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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수 기독교주의의 교리에 따른 사랑 예찬, <앙코르>

<앙코르>는 1950, 60년대를 풍미한 미국의 컨트리 가수 자니 캐시의 일대기를 기초로 만든 영화다. 1955년 선 레코드사의 오디션을 통해 본격적으로 음악계에 뛰어든 자니 캐시는 가스펠적인 감수성을 갖고 있었으며, 로큰롤과 블루스 그 어딘가에서 자신의 음악적 집을 지은 뮤지션이었다.

1955년에 나온 첫 번째 싱글 히트곡 <크라이, 크라이, 크라이>에 이어 1956년 <폴섬 감옥 블루스> <아이 워크 더 라인> 등을 연달아 내놓으며 컨트리 음악계의 정상에 올랐다. 제리 리 루이스, 엘비스 프레슬리 등과 같은 시기에 활동했으나, 자신만의 매력적인 저음의 보이스를 과시하며 인기를 끌었다. 1968년 <폴섬 감옥 라이브 콘서트> 앨범은 그해 나온 비틀스 앨범보다 많은 판매고를 올렸다고 한다. <앙코르>는 자니 캐시가 걸어온 자전적인 음악의 길과 함께 그가 평생 동안 애정을 바친 여자이자 또 한명의 유명 컨트리 가수인 준 카터와의 사랑을 뼈대로 하고 있다.

교도소의 재소자들은 박수를 치며 이제 곧 등장할 자니 캐시(와킨 피닉스)를 연호한다. 풀섬 감옥 재소자들을 위한 공연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무대 뒤편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자니. 그는 작업대 위에 놓은 전기 톱날을 바라본다. 그리고 영화는 자니의 시점을 통해 곧장 유년 시절 그의 기억 안으로 빨려들어간다. 엄격하고 무서운 소작농 출신 아버지 밑에서 자니와 형은 날마다 일을 하는 것 외에는 별 다를 게 없다. 오로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따라 부르는 것이 유일한 삶의 출구다. 어느 날 형이 목재를 자르는 나무 톱날에 몸을 다쳐 세상을 떠나고, 이 일은 자니의 평생을 쫓아다니는 무서운 악몽이 된다. 성인이 되어 고향을 떠나 공군에 입대하고, 다시 첫 부인을 만나 멤피스로 옮긴 뒤에도 자니의 인생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그가 생존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주방용품 외판원이다. 그러나 우연히 레코드사를 발견하고 오디션에 응한 자니는 이후 유명세를 타며 승승장구 음악의 길을 걷는다. 투어 과정에서 바로 나머지 인생의 반려자 준 카터(리즈 위더스푼)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난데다 두번의 이혼이 피해의식으로 남은 준은 쉽게 자니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전처와의 문제, 준과의 관계 등으로 실의에 빠져 자니는 점점 더 마약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나 준이 자니의 재활을 도우면서 둘의 관계는 급속도로 회복되고, 공연 도중 만인 앞에서 자니가 준에게 청혼하며 둘의 사랑은 결실을 맺는다.

전기영화 특히 음악인을 주인공으로 한 전기영화가 대다수 그렇듯이, <앙코르>에는 불우한 시기를 딛고 일어선 불굴의 음악인이 있다. 주인공 자니의 경우에는 사고로 죽어간 형에 대한 기억과 힘들게 성공하기까지의 역정이 있다. 여기에는 항상 한 가지가 더 뒤따르는데 성공 이후 부와 명예를 취득했으나 그 속에서 고독과 허무로 고통스러워하는 인물의 뒤안길이다. <앙코르> 역시 자니의 그런 모습을 부각한다. 자니의 경우는 한 여자를 사랑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사랑을 공적인 방식으로 승낙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오랫동안 이 둘 사이의 밀고 당기는 갈등을 보여준다. 이것이 <앙코르>의 큰 뼈대 중 하나이며, 무대 뒤에서의 이야기다.

무대 위에서의 이야기는 노래를 통해 흘러나온다. 와킨 피닉스와 리즈 위더스푼은 영화에 나오는 공연 장면에서의 모든 곡을 직접 부르는 재미를 선사하기도 하는데, 실력이 가히 수준급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투어 과정 중에 함께 노래를 부르는 자니와 준의 모습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이를테면 영화 속 공연 장면을 눈과 귀로 즐기는 것과 무대 뒤 그들의 사랑의 갈등을 심정으로 뒤쫓는 것이 <앙코르>의 영화적 재미다. 미국의 평자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데에는 실제 인물들의 호소력있는 삶과 주연배우들의 호연, 영화의 상업적 친화도라는 점들이 적중했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자니 캐시와 준 카터는 결혼한 뒤 2003년 준 카터가 사망할 때까지 평생 음악과 삶의 길을 같이 걸었으며, 영화 속에는 준이 죽은 5개월 뒤 자니도 세상을 떴다는 감동적인 문구가 적힌다.

그러나 <앙코르>는 미리 들려온 소문만큼 풍성한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와킨 피닉스와 리즈 위더스푼의 연기가 충분히 시선을 사로잡을 만하지만, 영화는 자니의 삶에 놓인 우여곡절의 계기들을 유연하게 엮어내지 못한다. 일례로 형에 대한 기억과 아버지에 대한 불편함, 준에 대한 사랑의 갈증 등이 다소 맥락없이 자리를 바꿔가며 지지부진하게 흘러간다는 점이 흠이다. 혹은 보는 이에 따라 <앙코르>는 미국 보수 기독교주의의 교리 또는 그것에 따른 사랑 예찬 그 이상이 아니다. 자니의 재활을 돕기 위해 준이 실행하는 것은 일가족을 데리고 그의 집에 머무르는 것이고, 총을 들고 마약 거래상을 쫓아내는 것이다. 자니는 마약에서 깨어나지만, 그 순간 섬뜩한 미국의 보수주의가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안전망으로 재확인된다. 영화 내내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던 자니와 아버지의 관계가 성급하게 회복세에 접어드는 것도 이런 측면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건 실제로 그들의 삶과 음악이 어땠는가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는 영화의 태도다.

<앙코르>는 흥미로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전기영화이면서, 훌륭한 뮤지션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적절한 음악영화이지만,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아카데미를 만족시킬 만한 수준의 태도를 견지한 영화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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