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가 말한다. ‘주.템.므.’ 그녀 앞에는 연인이 서 있을 것이며, 둘은 아늑한 방에 있으리라. 그러나 카메라가 뒤로 빠질 때마다 우리는 그녀가 전화기에다 말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녀가 공중전화 부스 안에 있음을 알게 된다. 그녀와 남자는 분명 사랑의 모험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루이 말이 <사형대의 엘리베이터>에서 프랑스 멜로드라마와 범죄영화의 전통을 따르면서 배반하기 위해선 단 몇분의 시간으로 족했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는 우연과 절망, 오해와 살인, 열정과 기억에 관한 가장 순수한 걸작이다. 주말 저녁에 시작해 다음날 아침에 끝맺는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는 장 르누아르와 오슨 웰스의 고전적 영역과 <네 멋대로 해라>에서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 이르는 현대영화의 세계를 나란히 품고 있는 작품이다. 데뷔작에서부터 고전적인 기법의 활용과 혁신적인 시도를 자유자재로 구사한 말은 영화의 황금시대와 곧 다가올 새로운 물결의 자장 내에 동시에 위치한 작가였다. 그리고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는 모리스 로네와 함께, 공포와 광기 사이에 선 여자를 연기한 잔 모로를 처음 기억하게 만든 영화이기도 하다. “나는 곧 늙겠지. 그러나 사진 속에서 우리는 같이 있어. 거기, 어딘가에서, 같이. 우리는 결코 떨어질 수 없어”라고 읊조리던 그녀는 사랑에 빠진 여자의 초상 그대로였다. 30분 뒤엔 자유로워질 거라던 그들의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모로와 로네가 말과 창조한 비극적 아름다움은 이후 <연인들>과 <마지막 선택>으로 이어진다.
말이 프랑스 밖에서 연출한 작품을 제외하면 그의 영화는 DVD로 구하기 힘들었다. 일전에 일본에서 몇편이 출시되긴 했으나 그 또한 한정적이었다. 그의 유족들은 판권을 직접 관리하진 않지만 홈비디오 제작에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는 바 지난해 이르러서야 본격적인 출시를 허락한 것 같다. 이에 프랑스의 아르테비디오가 다큐멘터리를 포함해 프랑스어로 제작된 대부분의 루이 말 작품을 출시 중이며, 미국 크라이테리언에서도 몇 작품에 한해 2006년 상반기부터 출시할 예정이다. 영어자막이 있는 미국판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DVD는 4월에 선보일 예정인데, 그 전에 전설적인 O.S.T를 별도 CD로 제공하며 출시된 프랑스 한정판의 손짓을 거부하긴 힘들다. 사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는 자막없이 본다 해도 그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작품이다. 근 50년 전에 마일스 데이비스와 일군의 재즈 뮤지션들이 대사없는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를 보며 이틀 동안 영화음악을 즉흥 세션으로 완성했던 그 순간을 당신도 경험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