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가 상영 중인 지방 극장. 설원의 벌판에 한국군과 북한군이 마주 서는 장면이다. 화면 왼쪽 끝에 도열한 북한군이 보이지만 오른쪽에는 아무것도 없다. 관객이 웅성대기 시작한다. 한 아저씨가 화면을 향해 “쟤들은 누구를 보고 저렇게 개폼 잡는 거야?”라고 고함친다. 슈퍼35mm로 촬영된 <공동경비구역 JSA>는 2.35 대 1의 시네마스코프로 만들어졌다. 1.85 대 1의 스크린에 상영하다보니 한국군이 나올 오른편이 잘려나갔다.
S#2 2003년 전주국제영화제 인권영화 프로젝트 <여섯개의 시선>이 상영 중인 전북대 극장. 오른쪽 포커스가 나가며 화면이 흐릿해진다. 오른쪽을 맞추자 잠시 뒤에는 왼쪽이 나간다. 탁구를 치듯 오른쪽과 왼쪽이 번갈아 포커스가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객석의 영화과 학생들의 시선이 포커스에 따라 움직인다. 영사실에서는 프린트에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다가 고민에 빠졌다. 영사하는 광램프는 휘어져 있는데 스크린이 평면이라 발생한 촌극이다. 대형 화면을 가진 멀티플렉스에서도 이런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S#3 2003년 <혈의 누> 기술시사가 열리는 중이다. 좋은영화 김미희 대표는 스크린 밖으로 삐져나온 화면에 스크린 옆의 커튼을 걷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물론 커튼을 걷어봐야 스크린이 없는 빈 공간이다. 김대승 감독은 답답한 마음에 후반작업을 진행한 HFR(옛 할리우드현상소) 이용기 상무에게 시사회 장소를 옮기자고 말한다. 이용기 상무는 쉬이 답하지 못한다. 좌우 비율을 해결할 수 있는 다른 극장은 아래위가 잘려나가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기자 시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을 가장 답답하게 한 상황은 대안이 없다는 것이었다.
“스크린과 영사기간의 거리가 문제”
“전국의 극장을 모두 헐어서 전부 새로 지을 수도 없고, 답답할 따름이다.” 충무로의 감독, 촬영감독, 후반작업 스탭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국내 극장에서 가로, 세로 비율 때문에 화면이 잘리는 문제는 오래된 일상이며 관행이다. <무사> <살인의 추억>의 김형구 촬영감독은 “현장에서는 좌우 1센티미터를 살리려고 모든 스탭이 죽을힘을 다하는데 이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상영관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충무로에서 최근 2.35 대 1 비율의 시네마스코프 제작이 대세를 이루며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2006년 현재 시네마스코프로 제작되는 한국영화는 70∼80% 수준에 달한다. 국내 영화관은 대부분 1.85 대 1과 2 대 1 사이의 스크린 사이즈로 어정쩡하게 설계됐다. 이로 인해 시네마스코프로 만든 영화의 시사회마다 “화면이 잘린다”는 공방이 시사회장과 영사실 사이를 포탄처럼 날아다닌다. 최동훈 감독은 “현재 한국 관객은 아래위 혹은 양옆이 잘린 영화를 보고 있다.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라고 말한다. 홈시어터가 보편화되고 AV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면서 일반 관객의 불만은 날로 확산되고 있다. “홈시어터 시스템을 제대로 갖춘다면 스크린 사이즈와 사운드 때문에라도 집에서 DVD 보는 편을 택하겠다”는 의견이 객석에서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스크린과 영사기간의 부적절한 거리가 가장 큰 문제”라고 HFR 이용기 상무는 말한다. 상영관 구조가 이미 결함을 안고 있다는 뜻이다. 메가박스 장영욱 전 영사실장은 “10개관에 1500석을 집어넣다보니 장방형이 아니고 직사각형 형태의 영화관이 나온다. 이럴 때 시네마스코프의 화면손실이 심해진다”고 설명했다. <주먹이 운다>의 조용규 촬영감독도 “현재 상황에서 영사기를 앞뒤로 움직이는 구조가 아니라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과거 단관 형태의 대형 극장을 멀티플렉스로 리모델링한 경우 이러한 어려움은 심화된다. 김형구 촬영감독은 “<무사>의 시사회를 개최할 무렵 서울극장은 좋은 극장에 속했다. 그럼에도 자막이 많았던 <무사>는 영사기를 오른쪽으로 틀어 상영하는 바람에 왼쪽이 대폭 잘려나갔다”고 기억했다. <무사>의 시사에서 빚어졌던 상황은 <혈의 누> 때도 유령처럼 다시 찾아왔다. 김대승 감독은 “화면 사이즈를 정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2.35 대 1은 좌우의 공간이 넓어져 미술과 조명을 비롯해 보조출연 한명이라도 더 필요해진다. 현장에서 이렇게 노력을 해도 극장에서 전혀 발현이 안 된다. 이것이 대한민국 영화상영의 현주소다. 안타깝고 부끄럽게도 전혀 기준이 될 만한 곳이 없다”고 말했다. 오래된 극장일수록 상황은 더욱 심하지만 멀티플렉스도 이러한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영사시설의 표준화 확립 필요
