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인터뷰는 www.indielondon.co.uk, www.afterelton.com, www.blackfilm.com에 나온 리안 감독 인터뷰를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이 작품이 영화화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나. =거의 4년 전이었다. 나는 프로듀서 제임스 샤무스가 내게 추천해준 애니 프루의 소설과 대본을 읽었다. 30쪽의 소설을 읽은 순간 숨이 막혔다. 특히 주인공 중 하나가 “우리가 가진 건 브로크백 마운틴뿐이야. 모든 게 거기서 시작된 거야”라고 했을 땐. 결말 즈음에는 내 눈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여태껏 한번도 본 적 없는 미국의 리얼한 시골 생활을 다룬 매우 독창적인 작품이었다.
-히스 레저와 제이크 질렌홀을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 =나는 20대 초반의 젊은 배우들을 원했다. 그들이 20년 전과 후를 연기하기에 더 낫다고 판단했다. 그들은 최고였기에 선택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레저는 웨스턴적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그는 좀더 남성적이고 수심에 잠겨 있지만 상처받기 쉽거나 화를 폭력적으로 나타내지 않는다. 그는 전문 코치에게 사투리를 배웠는데 빨리 적응해서 문제가 없었다. 질렌홀의 경우 로맨틱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어 캐스팅했다. 질렌홀이 <투모로우>의 프로모션차 일주일간 떠나 있어서 우리는 그를 좀 기다려야 했다. 나는 다른 배우들을 봤으나 더 젊은 배우들에게 젊음의 순수함을 이용해 나이든 역할까지 맡기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서로 매우 달랐고 그래서 축복이었다. 멋진 커플이라고 생각한다.
-주연배우들이 키스신을 찍을 때 히스 레저가 제이크 질렌홀의 코를 거의 부러뜨릴 뻔했다는데. =그렇다. 내가 좀더 열정적인 키스를 하라고 주문했기 때문이다. 나는 배우들에게 여자와는 그런 격렬한 키스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가장 대담한 웨스턴식의 키스를 퍼부으라고 말했다.
-에니스가 캠프장에 도착한 뒤 잭이 그 앞에 나타나 말한다. “어디 갔었어? 하루 종일 양 치고 오느라 배고파 죽겠는데 여긴 콩밖에 없잖아!” 이 장면은 마치 1960년대 부인이 남편에게 하는 대화 같다. 멋진 장면이다. 그들의 관계를 위한 토대를 놓을 생각이었나. =그렇다. 그 장면은 매우 민감한 작업이 필요했다. 장면이 이어지면서 그것은 점점 섹스를 향해 가기 때문이다. 그들은 함께 사는 파트너이고 누군가 요리를 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한다.
-배경이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로맨스 외에 주안점을 둔 부분은. =훌륭한 로맨스는 거대한 장애물과 매끄러운 구성이 중요하다. 로맨스와 사랑은 추상적인 아이디어이자 환영이다. 나는 구성을 짜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장애물들이 그들의 로맨스를 돕도록 만들었다. 그것이 상상하기 편하고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게 한다. 그들은 매우 남성적이지만 로맨스는 부드럽다. 그들의 혼합은 매우 재밌고 신선하며 사랑이 무엇인지 더듬어 나가기 편하게 만들었다.
-<결혼 피로연>과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최고의 동성애 영화를 만든 감독이란 평가까지 듣는다. 사람들이 당신을 동성애 영화감독이라고 판단하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는가. =<결혼 피로연> 이후 게이와 레즈비언, 가족 드라마 등의 연출 의뢰가 쏟아져 들어왔다. 내가 최고의 동성애 영화를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 내가 동성애 영화를 만들었는지 아닌지도 혼란스럽다. 동성애를 다룬 두 영화(<결혼 피로연>과 <브로크백 마운틴>)는 내게 다른 의미다. 전자는 내가 늘 접해온 가족드라마다. 내가 자라면서 본 중국의 가족드라마에는 동성애 문제가 나타난다. 나는 왜 <결혼 피로연>이 대만에서 크게 히트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폭넓게 수용된 것일까 생각해봤다. 그전까지 어떤 남자도 남자에게 키스한 적이 없었는데 그 틀을 깬 첫 영화였기 때문일 것이다. 수천명이 놀라서 헐떡이다 진정하고 영화의 나머지 부분을 보았다. 그들은 그 영화를 좋아했다.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주류영화다. 반면 <브로크백 마운틴>은 로맨틱 러브스토리가 중심에 있다. 그것은 내게 좀더 깊이 고민할 문제다. 운좋게도 나는 이 영화를 통해 감독으로서 더 경험을 쌓았고, 한 인간으로서도 더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잭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 에니스가 잭의 부인 루린에게서 전화로 듣는 장면이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실치 않은 부분인데 어떻게 봐야 하는가. =루린은 화가 잔뜩 났고 별로 말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녀는 브로크백 마운틴에 가본 적도 없고 완전히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 당시 에니스의 관점에서 상상하는 수밖에 없다. 그가 어렸을 때 겪은 나쁜 기억를 떠올린다면 이해는 좀더 명확해질 것이다.
-앤 해서웨이는 흥미로운 캐스팅이다. 그녀의 매력은 무엇인가. =그녀에게 마지막 장면, 즉 화가 나면서도 미묘한 질투심을 표출시키는 전화 대화 장면의 리딩을 시켰다. 그녀가 인상적이고 정확한 리딩을 해서 매우 놀랐다. 오디션에서 그녀는 자신의 우스꽝스러운 머리와 화장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난 <프린세스 다이어리>를 보지 않았는데, 나중에야 그녀가 <프린세스 다이어리2>를 찍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영화가 당신의 다른 영화들에 비하면 어디쯤 속해 있는가. =가장 편한 영화다. 나는 이전의 두편 때문에 완전히 녹초가 돼 있었다. 내 경력을 쌓는 데는 도움이 됐겠지만 <헐크> 때는 몸이 완전히 망가졌다. 나는 오랫동안 영화를 찍지 못하거나 은퇴해야 했을 정도다. 제한된 관객을 타깃으로 한 저예산영화를 만드는 것은 내게 마치 치료 과정과도 같았다. 나는 영화를 만들면서 우울할 틈도 없었고 사랑하는 기분에 취해 있었다.
-영화 만들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은. =어떻게 시대를 보여줄 것인가의 문제였다. 이 영화는 서사극이지만 인생의 짧은 단편이기도 하다. 사건은 매우 빨리 일어났지만 20년의 흐름을 다룬 만큼 드라마틱하기도 해야 한다. 감독으로서 시대 문제를 건드리려면 디테일이 중요하다. 연기의 디테일과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방식 등 작은 것들간의 격차를 채우는 것, 그리고 남성적인 웨스턴 장르와 웨스턴의 생활 방식을 동성애 이야기와 엮어야 하는 점이 힘들었다.
-다음에 준비하는 작품은. =뭔가 중국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