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컴 노킹>은 빔 벤더스가 자신의 ‘미국인 친구’로서 <파리 텍사스>의 시나리오 작가이자 퓰리쳐상을 수상한 극작가이고, 또한 영화감독에 배우이기도 한 ‘샘 셰퍼드’와 20년 만에 다시 뭉쳐 선보이는 작품이다.
<돈 컴 노킹>은 최근 지리멸렬하던 벤더스를 감안한다면 그가 훨씬 익살스럽지만 넉넉하고 완숙하게 익어서 귀환했음을 증명하는 작품일 것이고, 다작하는 감독답게 부침이 심했던 90년대 이후 필모그래피를 감안한다면 90년대 최고작인 <리스본 스토리>의 위상과 비교될 수 있는 작품이다. <돈 컴 노킹>에서 빔 벤더스는 공허하고 메마른 내면 풍경의 전시뿐 아니라 그것을 가족 속에서 치유하는 처방전을 내민다. 물론 이러한 시각은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이자 주인공 하워드를 연기한 샘 셰퍼드의 작품 세계, 즉 주로 가족의 해체와 몰락을 통해 미국을 탈신화화하려 했던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도 각별한 것이다.
빔 벤더스와 샘 셰퍼드가 20년 전에 함께했던 <파리 텍사스>는 그 시작과 함께 숨막힐 듯한 황야의 풍경으로 트래비스의 메마르고 황폐한 내면을 들춰냈다. 그렇게 각인된 고통스러운 내면의 풍경이야말로 트래비스가 스스로에게 용서와 구원의 손길을 끝내 내밀지 못한 이유이다.
<돈 컴 노킹>은 <파리 텍사스>의 도입부를 인유적으로 차용하면서도, 길 위에 홀로 서서 다시 여행을 시작해야 했던 트래비스를, 좀더 속물스럽지만 익살스럽고, 좀더 허술하지만 여유로운 인물인 하워드로 변형시킨다. <파리 텍사스>의 도입부에서 자신의 내면에서 방향을 잃은 트래비스를 날카롭게 포착하던 매의 시선은 영화 촬영 도중 뜬금없이 도망치는 하워드를 향한 암산(巖山)의 ‘텅 빈 시선’(암산에는 사람의 눈처럼 큰 구멍 두개가 뚫려 있는데, 카메라는 그 뒤편에서 그의 뒷모습을 담는다)으로 되살아난다. 하지만 그 암산을 등지고 말달리는 하워드는 이 시선을 깨닫지 못한다. <돈 컴 노킹>은 하워드가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있지만, 그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그 시선을 발견하는 과정, 그럼으로써 한 때는 하워드의 삶의 일부였지만 그의 외면 속에 버림받은 과거를 가족이라는 이름의 삶으로 통합해나가는 과정을 담아낸다.
서부영화의 영웅 이미지로 스타가 된 하워드이지만, 진짜 그의 모습은 겁쟁이일 뿐이다. 현재에서 도망칠수록 삶은 황폐한 과거로 쌓여가고, 그렇게 썩어버린 과거의 악취가 파고드는 현재에서 다시 도망치는 악순환에 허덕이던 하워드는 30년 전에 떠나왔던 고향의 어머니에게로 향한다. 하지만 그 귀향은 어디까지나 도피일 뿐이다. 자신을 쳐다보는 고등학교 동창에게 화를 내고, 어머니가 스크랩해놓은 기사에서 확인되는 환멸스러운 과거의 기록에 쓴웃음으로 무시하는 하워드에게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이다. 그러던 그에게 어머니는 몬테나 뷰트에 그의 젊은 시절의 짧은 연인이었던 도린(제시카 랭)이 낳은 아들이 있음을 알려준다.
익히 알려져 있듯, 벤더스는 길과 여행 속에서 자신의 영화적 주제를 발전시켜나가곤 한다. <돈 컴 노킹>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워드가 아들을 찾아 떠나는 몬태나의 뷰트는 한때는 화려한 도시였지만 현재 그곳은 거리에서 사람을 찾아보기도 힘들 만큼 쇠약한 도시이다. 현재의 노쇠함이 과거의 영광을 초라하게 증명하는 도시는 몰락한 스타인 하워드나 한때는 미국의 신화였지만 이제는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서부영화 장르와 다르지 않다.
하워드는 아들을 찾아 길을 나섬으로써, 그가 늘 도피했던 자신의 황폐한 내면과 버려진 과거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파리 텍사스>에서도 그랬지만, 벤더스와 셰퍼드가 보여주는 희망의 싹은 우리로부터 버림받은 곳에 놓여 있다.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비겁함이 그것을 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워드가 외면했던 암산의 ‘텅 빈 시선’은 하워드가 몬태나의 뷰트에 들어선 이후부터 극단적인 부감으로 전환하여 도시를 짓누르고, 아들 얼(가브리엘 만)이 버린 쓰레기 더미 속 소파에 앉아 아들을 기다리는 장면에서는 원형 트래킹으로 하워드를 포위한다.
하지만 이들의 화해와 구원은 엉뚱하게도 하워드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과거 속에서 나타난 하워드의 딸인 스카이(사라 폴리)로부터 온다. 비슷한 과거를 지녔지만, 얼이나 하워드와 다르게 먼저 손내밀고 포옹할 줄 아는 그녀의 미덕은 <돈 컴 노킹>이 제시하는 치유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특히 그녀가 하워드에게 화해를 말하는, 단조로울 수 있는 클로즈업 장면을 시네마틱하게 표현하는 벤더스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돈 컴 노킹>은 두루마리 휴지를 풀어버리듯 내팽개쳤던 과거와 화해하는 하워드를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여행을 완성형으로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갑자기 사라진 그를 영화 촬영 현장으로 되돌려보내야 하는 임무를 지닌 탐정 서터(팀 로스)는 <돈 컴 노킹>의 여행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인물이다. 황야에 서서 전기면도기를 작동시키다 그 기계음이 황야의 넓은 공간에 유일한 소리임을 깨닫는 서터는 결국 하워드의 반복인 셈이다. 물론 이 작품의 가장 훌륭한 여행자는 빔 벤더스이다. 그는 참으로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지만 <돈 컴 노킹>과 함께 자신이 서야 할 곳에 제대로 도착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