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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감독의 중국은 어디에 있는가, <무극>

첸 카이거식 도피주의 혹은 중국 제5세대의 자멸, <무극>

첸카이거의 열 번째 영화 <무극>을 보았다. 그런 다음 그가 22년 전에 만든 <황토지>를 생각해보았다. 말하자면 짧은 회고. 물론 중국 제5세대가 첸카이거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1983년 광시(廣西)영화제작소에서 장쥔자오의 <하나 그리고 여덟>이 만들어졌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 이듬해 첸카이거는 장이모와 함께 1939년 봄 산시성(峽西省)을 찾아온 팔로군 병사 구칭과 그 마을의 처녀 추이차오의 이야기를 찍었다. <황토지>는 서방세계에 중국 제5세대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현 위의 인생>과 <투게더> 사이에 놓인 천안문

물론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첸카이거는 많은 일을 겪었다. 그는 문화대혁명 시대에 하방되었으며, 그 자신의 자서전에 따르면 마오쩌둥의 교시에 따라 홍위병이 되어 아버지를 고발했다. 그런 다음 덩샤오핑의 시대에 베이징으로 돌아와 영화를 공부했고, 학업을 마치자 멀리 변방으로 가서 그의 첫 번째 영화를 찍었다. 첸카이거는 두 번째 영화 <대열병>을 찍기 위해 베이징으로 잠시 돌아왔으나 곧 <해자왕>과 <현 위의 인생>을 찍기 위해 다시 변방으로 떠났다. 그는 천안문 앞으로 돌아오기를 망설인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첸카이거의 두려운 예감. 1989년 6월4일 갑자기 개방은 중단되었다. 천안문 앞은 피로 물들었고, 당 지도부는 평화적인 시위대 앞에 협상 대신 탱크를 보냈다. 그러나 시작된 자본주의를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부동산이 중국을 휩쓸었다. 첸카이거는 다시 한번 과거로 돌아가 <패왕별희>를 찍었다. 그리고 1930년대의 아편 냄새로 가득 찬 나른한 상하이를 무대로 <풍월>을 만들었다. 첸카이거는 1990년대 내내 <시황제 암살>에 매달렸다. 어떤 의미에서 이 영화는 첸카이거의 <동사서독>이다. 수없는 재촬영, 거의 포기할 만한 상황. 하지만 첸카이거에게 진시황을 죽이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진시황의 시해는 실패한다. 같은 이야기를 장이모는 포기로 결론지었다(<영웅>). 그것이 첸카이거와 장이모의 같은 트라우마에 대한 다른 방식의 대답이다. 첸카이거는 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다음 그는 작은 소품 <투게더>를 찍었다. 사실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나는 어리둥절했다. 나는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이 영화가 우스꽝스러워보여도 여기에는 <해자왕>과 <현 위의 인생>이 이상한 방식으로 그림자놀이를 하듯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아이에 대한 희망, 음악에 의한 희망. 하지만 이 두편의 영화와 <투게더> 사이에 천안문이 있었음을 생각해야 한다. 혹은 사회주의적인 예술로부터 예술적인 자본주의에로의 이행. 아이와 교육. 칠판에 쓴 글을 베끼는 아이들과 악보를 연주하는 아이. 사전과 바이올린. 희망은 어느 쪽에 있는 것인가? 물론 두 가지 다 모순이다. 첸카이거는 창과 방패를 함께 팔려는 장사꾼인가? 우리가 첸카이거에게 속은 것인가 아니면 첸카이거가 중국에 속은 것인가? 누가 누구를 속이고 있는가?

배우의 국적을 통해 번역해보기

그런 다음 <무극>을 보았다. 이 영화는 다음과 같은 서문으로 시작한다. “세상이 탄생한 직후, 거대한 하늘과 설국 사이엔 인간과 신들이 함께 산 왕국이 있었다. 그곳에선 왕관을 썼다고 다 왕이 아니었고, 갑옷이 변장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공작은 반란을 꿈꿨고, 용맹스러운 장군은 명예를 가볍게 여겼으며, 순결한 여인은 사랑 때문에 흔들렸다. 적과 아군을 가르기 힘든 때였으나, 바람처럼 빠른 설국 출신의 한 노예가 운명을 거슬러 세상을 바꾼다.” 기구한 이야기. 바람보다 빠른 설국의 노예 쿤룬(장동건), 그의 주인인 대장군 쿠앙민(사나다 히로유키), 여인을 위해 반란을 일으킨 북공작(사정봉), 모두의 사랑을 얻는 대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야 하는 운명을 짊어진 왕의 여자 칭청(장백지). 그들의 신파극.

