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적 글쓰기에는 분명한 매뉴얼이 있다. 기획안을 작성하는 법 혹은 논문을 쓰는 법에 대해서라면 주변 사람의 가르침이나 관련 서적 한권만 읽어도 요령을 깨칠 수 있다. 실용적 글쓰기를 위해서는 머릿속에 언뜻 떠올랐다가 사라지기 일쑤인 영감을 기다리는 것보다 엑셀이나 파워포인트를 잘 쓰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 창조적인 글쓰기는 어떨까. 불행히도 열 사람에게 물어보면 열 사람 다 다른 말을 하고, 자기 안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다면 요령을 알아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탁석산의 글짓는 도서관>은 황석영이 고등학생일 때 <입석부근>으로 <사상계>에서 신인문학상을 받은 예를 들며 대가의 경우는 처음부터 남다르다고 일침을 놓는다. 하지만 창조적 글쓰기를 하는 모든 사람이 황석영이나 셰익스피어를 꿈꾸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은 이야기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공감하기 위해 서투르지만 진심어린 문장을 하나씩 써가는 사람들을 위한 가볍고 즐거운 가이드다. 창조적 글쓰기에 관한 많은 책이 시중에 나와 있지만, 어느 책부터 읽어야 할지, 글쓰기 책을 읽으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몰라 두손 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콩트이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것. 하고 싶은 얘기가 아무리 많아도, 소재가 독특해도, 재능이 뛰어나도 당신이 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 말이다. 창조적 글쓰기는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최고의 슬로 푸드다.
멋지게 골대 안으로 휘어져 들어가는 박지성의 프리미어리그 데뷔골을 보고, 백수지망생 이양은 소설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중에 혹시라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1할만큼이라도 유명해지면 그렇게 말하는 게 멋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흐뭇해진 이양은 박지성의 활약 소식을 전하는 스포츠 뉴스를 보고 또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소설의 첫 문단을 쓰려다가 이양은 깨달았다. 소설을 읽고 즐기는 법은 깨우쳤으나 쓰는 법은 아무도 알려준 적이 없었다. 유난히 귀가 얇아 홈쇼핑에서 “매진 임박”이라는 말만 들으면 무의식적으로 전화기를 드는 이양은, 소설 쓰는 법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인들에게 물어보고 발품을 판 끝에, 이양은 창조적 글쓰기에 관한 책들을 몇권 찾아내 읽었다. 그리고 노트북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1. 영감님, 영감님, 대체 어디 계신거에요?
‘영감’님이 도무지 살갑게 말을 걸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하던 이양, 일단 슈퍼에서 소주를 한병 사와 술기운으로 ‘영감’님을 불러내보려 했다. 그런데 이양은 뜻밖의 말을 듣는다. “당신이 진정으로 불후의 명작을 완성시키고 싶다면 위스키를 마셔서는 안 된다. 대신에 셰익스피어와 테니슨, 키이츠, 네루다, 홉킨스, 밀레이, 휘트먼…. 이들의 글을 소리내어 읽고 또 읽어 당신 몸을 그들의 운율에 맞춰 춤추게 만들어야 한다.”(<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나탈리 골드버그 지음|한문화) 불후의 명작을 쓰겠다는 마음은 없지만 술 마시지 말라는 충고에 바짝 긴장한 이양은 다시 넋놓고 있다가 ‘영감’님이 어디에 계신지 알게 되었다. “좋은 책은 한창 배움의 길을 걷는 작가들에게 문체와 우아한 서술과 짜임새있는 플롯을 가르쳐주며, 언제나 생생한 등장인물들을 창조하고 진실만을 말하라고 가르친다. (중략) 독서는 작가의 창조적 삶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다. 한번에 오랫동안 읽는 것도 좋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읽어나가는 것이 요령이다.”(<유혹하는 글쓰기>|스티븐 킹 지음|김영사)
이양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사랑했던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같은 책이라면 정다운 벗이 되어주리라. 하지만 이게 웬걸. 책을 1/3도 읽지 않아 이양은 좌절하며 책을 집어던졌다. 이런 명작을 읽어봐야 이런 글을 쓸 수 있을 리가 없어! 이양은 다시 소주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글쓰기 책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발견했다, 소주를 대체할 수 있는 충고를. “제일 좋은 글은 당신의 안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이 실린 글이다. 작품을 쓰다가 세상으로 나갈 때는 당신의 모든 것을 데리고 나가라. 아주 상식적인 생각에서부터 부처와 같은 마음까지. 그리고 지나가는 거리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주면 절대 길을 잃는 법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라. 나는 내일 다시 글쓰기로 돌아갈 수 있으며, 한 마리 동물이 되어 거리를 쏘다니고 있는 지금도 나의 글쓰기는 계속되고 있다고.”(<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이양은 자신 안에 들어 있는 것을 쓰기로 결정했다. 어느 날 밤에 겪은 일을 쓸 참이었다. 그녀는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박남일 지음|서해문집)이라는 책까지 펼쳐놓고 뭔가 대단한 시작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2. 절망 또 절망… 나는 더 잘 쓸 수 없는걸까?
