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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파라치 - 효과적 처방인가 무리한 제재인가
이영진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2006-03-01

“서버 정보 혹은 서버 공격에 대한 글을 시네티즌 및 안티사이트 등에 계속 올리시는 분들 또한 해킹과 관련된 분들로 판단될 경우 법적 절차에 착수될 수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지난 2월11일, 영화 관련 사이트 시네티즌(www.cinetizen.com)은 자유게시판을 통해 “서버 해킹을 시도하거나 부추기는 모든 행위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앞서 2월8일 시네티즌은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및 컴퓨터 업무방해’ 등을 이유로 서버 해킹을 시도한 혐의자를 사이버수사대에 고소하기도 했다. 시네티즌은 2월1일부터 법무법인 일송과 함께 영화 불법파일 신고포상제인 영파라치를 운영하고 있는 온라인 사이트다. 이에 일부 네티즌들은 해킹과 같은 극단적인 방식도 가리지 않고 영파라치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2월23일까지 4만9천여건 신고 접수

실제 시네티즌 자유게시판은 영파라치 제도를 둘러싼 격한 논란으로 도배되어 있다. “신고접수 현황을 보니까 여기는 신고가 되어 있질 않네요”(newsy9)라는 친절한 언질이 있는가 하면, “1만∼2만원 때문에 자신의 가족과 친척, 친구들을 범법자로 신고하시는 건지 의문스럽네요. 그리고 신고하는 당신들은 인터넷에서 영화를 다운받아본 적이 전혀 없다는 것인가여?”(ohoh111)라는 반응도 나온다. “지금 영파라치 만든 취지가 무엇입니까? … (중략)… 영파라치를 통하여 합의금을 받아내는 것입니까?”(asfh)라고 따져묻기도 하고, “개봉한 지 아주아주 오래된 옛날영화 또는 한국에서 개봉 못한 외국영화까지 공유할 수 없게 하는 것은 너무한 처사”(cngsh)라는 지적도 올라와 있다. 피신고됐다는 연락을 받을 경우, “고소절차 없이 개인 정보를 빼낸 것”이니 강하게 맞대응하라는 조언까지 떠 있을 정도다.

온라인 불법 다운로드 이용자 규모(웹하드 이용자 한정-단위: 만명)

효과적 처방인가 무리한 제재인가, 영파라치 논란이 불붙은 가운데 시네티즌 접수 사이트는 불법영화 파일 신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2월23일 현재까지 접수된 불법복제 파일 유포는 4만9천여건에 달한다. 시네티즌의 김종엽 실장은 “이렇게까지 신고가 폭주할 줄 몰랐다”며 “지금도 분당 평균 1건씩 접수되고 있다”고 전한다. 서버가 다운된 적도 있었고, 처음 5명으로 시작했던 영파라치 운영팀은 현재 20명으로 늘어났을 정도다. 건당 1만원 혹은 영화예매표를 받는 신고자의 경우 한 사람이 1600건이나 접수한 경우도 있고, 100건 넘게 피신고당한 이들도 있다. 시네티즌쪽은 “60∼70% 정도가 증거가 충분한 정상적인 신고”라며 “대개 피신고자들이 청소년인데다 가장 큰 목적이 계도인 만큼 범법 사실을 알고서 미리 연락을 해오면 5만원의 사전합의금으로 저작권자인 영화사와 합의를 중재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전합의제 끝나는 3월부터는 벌금 70만∼80만원

사전합의제는 그러나 2월 한달뿐이다. 3월부터서 피신고자는 저작권자와 곧바로 합의에 들어가게 된다. 합의 금액은 현재 저작권자가 직접 불법 영화파일 유통 혐의자를 고소할 경우, 혐의가 인정된다는 전제에서 추징당하는 벌금이 건당 70만∼80만원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시네티즌은 법무법인 일송과 함께 피신고자가 저작권자와의 합의를 거부할 경우, 민·형사상 소송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이 두곳에 권리를 위임한 영화사들은 일단 영파라치 제도의 효과에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다. 스폰지의 조성규 이사는 “영파라치 제도 도입 이후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다”며 “현재 상영 중인 M영화는 온라인상에서 불법 업로드가 전혀 없는 상황이다”라고 전했다. 개인 웹하드 등을 제공하는 형태로 불법파일 공유가 잦았던 I, P, C사이트 등은 영파라치 제도 시행 이후 이용자들의 클릭이 뜸한 상태.

