층 거주지역 아그레스틱에 사는 평범한 주부였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아그레스틱 최고의 마리화나 딜러가 되었다. 라틴계 가정부와 공들여 개조한 주방, 물처럼 마시는 4달러짜리 라떼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위즈>는 이런 긴장을 전제로 깔고 있는 시리즈다. 두 아이와 홀로 남은 과부를 동정할 것인가, 아들 또래 아이들에게 마리화나를 팔아서라도 중산층으로 남고자 하는 위선을 비난할 것인가. “그녀가 마약 딜러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집에서 살 수 있겠어?”라고 묻는 라틴계 여인은 낸시가 처한 이중적인 처지를 냉정하게 지적하고 있을 것이다.
<위즈>는 보수적인 채널로 움츠러들고 있던 방송국 쇼타임에 “한계는 없다”(No Limits)는 옛 슬로건을 되돌려준 TV시리즈다. <결혼 이야기> <길모어 걸즈> <윌 & 그레이스> 등에 작가로 참여해던 젠지 코핸은 <스톤 가족>이 실패해 조기종영되자 경찰드라마 <쉴드>를 보며 소일하고 있었다. 코핸은 “상냥하고 유순하지만 도덕적으로는 모호한” <쉴드>의 캐릭터에 이끌렸고, 마침 조사해보았던 미국에서의 마리화나 복용 실태를 더해, “뮤즈를 찾아냈다”. 중산층의 권태와 위선은 참신한 주제가 아니었지만, 여기에 생존과 체면의 이중성이 더해졌더니 코믹하면서도 신랄한 드라마가 태어났던 것이다.
낸시(메리 루이스 파커)는 십대인 아들 사일라스와 초등학생 셰인을 거느리고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과부다. 말썽꾸러기 시동생 앤디(저스틴 커크)에게 힌트를 얻어 마리화나를 팔기 시작한 낸시는 사업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극복하고 지역전문대학까지 상권을 확장한다. 같은 마을에 사는 실리아(엘리자베스 퍼킨스)는 냉혹한 어머니다. 그녀는 뚱뚱한 딸이 침대에 숨겨둔 초콜릿을 관장약으로 바꿔놓을 정도로 비정하지만 그녀 자신이 위기를 겪게 되자 조금은 변하기도 한다. 이들 주변엔 수많은 남자들이 있다. 타이인 테니스 강사와 바람을 피운 실리아의 남편 딘, 아들이 게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채 마리화나에 젖어사는 회계사 더그, 낸시에게 연정을 품은 마약 딜러 콘래드 등이 낸시의 사업확장에 동참한다.
<위즈>는 평범했던 주부가 마리화나를 재배하는 영국영화 <오! 그레이스>에 중산층의 위선을 잔인하게 폭로하는 <위기의 주부들>을 더해놓은 듯한 시리즈다. 그러나 코핸은 자신의 시리즈를 한 계단 위에 둔다. “나는 <위기의 주부들>을 좋아하지만 그건 마치 50년대 이야기처럼 보인다. <위즈>의 캐릭터는 훨씬 현실적이다.” 그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즈> 또한 <위기의 주부들>처럼 겉치레로 거르지 못한 주부의 속마음 목소리가 울려나오고, 매 순간 또렷할 수는 없을 결정과 선택을 이해해준다. 아이 엄마이기도 한 퍼킨스는 “내가 저걸(내 딸을) 지워버렸어야 하는데”라는 대사에 항의했지만, 그 대사는 실리아의 독백일 뿐이라는 코핸의 설명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품에 끌어안더라도 다음 순간엔 몽둥이를 들고 싶어지는 게 웬만큼 자란 자식이 아니던가. 마리화나에 대한 태도 또한 비슷하다. 사일라스와 앤디와 더그는 마리화나를 좋아하지만, 우연이 아니라면,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낸시는 마리화나를 사간 십대 소년이 더 어린 아이들에게 물건을 팔았다는 사실을 알고 불같이 화를 내다 못해 약점을 잡아 협박까지 한다. 그것은 모순이고, 시즌1 마지막에 이르러 그 모순이 폭발하지만, 솔직한 태도이기도 할 것이다. 먹고살기 위해, 한 걸음 나아가 지루한 삶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달력을 찢듯 자신을 부정한다.
위선을 풍자하면서도 그 자체로 어느 정도 위선적이기도 한 <위즈>는 한순간의 유머와 진심으로 위험한 경지에서 벗어나곤 한다. 돈과 연줄만 있으면 마리화나 처방전을 받을 수 있는 중산층과 그들을 위한 “마리화나 천국”, 십대들의 사이버 섹스, 죽은 남편과 찍은 섹스비디오를 보며 눈물짓는 낸시의 모습 등은 거창한 주제를 내건 영화였다면 포착하기 힘들었을 사소한 삶을 대면하게 해준다. 낸시는 이 위험한 사업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2006년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으로 밝은 미래를 확보한 <위즈>에게 콘래드의 당부를 건네주고 싶다. “낸시, 나는 당신을 좋아해. 그러니까 당신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