나는 살을 빼기로 결심했다. 체중이 많이 나간다고 부모님의 타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헬스클럽에 등록할 돈이 아까웠던 나는,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3만9900원짜리 스태퍼를 구입했다. 아침에는 늦잠을 자야 하니까 시간이 없고, 점심 때는 친구들을 만나느라 시간이 없었다. 그런 장애 조건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음을 대나무처럼 굳게 먹었다. 가족이 모두 잠든 밤, 나는 TV를 켜고 스태퍼에 올라갔다. 브라운관 속에서는 꽃처럼 예쁜 문근영이 출연하는 <댄서의 순정>이 한창이었다. 10분 뒤, 스태퍼 위에서 100m를 완주한 육상선수처럼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라 부모님 깨시기 전에 조부비면서 현관문을 열었는데,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혹시 지금 무슨 운동 같은 걸 하시나요? 아래층에서 왔는데 시끄러워서요.” 나는 스태퍼의 끼익끼익하는 소음을 기억해냈다. 나는 불쑥 내뱉었다. “아, 아뇨. 무슨 소리였을까. TV 소리를 좀 줄일게요.” 단 하루 만에 스태퍼 운동을 포기한 나는 당황해서 머리를 긁적거리며 현관문을 굳게 닫고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 거울을 보니 얼굴이 땀범벅인데다 숨이 차 헉헉거리는 내가 보였다. “나, 운동했소”하고 이마에 네온사인이 반짝인다. 아랫집 아저씨는 얼마나 웃겼을까, 빌어먹을. 이건 정말 웃기지도 않은 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양은 여기까지 쓰고 흐뭇한 얼굴을 해 보였다. 시작은 비장하지만 끝은 욕설이다. 자신의 부덕하고 난폭한 습성이 녹아 있는 글을 보며 이양은 우울해졌다. 하지만 스티븐 킹은 “여러분도 자기가 잘 아는 것들을 통하여 독특한 작가가 될 수 있다. 용기를 가져라. 적진을 살피고 돌아와 거기서 알아낸 것들을 우리에게 이야기하라”며 이양을 독려했다. 글쓰기에서 정직은 문체의 수많은 결점들을 상쇄해주는 미덕이라지 않는가. 좋은 소식은 그게 다였다. “70년대 초반, 여성의 언어에 대한 논문 하나가 발표되었다. 그 논문은 나에게 생각할 여지를 많이 남겼고, 결과적으로 글쓰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그 내용 중 하나는 여성들이 자신이 했던 말에 인증이나 확인을 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사실이었다. 예를 들면 ‘베트남 전쟁은 끔찍해. 그렇지 않니?’ (중략) 세상이란 언제나 흑백으로 갈라지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가 되고 싶다면 분명하고 확실하게 진술하는 것이 필요하다”(<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이양은 깨달았다. 자신이 쓴 글의 마지막 문장이 조금 전에 읽은 문제점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자신은 웃기다고 생각하지만 독자가 웃기다고 생각하지 않을까봐 소심하게 적은 “그렇지 않은가?”가 화근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말버릇까지 문제가 될 줄이야. 이양은 엄격한 글쓰기 스승들의 말에 주눅들기 시작했다. 내 주제에 무슨 소설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쉽게 물러설 수는 없었다.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이양의 목표는 베스트셀러 작가도 아니고 불후의 명작을 쓰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글을 통해 다른 사람과 작으나마 소통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제부터 이양은 저 짧은 한 단락에서, 이미 발견한 것 말고도 무수한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면서 글을 통한 소통의 가능성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3. 스티븐 킹한테 한 수 배우다
