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 기자들 가운데 일부는 정신분열을 겪는다. 만나는 사람이 예술가이다 보니 자신이 기자인지 예술가인지 헤맨다. 뒤늦게 작가가 되려 해도, 작가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수업시대는 길고 혹독하다. 옆에 앉은 동료들도 같이 정신분열을 미약하게나마 겪는 수밖에 없다. 정신분열이라는 수업시대를 마치고 작가로 4년 전에 등장한 조선희의 첫 소설집은 몇 군데서 매우 햇빛 찬란하다. 작가의 삶 또한 분열적인 것인지 그는 서사에의 열망, 에세이스트로서의 정열, 자기 죄를 속죄하고픈 몸부림 사이를(그의 연배들의 배를 가르면 죄의식이 군내를 풍긴다) 진자 운동한다.
그를 사석에서 한두번 봤을 뿐이지만, 소설집을 쓴 작가가 누구인지는 정말 알기 어렵다. 작품마다 어조와 문체와 화자의 세계관이 판이하다. 그의 머릿속에선 한타 넘는 개성있는 군상이 기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 군상의 출처는 조금씩 다른 것 같다. 작가가 서사에의 열망에 전적으로 자기를 던졌을 때, 작가는 놀라운 수확을 거둔다. <메리와 헬렌> 그리고 <향수>는 어마어마하다. 벽돌 한장 빼거나, 아랫돌 빼 윗돌 괴는 수작이 허용되지 않을 정도로 촘촘하게 날선 언어들이 매우 치밀한 구조를 이루고 있고, 그 구조가 빚어내는 효과가 너무 강렬해서 뒤통수의 퓨즈가 한꺼번에 나가는 것 같은 충격을 준다. 그는 죽음의 문턱 가까이 가서 죽음의 냄새와 통증과 죽음 뒤란의 풍경을 보고한다. 좋은 작가는 날래고 맵찬 종군기자의 솜씨로 우리가 가보지 못한 곳을 보여준다.
내가 정말 깊은 인상을 받은 건 <경리 7년>과 <부두키트 세러피>였다. 직장이라는 정글 자본주의의 압축판 안에서 버팅겨내는 삶의 지혜며 자본주의의 허술한 뒤춤이며 영악한 살림살이가 핍진하게 그려져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발랄한 발자크, 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작가는 눙치고 어르며 이야기꾼의 한 경지를 보여준다. 여기까지가 서사적 열망에 복종하는 작가 조선희다. 이제 나머지 지리멸렬한 소품들에서 그는 탁월한 통찰과 빛나는 직유를 전하고자 몸이 달아오른다. 자신이 뛰어난 에세이스트임을 드러내려는 의지와 자신의 젊음이 유독 아름답고 맑았노라고 강변하는 속죄의 의지 사이에서 작가는 종내 두서없다. 재능이 넘치지만 자기를 드러내고 싶어 안달이 난, 발랄해 보이지만 자기분열로 늘 속을 끓고 있는 알 수 없는 걸스카우트. 도대체 알 수 없는 그이지만 흐릿하게나마 그렇게 이해가 된다. 그러나 앞서 거론한 4편의 작품이 그 자신과 독자를 구원한다. 그가 기자를 그만둔 게 스스로에게도 독자들에게도 축복이란 건 확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