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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의 <데이지> 일기 [1]
정리 권민성 2006-03-14

정우성이 <데이지>의 제작일지를 공개했다. 배우가 일지를 써서 언론에 공개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 글쓰기를 좋아하는 그는 먼 이국땅 네덜란드에서 49일(35회차 촬영)의 촬영기간 동안 거의 매일 일지를 썼다. 촬영이 끝날 즈음, 늘 품고 다니며 틈틈이 썼던 일지는 어느새 노트 한권 분량이 됐다. 극중에서 그는 차가운 킬러 박의 역을 맡았지만, 일지 속에 나타난 그는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깊고 섬세한 감성과 열정을 지닌 배우였다(참고: 각주에서 “”로 표시된 부분은 정우성이 직접 한 말이다).

첫 촬영: 2005년5월12일

오후 1시. 주차장 한쪽에 고사상이 차려졌다. 이곳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온 지 6일이 지난 뒤다. 그동안 배우들은 시차적응과 현지의 분위기를 익혔고 의상 피팅과 헤어 컨셉 등 캐릭터로 들어가기 위한 작업 등을 진행했다.

고사 지내던 날

감독님은 말한다. 6개월간의 긴 준비기간을 둔 작품은 <데이지>가 처음이라고. 이틀 전 회식자리에선 장문의 편지를 친필 사인과 함께 한국어와 광둥어, 그리고 영어로 써서 스탭들과 배우들에게 직접 전해주었다. 감독님이 <데이지>에 임하는 긴장감과 특별한 감정이 묻어 있었다. 고사는 중국식으로 치러졌다. 무사기원을 하늘에 비는 것은 한국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약간은 낯설고 친근감 있는, 그리고 재밌는 시간이었다. 고사가 끝난 뒤 영화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빨간 봉투에 복돈을 나누어주었다. 잘 간직해야지(각주: “홍콩에서는 죽는 연기를 하고 나면 꼭 복돈을 넣어준다고 하더군요. 배우가 죽는 연기를 하게 되면 기분도 좀 껄끄럽고 괜히 안 좋은 생각도 드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의식인 것 같습니다. 금액은 매우 작았습니다만 저는 현재도 그 돈을 지갑 속에 넣고 다닙니다”).

간단한 점심 식사 뒤 오후 3시. 촬영장으로 향했다. 날씨가 우리를 돕는 듯했다. 오락가락하던 비구름은 온데간데없고 화창한 날씨가 펼쳐졌다.

유위강 감독님은 정우(이성재)와 장 형사(천호진)와의 미팅과 연출부들과의 회의를 가진 뒤 첫 카메라 포지션을 결정했다.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배우가 분장을 마치고 등장하자 드디어 첫롤이 돌기 시작했다. 감독님은 촬영감독 출신답게 본인이 카메라를 잡았다(각주: “유위강 감독의 촬영은 매우 빠릅니다. 솔직히 매우 충격이었습니다. 그는 아직도 현장에서 2, 3대씩 돌아가는 카메라 중 한대를 직접 찍기 때문에 촬영이 꽤 빠르고,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략) 배우와 한국 스탭들의 적응은 빠르다. 두대의 카메라로 배우들의 연기를 신속하면서도 매끄럽게 담아냈다. 오후 10시경 첫 촬영은 성공적으로 끝난 것 같다.

2일째: 5월13일

간단히 운동을 한 뒤 오후 5시 촬영장으로 출발했다. (중략)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분장실에서 마지막 수정본을 읽었다. 중국어와 한국어에서 느낄 수 있는 차이점이 몇 군데 드러난다. 자막으로 읽으면 멋있는데 말로 하려니 어색하고 약간 닭살스러운 느낌이 있다. 연기를 하면서 바꿔나가야 할 것이다.

