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와 강자는 무엇이 다른가. 강자는 끊임없이 남과 겨루어 자신을 확인하는 강박증 환자이다. 같은 길 위에서 승리를 포기하면서도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면 그가 바로 고수다. 팔다리를 움직이는 기술보다는 마음을 갈무리하는 자제력이 두 존재의 갈림길이다. <무인 곽원갑>은 강자였던 곽원갑이 고수로 성장하는 일대기를 다룬다. <무인 곽원갑>이 향하는 목적지는 불교 화엄경에서 말하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에서 만들어지는 것)의 실현이다.
어린 곽원갑은 공부에는 별반 관심이 없다. 그는 아버지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몰래 무술을 연마한다. 라이벌과의 대결에서 아버지 곽사부는 손속에 인정을 두다가 패한다. 그 모습을 본 곽원갑은 톈진의 최고수가 되리라 다짐한다. 청년으로 자란 곽원갑(이연걸)은 생사를 건 대결 속에 살아간다. 마지막 상대 진사부와의 대결에서 그는 승부에 집착해 진사부를 살해한다. 보복으로 가족이 살해당한 곽원갑은 절망에 빠진다. 세상을 헤매던 그는 시골 마을에 당도해 맹인소녀 문(베티 선)을 만나 삶의 새로운 의미를 깨닫는다. 천지개벽한 톈진으로 돌아온 곽원갑은 정무체조회를 만들고 외세가 주도한 무술대회에 중국을 대표해 참여한다.
이연걸과 원화평이 빚어낸 <무인 곽원갑>의 액션 시퀀스는 탁월하다. 높은 망루에서 벌어지는 조원과의 대결은 하늘을 배경으로 이연걸의 눈부신 몸놀림을 선명하게 포착한다. 객잔에서 벌어지는 진사부와의 대결은 빼어난 공간 활용과 속도감 넘치고 힘있는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다만 이야기는 현란한 액션 시퀀스를 제대로 받쳐주지 못한다. 나이 든 곽원갑이 왜 정무체조회를 만들고 외세의 계략에 맞서는지 <무인 곽원갑>의 플롯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이후 곽원갑은 맹목적으로 계몽적인 인물로만 그려진다. 안도(나카무라 시도)와 차를 마시는 장면과 마지막 대결에서 군중을 선동하는 모습은 훈계조로 비약한다. 이는 이연걸이 주장하는 “자기자신의 내면을 향하는” 고수의 풍모가 아니다. 그보다는 이연걸이 반복해서 연기했던 민족영웅의 모습에 가깝다. 역설적인 결론을 제시하는 <무인 곽원갑>은 좀더 세심한 캐릭터 만들기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할리우드에서 오랜만에 홍콩으로 귀환한 우인태 감독은 <백발마녀전>의 서정성을 잊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