우선 이 영화에 대한 가장 따분한 비평은 배우의 국적을 중심에 놓고 읽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는 동북아시아 블록버스터 프로젝트라고 부를 만큼 많은 제작비와 다양한 국적의 배우들을 동원하여 만든, 아시아의 할리우드를 꿈꾸는 중국 정부와 영화산업의 합작품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줄거리에 배우들의 국적을 도식적으로 적용하여 중국과 홍콩, 일본과 한국 사이의 역사적 멜로드라마로 번역하고 싶다는 손쉬운 유혹을 받는다. 첸카이거는 매우 용의주도하게 그런 손쉬운 도식을 제안하고 있고, 부분적으로 그런 번역에로 이끄는 의도적인 배치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무극>이 중국어로 말하지만 이 영화의 무대가 된 나라와 시대적 배경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혹은 탈역사화된 무국적의 의상들. 이를테면 북공작이 칭청과 대장군의 죄를 묻기 위해 데려온 장소에 앉아 있는 원로들의 헤이안 시대의 일본식 복장과 분장, 혹은 쿤룬의 고향이라는 설국의 백성들이 입은 백색의 의상들. 장동건과 백의민족. 장이모는 <영웅>과 <연인>에서 필요 이상으로 구체적인 중국사의 배경을 끌고 들어온다. 장이모의 블록버스터가 화어권 프로젝트라면 첸카이거의 영화는 아시아권 프로젝트이다. 그 둘은 같은 목표를 지향하면서 그렇게 갈린다. 그러나 그 나라의 스타를 끌어들여서 그 문화권의 대중의 정서 안으로 쉽게 스며들기 위한 전략은 첸카이거가 장이모에게 배운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그 나라에서 보여질 때 그 나라의 배우들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영화 안으로 쉽게 들어오길 기대하는 일종의 방언적 효과에의 의지이기도 할 것이다. 이를테면 한국에서는 장동건이라는 번역의 위치에서 보는 나를 손쉽게 자리매김하기. 그럼으로써 장백지라는 이국성과의 사랑. 그리고 그것을 홍콩에서, 혹은 대만에서, 중국에서 반대로 바라보기. 즉 장백지의 자리에서 장동건이라는 한류스타의 사랑을 받아보기. 가장 표피적인 동시에 대중적인 수준에서의 트랜스내셔널한 사랑의 교환. 말하자면 여기에는 아시아의 서로 다른 나라간의 오리엔탈리즘의 사랑의 (신화의 의미작용이 성립되지 않는) 신파가 있다. 결국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의미작용)이다. 그러니 그저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길. 사랑의 전시성. 하지만 비교는 여기까지이고 더이상 진전되지 않는다.