“가장 흔한 잘못은- 이런 함정에 빠지는 것도 대개는 독서를 충분히 하지 않은 탓이다- 상투적인 직유나 은유나 이미지 따위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내달렸다, 그녀는 ‘꽃처럼’ 예뻤다.”(<유혹하는 글쓰기>) 아뿔싸! 가장 흔한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다. 왜 이양은 문근영을 ‘꽃처럼’ 예쁘다고 생각한 것일까? 이양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세상에 많이 있었다. ‘햇반처럼’ 아름답다든가(엄마의 손맛보다 행복하게 해주므로), ‘너구리처럼’ 황홀하다든가(이양은 너구리 라면을 제일 좋아하므로) 하는 식으로 썼으면, 스티븐 킹이 이양을 타박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킹씨는 무심하기도 하지, 주눅든 이양을 더욱 코너로 몰아붙였다. “이런 짓은 하지 말기 바란다. 제발, 제발, 부탁이다. 가장 좋은 대화 설명은 ‘말했다’이다. (중략) 래리 맥머트리는 감정적인 위기를 맞이하는 장면에서도 ‘그가 말했다’ 또는 ‘그녀가 말했다’를 철저히 고수한다. 부디 그대들도 그렇게 하라.” 저속한 삼류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장이라니, “나는 불쑥 내뱉었다”라는 문장을 쓴 건 손이 미끄러졌기 때문이라고, 이양은 몇번이나 되뇐다. “현관문을 굳게 닫고”라는 대목도 문제다. 부사를 많이 쓰는 작가는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킹의 말에 따르면 부사는 민들레와 같아서, 한 포기가 돋았을 때 뽑아버리지 않으면 곧 민들레 밭이 되어버린다고 했다. 다행히 킹은 욕설 사용에는 후한 점수를 주었다. 그 자신이 욕설을 자주 쓰기 때문이다. 잘 안 쓰이는 말을 어렵게 꺼내 쓴 것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었지만. “어휘력을 키우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할 필요는 없다. 글쓰기에서 정말 심각한 잘못은 낱말을 화려하게 치장하려고 하는 것으로, 쉬운 낱말을 쓰면 어쩐지 좀 창피해서 굳이 어려운 낱말을 찾는 것이다. 그런 짓은 애완동물에게 야회복을 입히는 것과 마찬가지다.”
4. 스승님들의 가르침대로 퇴고를 마치다
이양이 걸레가 된 이 짤막한 문단에 절망해 글쓰기를 포기했냐고? 신만이 아실 노릇이지만, 당분간 (혹은 영원토록) 당신이 이양의 소설책을 서점에서 볼 수 없을 것은 자명해 보인다. 흠흠.
글을 잘 쓰는 Tip
움베르토 에코의 충고 11가지
움베르토 에코는 <미네르바 성냥갑>(열린책들)에서 글을 잘 쓰는 법에 관한 일련의 지침을 소개한다. 에코의 원래 글은 총 37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었으나 그중 일부를 발췌해 여기 소개한다. 반어적인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을 명심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에코의 충고를 읽어보자.
◎접속사를 피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오히려 필요할 때는 쓰도록 한다. ◎기성품 문장들을 피하라. 그건 ‘다시 데운 수프’와 같다. ◎괄호는 (꼭 필요해 보일 때도) 담론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하라. ◎말줄임표들의…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하라. ◎가능한 한 따옴표를 적게 사용하라. 그것은 ‘목표’가 아니다. ◎외국어는 절대 엘리건트한 스타일을 만들지 않는다. ◎인용을 줄여라. 에머슨이 올바르게 지적했듯이 “나는 인용을 증오한다. 단지 네가 아는 것만 말하라”. ◎지나치게 과감한 은유들을 조심하라. 그것은 뱀의 비늘 위에 돋은 깃털과 같다. ◎쉼표는, 정확한, 곳에, 넣도록, 하라. ◎과장하지 마라! 감탄 부호를 적게 써라! ◎철자를 ‘자새’하게 확인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