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오픈칼럼
[칼럼있수다] 토요일 새벽의 극장을 아십니까
이다혜 2006-03-14

금요일 밤 늦게, 그러니까 토요일 오전 2시쯤 시작하는 영화를 보러 가면 제 아무리 멀티플렉스라 해도 상영관은 절반도 채 안 차는 경우가 많다. 옆자리가 비어 있다면 금상첨화다. 많은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앉아서 영화를 볼 때와 분위기도 꽤 다르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요란하게 팝콘을 먹거나 옆사람과 얘기를 하는 사람들도 다른 시간대에 비해 확연히 적다. 갈 곳 없어 극장을 찾은 연인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긴 하지만, 보고 싶은 영화를 놓치지 않으려고 늦은 시간 보러 온 사람들도 꽤 있다. 그래서 토요일 새벽의 극장 분위기는 차분하게 마련이고, 그만큼 영화에 집중하기도 한결 수월하다. 늦은 밤에 영화를 보고 나서 다음 날 출근할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늦은 상영시간은 걱정거리가 될 수 없다.

음악이 좋은 영화, 사운드가 좋은 영화라면 더욱 좋다. <킹콩>을 토요일 새벽에 봤는데, 옆자리에 가방을 놓고 편하게 앉아서 킹콩과 공룡의 결투장면을 보고 있자니 정글에 온 기분이 절로 들었다. 사운드 빵빵하지, 화면 화려하지… 뻥을 좀 보태면 극장을 혼자 쓰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홈시어터가 잘 나온다 한들, DVD방 시설이 좋다 한들 극장에 비할 것이 못 된다.콩이 죽을 때 훌쩍거리면서도 부끄럽지 않았다(낯 모르는 남자가 옆에 앉아 있다가 우는 나를 흘끗거리면서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찰 때는 정말 기분 나쁘단 말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을 이미 기자시사회에서 봤지만, 토요일 새벽의 극장에서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음악은 대개 적막하다. 영화에는 쓸쓸해 보이는, 넓고 황량한 풍경이 등장하는데 음악은 외로운 두 주인공을 위로하는 듯 나직하게 울려 퍼진다. 북적이지 않는 극장에서 조용하게 <브로크백 마운틴>을 다시 보고 싶다. 두 주인공의 안타까운 사랑을 다시 느끼고, 그들의 서글픈 이별, 작별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갑작스런 이별을 눈물로 슬퍼하고 싶다. 토요일 새벽의 극장이라면 더없이 좋은 장소가 될 것이다. 풍경은 화면 밖으로 넓어지는 듯 깊게 다가올 것이고, 음악 역시 더욱 자연스럽게 들리겠지. 아마 나 말고도 훌쩍이는 사람들은 있을 것이다. 외로움을 느끼기에도, 감동을 느끼기에도, 북적이지 않는 극장은 제법 멋진 추억을 남기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