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거나 만화를 보다보면 귓가에 BGM이 흐르는 듯한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야가미 유의 <고-웨스트!>도 그런 작품 중 하나이다. 책을 펼치는 순간 펫 숍 보이즈의 <고 웨스트>가 등 뒤에서 쾅쾅 울려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강약없는 선이 그려내는 시원한 서부의 풍광, 빠른 호흡으로 끊임없이 터지는 사건·사고들 그리고 꼬여 있지 않고 거침없는 캐릭터들이 어우러져 펫 숍 보이즈의 시원한 노래와 함께 한바탕 소동극을 만든다.
주인공 나오미는 영국에서 자란 일본인 고아 소녀. 부모가 신대륙의 서부에 있다는 단서 하나만 가지고 신대륙으로 찾아온다. 하지만 열여덟 소녀가 혼자 여행하기에 서부는 만만한 곳이 아니다. 여기저기서 비정하고 이유없는 총격전이 난무하고, 때로는 사막이 때로는 백인 카우보이를 증오하는 인디언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는다. 그런 나오미의 길을 만들어주는 것은 서쪽만을 향해 전진하는 말 ‘레드’, 그리고 나오미의 오빠라고 우기는 흑인이며 현상수배자인 ‘밍고’와 자기가 나오미의 아빠라고 우기는 백인이며 현상금 사냥꾼 ‘건맨’이다(물론 밍고와 건맨은 어떤 혈연관계도 없으며 서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백인 아버지와 흑인 오빠 그리고 황색인 딸, 이 이상한 가족은 나오미의 진짜 가족을 찾아 서쪽으로, 서쪽으로 나아간다.
<고- 웨스트!>는 서부를 배경으로 한 어느 가족의 탄생일지이다. 나오미와 밍고, 건맨을 뭉치게 만든 것은 핏줄에 대한 오해지만, 결국 진짜 핏줄을 찾았을 때 이들을 묶어주는 것은 그동안의 의리와 정리이다. 이를테면 핏줄이 아닌 가슴으로 이어진 가족이랄까. 사실 <고- 웨스트!>는 이런 거창한 주제의식 없이도 충분히 웃으며 읽을 수 있는, 오랜만에 만나는 자학개그와 마니아 개그가 없는 순수한 코미디 만화로서도 훌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