화면이 잘리는 것 외에도 문제는 산적해 있다. 선명도나 색감, 색온도 등 시각적으로 중시한 여러 요소에서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 영사각도가 맞지 않아 선명도가 훼손되고 포커스가 나가는 경우도 빈번하다. 메가박스 장영욱 전 영사실장은 “영사각도가 10도 이상 나오면 화면이 마름모 모양이 되어 아래로 퍼진다. 그래서 영사각도가 10도 미만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멀티플렉스에 속한 상영관 중에도 영사각도가 10도를 상회하는 곳은 사이트마다 얼마든지 있다. HFR 이용기 상무는 “영사각도를 맞추는 문제는 엄청난 비용이 드는 일이 아니다. 스크린을 교체하는 시기에 조금만 신경쓰면 개선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MK픽처스 심보경 이사는 “극장쪽은 좌석이나 휴게시설에 비해 이를 사소한 문제로 느낄 수도 있지만 서비스업인 극장의 기본은 영화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멀티플렉스를 통해 국내 극장은 양적으로는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상영의 질적 수준은 제자리걸음인 것이다. “하루바삐 표준화를 확보하는 것이 대책”이라고 영화진흥위원회 이현승 부위원장은 말한다. 그는 “표준화를 통해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극장마다 개별적으로 영사기를 수입해서 제각기 사용하는 관행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병서 촬영감독은 “극장이든 현상소든 프린트에 관한 명확한 기준과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형구 촬영감독은 “촬영감독조합에서 스크린 사이즈, 화면 밝기, 색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까지 감안해 최고의 극장을 선정해서 관객에게 추천하자는 의견도 있다”고 밝힌다. 이것은 영화현장의 전문가들이 관객에게 일명 레퍼런스 극장을 추천하는 방법이다. 멀티플렉스의 한 관계자는 “렌즈를 교체하는 사소한 부분부터 상영시스템을 향상시키지 못하는 멀티플렉스는 궁극적으로는 도태될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김대승 감독의 말처럼 “의자가 편해지고 팝콘이 맛있어지기보다는 영화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관객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화면손실률 가장 적은 극장은 어디?
그렇다면 국내에서 2.35 대 1의 화면비율을 제대로 구현하는 극장은 어디일까? 충무로 관계자들이 지목한 대표주자는 메가박스 1관이다. 가로 17.4m, 세로 7.4m로 거의 완벽한 시네마스코프를 구현하는 메가박스 1관은 화면손실률이 2% 미만에 불과하다. 국내 최대 스크린을 자랑하는 CGV 용산5관은 아이맥스관으로 개조 이후 시네마스코프 구현력이 저하됐다고 평가됐다. 명동 롯데 에비뉴엘과 새롭게 단장한 피카디리가 화면손실이 적은 시네마스코프를 보여준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새로 개관한 압구정 CGV 1관이 메가박스 이상의 정확한 화면비율과 음향시설로 각광받는 중이다. 작은 극장 중에는 씨네큐브가 정확한 화면비율의 구현으로 유명하다. 일명 아나모픽으로 불리는 2.35 대 1 외에 국내 상업영화에서 주로 사용하는 화면비율은 1.85 대 1이다. 아메리칸 와이드 스크린, 비스타비전으로 칭해지는 1.85 대 1은 2년 전만 해도 가장 일반적인 포맷이었다. 일반적으로 기자를 상대로 한 시사회는 메가박스 1관, 서울극장, 대한극장, 용산CGV에서 자주 열린다. 최근 강북에 밀집한 언론사들의 기피에도 메가박스 1관에서 기자 시사가 자주 개최된 이유에는 이러한 시네마스코프의 구현문제도 결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