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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의 <데이지> 일기 [3]
정리 권민성 2006-03-14

31일째: 6월11일

오후에 우리 영화의 실질적 마지막 장면인, 비를 피해 광고판 아래 모여든 혜영과 박의, 정우 그리고 장 형사를 촬영했다. 광고판 아래 서로를 모른 채 서 있다가 비가 멈추면 각자의 갈 길을 간다. 날씨는 유난히 쌀쌀하고 비까지 뿌리니 한기가 몸을 감싼다. “No Matter What, Feature can be Changer!” 하지만 지나온 운명 같은 시간을 누가 저버릴 수 있을 것인가. 박의가 꽃밭이 있는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정우가 데이지를 들고 나타나지 않았다면 운명처럼 느껴지는 지나온 시간은 바꿀 수 없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 네덜란드의 하늘은 여전히 아름답고 가깝기만 하다.

33일째: 6월13일

광장의 한쪽 허가받은 곳에서 촬영이 이루어졌다. 박의가 정우의 차로 다가가고 주변에 장 형사를 비롯, 형사들이 잠복해 있고 광장은 암스테르담 한복판에 있는 ‘DAM SQ’이다. 많은 관광객과 행인들로 분주하다. 완전통제는 불가능하고 카메라와 배우 주변의 적당한 통제와 촬영을 모르는 사람들을 이용해 촬영을 했다. 순조로운 듯하지만 신경이 곤두서는 촬영이다. 감독님이 처음으로 정색을 하고 스탭들에게 화를 낸다. 왠지 모르게 나도 예민해진다.

43일째: 6월23일

혜영이 박의를 오해하는 신의 촬영이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받는 오해. 이것처럼 억울하고 섭섭한 일도 없을 것이다. 아무런 설정도 없이 상황에 나를 얹었다. 지현은 중요한 신인 만큼 감정에 이입돼 멍해지는 상태까지 이른다. 후반부의 도화선 같은 장면이다. 어찌 보면 우리 영화의 가장 중요한 장면일 것이다. 이 신에서 관객의 감정 동요가 없다면 마지막으로 가는 이후의 장면들도 무색해질 것이다. 오늘의 촬영으로 박의와 혜영의 암스테르담에서의 중요 촬영은 모두 끝났다.

44일째: 6월24일

이성재와 천호진의 마지막 촬영

인터폴 사무실. 성재 형과 천 선배님의 마지막 촬영. 스튜디오에 인터뷰 사무실을 꾸며 오전부터 저녁 시간 전까지 촬영했다. 천 선배님과는 많이 친해졌다. 쉬는 날에 손수 기타 연주를 한 CD를 녹음해서 우리에게 나누어주셨다. 멋진 선물이다. (중략) 암스테르담에서의 마지막 촬영날이기도 해서 분위기는 쫑파티와 별 다를 바 없었다. 이번처럼 회식이 많았던 영화는 이들도 우리도 처음이다. 그만큼 좋은 분위기에서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

46일째: 6월26일

촬영지로 설정된 초원에 미술팀이 심어놓은 데이지가 눈에 띈다. 혜영이 자전거를 타고 그림을 그리고 통나무 다리를 건너고 카메라가 A, B로 나눠져 멀리서 지현을 찍고 동시녹음은 급한 마음에 달려가 무선 마이크를 채우고 또 달려나오고 이미 촬영은 시작됐고. ^^ 이곳에서의 4일 촬영이면 <데이지> 촬영은 완전히 끝난다. 나는 촬영분이 없어 하루 종일 촬영장을 빈둥거렸다.

48일째: 6월28일

혜영이 다리를 발견하는 시점 숏. 박의가 다리를 만드는 모습 등을 크레인의 거침없는 움직임으로 필름에 담아냈다. 오늘의 마지막 신으로 혜영이 화구를 건지기 위해 물에 뛰어들고 박의 또한 혜영이 잃어버린 화구를 건지기 위해 물에 뛰어드는 장면. 초원을 흐르는 물은 소들이 들어가 마시고 배설물을 배출해놓고…. 수질이 의심된다. 지현은 농담으로 걱정을 나에게 건넸다. 그런데 ‘워터카’라는 단어가 들려온다. 의심되는 수질 때문에 연기를 끝내고 간단히 샤워할 수 있도록 물탱크를 준비한 것이다. 배울 만한 배려다. ^^

49일째: 6월29일

마지막 촬영날

무전기를 통해 ‘데이빗’의 목소리가 끝났다는 말을 전한다. 모든 촬영의 끝! 촬영 일수 35일. 너무나도 빠른 시간에 한편의 영화를 촬영했다. 최선을 다했는지에 대한 걱정 때문인지 지나간 연기의 순간들을 잠깐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악수와 포옹으로 서로의 고생을 환호로 격려하고 준비된 샴페인으로 촬영의 성공적 마침을 축하했다. 결과가 기대되는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결과에 실망과 자만을 없애기 위해 늘 기대라는 단어를 멀리했다. 나의 마음을 조바심나게 하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감독님과의 작업은 너무나도 즐거웠고 또 다른 작품도 같이 하고 싶다. 짧은 촬영 기간이 아쉽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많은 걸 담아냈다는 생각이 든다. 프로라는 생각을 절로 자아내게 만드는 홍콩의 제작부들, 감독님의 급한 성격을 너무나도 잘 받쳐주는 촬영팀과 조명팀, 미술팀. 현장의 잡일을 도맡아 하는 ‘하콰이’와 ‘아얀’. 동양인의 이국적 방식을 잘 소화한 더치팀. 한국과 전혀 다른 상황에서 잘 버텨낸 동시팀 ^^ 효진과 주드, 대만에서 온 캐롤라인 이들이 모두 <데이지>의 주인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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