<무극>은 <시라노>에서 무엇을 바꿔쳤나

그러므로 다시 영화의 처음으로 돌아와서, 하지만 그 다국적 배우들의 배경을 염두에 두고서 한겹 겹쳐놓기. <무극>에서 단순하게 이야기만을 문제 삼는다면 애매하게 생각되는 서사의 지점들이 있다. (내 생각에) <무극>의 원본은 17세기 프랑스에 살았던 코주부 문인검객 시라노 벨주락의 슬픈 궁정풍 연애이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점. 이 뻔한 이야기를 첸카이거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이 이야기를 자기의 원작 각본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그런 다음 22살의 인터넷 아이디 ‘四次元’(으로 알려진 궈징밍)은 첸카이거의 권유로 이 이야기를 갖고 소설을 썼다. 그러나 나는 이 소설을 아직 읽지 못했다. 이 말을 꺼낸 이유는 <무극>이 원작을 영화화한 것이 아니라 영화를 놓고 소설로 옮긴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소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없다. 첸카이거의 1980년대 영화들은 원작 소설과 ‘매우 이상한 지점에서 자기 방식으로 비튼’ 각색이라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원작을 끌어안으면서 대부분의 이야기에 쏟아질 이데올로기적 비난을 원작에 슬쩍 떠넘기면서 원작을 각색한 부분에서 자기가 하려는 테마를 이야기한다. 아마도 그것은 중국 당국의 검열을 피하려는 ‘섬세한’ 의도일 것이다. 당국으로부터 허락받은 원작, 그 안에서의 바꿔치기. 특히 <해자왕>. 하지만 <무극>은 <시라노>로부터 무엇을 허락받고 무엇을 바꿔친 것일까? 에드몽 로스탕이 각색한 1897년 희곡으로 잘 알려진 이야기의 등장인물들. 코주부 시라노가 자신의 외모 때문에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는 마음속의 연인 록산느, 록산느가 사랑하는 미남 청년 크리스티앙, 미남이지만 사랑의 문구를 단 한줄도 쓰지 못하는 크리스티앙, 그리고 그 크리스티앙을 위(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의 고백을 위)해 연애편지를 대필하는 시라노의 숨바꼭질. <무극>에서 대장군의 갑옷을 입고 칭청을 구한 노예 쿤룬이 한눈에 빠진 사랑, 하지만 자신의 신분 때문에 고백하지 못한 채 침묵을 지켜야 하는 쿤룬, 사랑을 알지 못한 채 대장군에게 진정한 사랑을 받았다고 믿는 칭청, 그 사랑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대장군, 그것을 알고 있는 북공작. 그들의 숨바꼭질. 고스란히 겹치는 설정. 하지만 내가 따져 물으려는 것은 이 이야기의 원본의 진위 여부가 아니다.