하지만 공유를 제지당한 네티즌의 불만은 좀처럼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저작권자들로부터 권리를 위임받지 않은 영화들까지 시네티즌쪽이 나서서 증거 접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시네티즌쪽은 권리를 위임받지 않은 영화들은 일단 가접수 형태로 처리하되, 이후 저작권을 갖고 있는 영화 관련 업체에 연락을 취해 권리 위임 여부를 묻고 있다. 이때 저작권자가 위임하겠다고 하면 가접수된 이는 신고대상이 된다. 애초 저작권을 위임받은 영화들에 한해서만 신고 접수를 받겠다는 입장을 바꾼 것과 관련해 시네티즌쪽은 “제도의 목적이 불법파일을 근절시키기 위한 것임을 감안해서 그렇게 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저작권자가 직접 고소를 해야 죄의 유무를 물을 수 있는 친고죄임을 감안하면 시네티즌쪽의 행위는 명백한 ‘오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법무법인 한결의 조광희 변호사는 “취지를 이해하지만 권리를 위임받지 않은 상황에서 접수나 다름없는 행위를 하는 것은 무리가 많다”고 지적했다.

관련법 개정 등 장기적인 대책 마련 지적

영화계 안팎에서는 일단 영파라치 제도가 실효를 거두고 있지만 장기적인 대책일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영화인회의 영상산업정책연구소 김도학 수석연구원은 “불법파일을 주고받는 이들도 관객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면서 “계도가 목적이라면 불법파일을 주고받은 적이 많지 않은 이들에게 사전합의 기간을 좀더 준다든지 하는 그런 완화된 세부 기준을 만들어서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또한 영파라치 등의 미봉책보다 “미국처럼 사이트 운영업자들에게 더욱 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게 맞다”고 덧붙인다. 불법파일 유통을 방조하면서 온라인 사이트 업체들이 접속자 수를 늘리고, 광고를 따내는 등 수익을 거둬온 것이 사실인 만큼 불법파일 유통을 근절시키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유저들에게 칼을 겨누는 것이 아니라 관련법 개정을 통해 온라인 업체들의 면책조항을 들어 빠져나갈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불법파일 유통을 줄이기 위해선 차라리 양성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제작자는 “처벌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수요가 있는 만큼 유료화 등의 방식을 도입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듯하다. 수익이 가능한 것인가 하는 문제 외에도 이익업체들간의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단 VHS, DVD 관련 업체들의 반발을 예상할 수 있다. 유료화를 도입할 경우, 부가판권 시장의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수익 분배에서도 문제가 쉽지 않을 듯 보인다. “유료 다운로드를 합법화할 경우 무료를 원하는 네티즌은 또다시 다른 방식의 불법파일 유통을 시도할 것”이라는 반대도 만만치 않다. “떳떳하게 돈 내고 보겠다”는 네티즌의 요구를 수용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묘책은 없는 것일까.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이원재 사무처장은 “영파라치나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저작권법 개정안처럼 처벌과 규제만을 늘리려고 할 경우 반발만이 늘어난다”면서 다른 접근방식을 주장한다. 그는 “공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저작권 관련 수익을 도서관이나 시네마테크 등의 기금을 마련하는 데 쓰겠다는 발상 전환 등이 필요하다. 돈 내고 써라. 안 그러면 고발하겠다는 자본의 입장을 반영하는 계도만으로는 유저들을 설득할 수 없고, 불법 영상물 유통 근절 또한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덧붙인다.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열린 ‘불법복제 방지를 위한 대토론회’에 따르면, 불법복제로 인한 국내 영화산업의 피해액은 추정방법에 따라 최소 1100억원에서 최대 2800억원에 이른다. 이를 감안하면 영파라치 제도의 도입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배타적 소유만을 강조하는 저작권 이해만으로는 업체와 유저가 함께 웃기란 요원한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