전지현과 첫 촬영

4일째: 5월15일

지현이와의 첫 촬영. 보트하우스. 영화의 중반 이후 등장하는 장면들이다. 처음 생각했던 박의(정우성의 배역)의 톤과는 다른 감정의 등장들이다. 첫 대사를 하는 것이 가장 부담스럽다. 지현이 역시 첫 촬영을 영화 중반 이후의 감정신들을 찍으려니 부담스럽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두개의 대사신을 정신없이 수다스럽게 애드리브까지 섞어가며 찍었다. 내가 생각한 박의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다. 잘했는지… 이 신들의 감정에 맞게 앞뒤 신의 감정톤을 정해야겠다.

7일째: 5월18일

총 폼새를 봐주는 진가상

화창하고 좋은 날씨에 촬영은 잘 끝냈다. 골든(각주: <데이지>의 각색자이자 Co-프로듀서. 다른 이름 ‘진가산’)이 자꾸 총을 처음 다뤄보는 사람 취급하는 데 나도 여러 총을 쏴봤으며 잘 쏜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의 적극적 참여를 막고 싶지 않아 그저 “예, 예, 예, 예”만 했다(각주: “<데이지>에서 킬러 ‘박의’를 생각했을 때 모습의 설정이나 멋스러움보다는 감정 표현에 더 신경 썼습니다. 나름 준비한 거라면 사격하는 모습의 사진을 보고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준비했고 네덜란드에 가서도 실제 사격 연습장에서 시간을 보냈지요. 그들은 총격액션 전문가들이었고, 총격액션 전의 안전부터 실제 총격에서 참고해야 할 여러 사항을 알려주었습니다. 평소에도 사격 게임 등을 즐기는 편이라 어렵거나 생소하진 않았습니다”).

8일째: 5월19일

흐린 날씨에 바람이 거세다. 다행히 바람은 그리 차지 않다. 오전 촬영을 간단히 끝낸 뒤 광장 한쪽에서 지현과 성재 형의 촬영을 지켜봤다. 지켜보고 있자니 박의는 혜영을 알고부터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다가갈 수 없는 외로움. 가질 수 없는 외로움. 모든 감정은 욕심에서 파생되는 것이겠지…(각주: “박의는 외로움 속에서 사는 사람이죠. 그 외로움에 익숙하기에 그와 닮은 다른 사람의 외로움도 금세 알아차리죠. 그리곤 지나치지 못하죠. 나와 닮은 점입니다. 박의는 짝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 등등 특별한 몰입이라기보다는 그냥 박의 자체가 저라고 어느 순간 믿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마지막 촬영으로 장문의 영어대사를 찍었다. 며칠 전부터 외우고 또 외워서 그런지 별 긴장감 없이 해낸 것 같다. 다행이다.

11일째: 5월22일

첫 총격신을 찍었다. 무술감독 디온이 며칠 전 촬영부터 나와 광장을 둘러보고 감독의 의견을 듣고 상황을 구성해서 그런지 긴장감과 흥분됨 없이 계획대로 정확히 찍어나갔다. 디온은 할리우드에서 <스파이더 맨2>를 무술감독을 했고, 그의 스승은 <매트릭스>를 무술감독했다고 한다. 이미 그는 세계적 무술감독이고 그의 노하우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그가 우리 영화에 참여한다는 건 든든한 힘이다.

12일째: 5월23일

유위강 감독과 정우성

골동품 가게. 배우로서 작품의 여러 가지에 관여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같이 연기하는 배우의 대사나 감정선의 수정 같은 부분에선…. 이전 작품들에선 감독에게 직접 얘기해 감독이 수용하면 그것을 전달해주고 또 배우의 의견이 접목돼 연기에 반영되는 식이었는데…. 감독님은 나의 시나리오에 대한 이해도를 인정해주시는 것 같다(각주: “유위강 감독님과도 촬영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짧은 영어와 중국어로 충분히 서로의 의사를 전달하고 알아들어 현장에선 거의 통역이 필요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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