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가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는 동서양을 불문하고 큰 차이가 없다. 어두운 곳에 살고, 더러우며, 질병을 옮기는 해로운 생물. 영화 속에서도 여자들은 쥐만 보면 하나같이 자지러질 듯 비명을 지르고, 그보다 대담한 이들도 그저 쥐를 때려잡지 못해 안달이다. <윌러드>는 쥐에 대한 기존의 혐오감을 극대화한다. 인간을 뜯어먹는 식성을 갖춘 <윌러드>의 쥐들은 단순히 불쾌함을 주는 차원을 넘어 생명까지 위협하는 ‘괴수’다.
<윌러드>는 1971년에 만들어진 동명의 공포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길버트 랄스톤의 소설 <쥐 인간의 노트>를 각색했던 오리지널의 이야기 구조를 그대로 가져왔다. 주인공 윌러드(크리스핀 글로버)는 소심한 성격으로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남자다. 병든 노모와 단 둘이 살아가며 종업원 일로 생계를 이어가지만, 사장 마틴에게 온갖 모욕과 수모를 당하기 일쑤다. 어디에도 섞이지 못하는 외톨이 윌러드의 유일한 친구는 지하실에 살고 있는 쥐들. 괴롭고 힘들 때마다 그는 어둠 속에 틀어박혀 쥐들과 살을 부빈다.
‘쥐 인간’이라는 설정은 언뜻 보기에 기괴함을 앞세우려는 악취미인 듯싶지만, 그 속에는 세상에 대한 냉소가 짙게 깔려 있다. 윌러드를 향한 사장 마틴의 지독한 악의는 자본의 논리로만 작동하는 사회의 비정함을 드러낸다. 단 1분의 지각도 곧장 생산성 하락으로 연결되는 시스템 속에서 느린 윌러드는 폐기처분의 대상일 뿐이다. 반쯤 미쳐버린 노모가 유령처럼 배회하며 감시의 눈길을 거두지 않는 집도 안식처와는 거리가 멀다. 멀쩡해 보이는 저택 곳곳에 들끓고 있는 쥐들은 자본주의 사회가 번드르르함 뒤편에 감추고 있는 모순과도 맞닿아 있다. 억압의 장본인인 노모와 사장을 향한 쥐떼의 공격이 단순한 잔혹극 이상의 설득력을 얻는 것도 그 덕분이다.
문제는 쥐떼가 괴수에 걸맞은 공포감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컴퓨터그래픽으로 탄생한 쥐떼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시각적으로는 화려하나 지나치게 빈틈이 없어 자동인형 같다는 느낌을 준다. 쥐떼가 그럴싸한 장식품으로 전락한 탓에 영화는 대부분의 시간을 크리스틴 글로버의 연기에만 의존한다. 움푹 들어간 눈을 번뜩이며 음침한 목소리로 쥐에게 애정을 속삭이는 글로버의 모습은 섬뜩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긴장감을 잃어버린 영화 속에서 그의 열연은 좀처럼 빛을 발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