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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퀘이 형제의 신작 애니메이션, <지진 속 피아노 조율사>

자동인형의 꿈을 꾸다

<지진 속 피아노 조율사>

지난해 늦봄과 초여름이 교차할 무렵, 영국을 덮친 때이른 더위에 빅밴의 시계마저 오작동을 일으켰다. 갑작스럽게 팽창한 수은주만큼 스톱모션애니메이션 판 또한 팽팽한 긴장감 속에 돌아갔다. 당시 런던 모처에서는 팀 버튼의 <유령신부>가, 브리스톨의 아드만 스튜디오에서는 <월래스 앤 그로밋: 거대토끼의 저주>가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쌍방에 대한 견제와 함께 3D애니메이션 기술에 밀려 어쩌면 이것이 극장용 스톱모션애니메이션 프로젝트의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깔려 있었다. 같은 시기, 런던의 또 다른 모처에서는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의 이단아이자 기린아인 퀘이 형제도 분주히 스케줄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앞서 말한 두 블록버스터가 할로윈 시즌을 겨냥해 박차를 가한 반면, 퀘이 형제는 당장 코앞에 닥쳐온 소극장 오페라의 미술 작업 때문에 여유가 없었다.

두편의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이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또다시 대치한 시점에서 퀘이 형제의 장편 <지진 속 피아노 조율사>(The Piano Tuner of EarthQuakes)가 선을 보였다. 그들의 첫 장편인 <벤야민타 학원>을 내놓은 지 10년이 지난 뒤였다. ‘마지막 작업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따위는 이들 쌍둥이 형제에게는 차라리 존재 이유라 할 수 있었다. 그들이 고민한 것은 ‘여전히’ 제작비 마련이었고, 디지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였다. 퀘이 형제는 구겐하임으로부터 받은 약간의 지원금도 매킨토시 컴퓨터와 파이널 컷 프로를 구입하는 데 써야 했다. 형제에게는 스톱모션의 위기보다 그들의 언어나 다름없는 필름룩을 디지털 안에 끌어안는 게 더 시급했다. 거의 무일푼 품앗이와 같았던 오페라 작업, 존재 위기에 빠진 스톱모션 그리고 자연사를 앞둔 필름. 이 모두가 그들의 신작 속에 얽혀들어가 있다. 아돌포 비요이 카사레스의 중편소설 <모렐의 발명>을 모태로 한 이 작품은, 광기 어린 드로츠 박사가 오페라 여가수를 외딴섬에 가두고 자동인형으로 만들려 한다는 내용으로, 퀘이 형제의 트레이드마크인 ‘바로크 판타지’를 더욱 적극적으로 내세웠다.

식상한 ‘프랑켄슈타인’ 이야기를 퀘이 형제의 ‘때깔’로 덧칠했다거나, 비영어권 연기자들의 어설픈 영어 발음이 거슬렀다든가, 지나치게 늘어진다는 등등의 평가가 심심찮게 들려오지만, 오히려 그러한 불평은 이미 기획된 의도 안에 있었으리라. 이들은 영화의 전환기에 초기 자동인형의 꿈을 다시 꾸고, 영어의 패권 속에서 그것을 이방 언어로 만들었다. 그러나 속도에 대한 저항은 이들의 작품을 오스카 시상식 직전에 상영관에서 끌어내리게끔 했다. 이제 10년간 이 작품을 곱씹으며 다시 오랜 기다림을 느긋이 즐겨야 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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