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파리라는 도시가 이국과 모던함의 대명사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있는 대로 혀를 굴려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을 읊조리고, 대사 하나 없는 프랑스영화를 꼿꼿이 앉아 보는 것이 로맨티스트의 증거였다. 프랑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우리는 비교적 빨리 털어버린 듯하지만, 일본에서는 아직도 그 기운이 적지 않게 남아 있나보다. 그들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통해 프랑수아즈 사강을 기억하고, 시부야케이의 음악에서 프렌치 팝의 리듬을 되새기고, 하라주쿠 라포레 백화점에서 로코코풍의 프릴 드레스를 쇼핑한다. 나카노 시즈카의 <별을 새기다>는 그렇게 잔존하고 있는 프랑스풍 모던함의 만화 버전이다.
나는 처음 나카노의 만화를 보고 당연히 1980년대의 작품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스타일이 촌스럽다거나 고루한 정서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 날카로운 세련미, 한 획의 허점도 찾을 수 없는 정교함, 쿨한 척하면서도 로맨틱한 정서는 자꾸만 그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고도성장의 과실 덕분에 도쿄는 멋쟁이 소녀들로 넘쳐나고, 와인과 파스타와 재즈 등 갖가지 서구 문화의 결정체들이 몰려들어오던 때다. 역시 10여년의 황금기를 지나온 소녀 만화가들은 구태의연한 극단을 벗어던지고 최선의 담백함과 서구풍의 발랄함으로 멋쟁이들의 도회 생활을 그렸다. 1969년생인 나카노는 바로 그 시대에 활동했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작가다. 그러나 딱 한 번의 투고에 좌절한 뒤 긴 잠에 빠져 있던 그녀가, 포스트모던도 지루해져버린 21세기의 한낮에 정말로 청초한 새벽의 모던함으로 등장한 것이다.
여학생풍 동거 이야기 ‘화음 아파트’, 사소설 구조의 기담 ‘향기 도령’, 프랑스 청소년 소설을 보는 듯한 ‘세 꼬마 오로라 보이즈’ 등 그의 단편들은 판타지와 우화를 깔끔하면서도 정교한 그릇에 담아내고 있다. 그 그릇의 재료는 다채로운 농담을 화려한 무늬로 새긴 스크린 톤인데, 서구와는 달리 흑백의 환경에서 생존해야 했던 동양의 만화가들이 색채의 표현법으로 터득해낸 것이 바로 스크린 톤의 적극적인 활용이다. 전통적으로 펜 선의 빈칸을 채우는 데 사용되었던 스크린 톤을 독자적인 표현법으로 끌어올린 것 역시 1980년대의 소녀 만화. 하지만 그 기법의 가장 세련된 완성은 20년 뒤에 홀로 별똥별처럼 뚝 떨어졌다.
해머로 사람들의 머리를 쳐 별의 모양을 관측하는 학자, 한 아파트에서 살면서 뒤죽박죽의 화음과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는 젊은이들, 급우들에게 핀으로 찔린 팔뚝으로 검은 종이에 별을 새기는 소년 등 나카노는 감각적인 이야기와 매력적인 주인공들로 우리를 맞이한다. 그러나 그녀와의 티타임을 제대로 즐겼다고 자랑하려면, 장면과 장면을 가로지르며 기묘한 앙상블을 만들어내는 톤과 스크린의 향기를 들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