여기서 내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첸카이거가 이 국적 불명의 ‘옛날 옛적의’ 무대에서 (프랑스 연애담의 원형이판본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를 연출하면서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느냐는 것이다. 먼저 첸카이거의 옛것에의 나르시시즘은 그의 일시적인 변절이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그의 첫 번째 영화 <황토지>는 시종일관 고원 저편의 산베이에서 진행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시대는 팔로군이 일본 제국주의 군대와 싸우면서 대장정을 떠난 1939년이다. 말하자면 시간적으로 전쟁 한복판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거의 후반부 옌안에서 공산당 군인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한 농민들의 집단 군무를 제외하면 역사는 고원 저 너머에서 이쪽으로 넘어오지 않는다. <해자왕>에서 교실은 베이징에서 너무 멀리 있다. 혹은 <현 위의 인생>은 일종의 신화적 공간에 가깝다. 첸카이거가 역사 속에 던져진 두 남자를 그린 <패왕별희>에서조차 사실상 무대와 역사는 그 경계를 허물 만큼 뒤섞인다. 말하자면 첸카이거에게는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 자기에게 부여된 역사를 초월하려는 맹렬한 의지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잘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에게 그 의지는 미래에의 비전이 아니라 말 그대로 초월이기 때문이다. 역사 안으로 들어오려는 장이모, 현실 바깥으로 나가려는 첸카이거. <무극>은 <영웅> 혹은 <연인>이 아니다. 좀더 근본적으로 장이모가 자신을 어떻게 해서든 역사 안에 위치시키고, 그런 다음 과거의 전통 안으로 들어가서 무협영화의 장르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동안 첸카이거는 거의 똑같은 노력을 기울여서 어떻게 해서든 역사 바깥에 자기를 놓은 다음 판타지 장르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무극>에는 중국이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의 첫 장면. 칭청은 전장터에서 선녀를 만나 그녀의 운명에 관한 예언을 듣는다. <무극>은 (대부분의 오해와 달리) 무협영화가 아니라 판타지영화이다. <무극>에는 무(武)도 없고 협(俠)도 없다. 좀더 정확하게 <무극>에는 무림의 인물들이 개입하지 않는다. 그 대신 대장군과 북공작, 쿤룬, 칭청은 고대 중국이라기보다는 마치 17세기 유럽에 살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대장군과 북공작은 세상의 패권이 아니라 영지를 놓고 싸우는 것 같고, 대장군과 쿤룬 사이의 관계는 주인과 노예라기보다는 계약에 의해 이루어진 주인과 하인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들은 차라리 기사들처럼 보인다. 칭청은 왕비라기보다는 영주의 아내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무극>에는 중국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무극>을 <영웅>과도, <와호장룡>과도, <칠검>과도 다르게 보이게 만든다. 이제까지 첸카이거의 영화가 현재의 사회주의 중국으로부터 하나의 비전으로서의 중국, 또 다른 가능성으로서의 중국을 다루었다면 <무극>에는 지금의 중국 그 자체의 무효라는 제안이 있다. 그는 여기서 중국이라는 기호를 거의 표백된 기의없는 기표로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더이상 첸카이거의 영화에서 장이모와 구창웨이와 함께 보여주었던 산수화 같은 풍경의 이미지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서극과 리안과 함께 작업한) 피터 파우의 CG로 넘쳐나는 풍경과 빛으로 가득 찬 실내를 담은 카메라의 하이테크한 설계가 현란하게 펼쳐진다. <무극>이 고대 신화적 세계를 다루고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이 영화는 첨단 영화 테크놀로지의 전시적 효과를 통해서 디지털 중국의 현재에 대한 거울 효과를 보이고 있다. 첸카이거가 1980년대 중국의 실용적 사회주의에 대해서 자연의 긍정적 효과를 말했다면(<황토지> <해자왕> <현 위의 인생>) <무극>에서는 21세기 중국의 디지털 자본 위에 선 사회주의에 대해서 버추얼한 세계로서의 신화를 말하는 중이다. 말하자면 발명과 발견, 과학과 서구적 근대, 그리고 버추얼한 빛. <무극>이 거슬러 올라간 시간은 중국의 역사 너머의 신화가 아니라 과학과 자본의 역사가 시작된 근대의 기원이다. 여기에 어른거리는 문인검객 시라노의 궁정풍 연애가 가능했던 시대의 그림자. 갈릴레이가 천체망원경을 발명하고(1609), 시라노와 크리스티앙이 참전한 30년 전쟁이 시작되고(1618), 셰익스피어가 세상을 떠나고(1619), 데카르트가 <방법서설>을 쓰고(1638), 벨라스케즈가 <시녀들>을 그리고(1656), 파스칼이 <팡세>를 쓰기 시작하고(1657), 렘브란트가 자화상을 그리고(1658), 베르메르가 <부엌의 하녀>를 그리고(1660), 보일의 법칙이 발표되고(1661), 라이프니츠가 <통합법론>을 쓰고(1666), 스피노자의 <윤리학>이 공식적으로 발표되고(1676),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고(1687), 로크의 <인간오성론>이 쓰여진(1691) 유럽의 100년.

디지털 기술에 대한 첸 카이거 방식의 저항

첸카이거는 <무극>을 중국에 관한 상징으로 다루는 대신 동시대에 대한 하나의 알레고리로 다루고 있다. ‘한계가 없다’는 ‘無極’이라는 말 자체가 역설적으로 한계라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그것은 첸카이거의 초월에 대한 의지와 그 절망적 한계를 함께 담고 있는 말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자문자답. <무극>에서 과시하는 것은 단순한 디지털 테크놀로지에의 동경이 아니다. 그 반대로 여기에는 일종의 방어가 있다. 영화의 새로운 단계에로의 진화. 디지털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 변화. 그 안에서 첸카이거는 신화적 판타지에로 회귀한다. 그러나 이것은 퇴행이 아니라 첸카이거 방식의 투항으로 위장한 저항이다. 만일 <황토지>가 지금 만들어졌다면 매우 우스꽝스러운 시대착오의 향수로 보였을 것이다. <무극>은 무엇보다도 동시대적이다. <황토지>가 문화대혁명 이후 중국이 무엇을 잊었는지를 말하기 위해 중국 공산당이 성립되었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무극>은 천안문 이후 진행되어온 중국식의 실용적 자본주의가 무엇을 놓쳤는지를 말하기 위해 모든 것이 카오스였던 신화적 시대로 올라간다. 그런데 첸카이거는 그것을 알리기 위해 같은 실패를 되풀이한다. <황토지>를 알리기 위해 스스로를 자기-오리엔탈리즘(self-orientalism)의 자리에 몰아넣은 다음 서방세계(의 영화제)를 우회하여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돌아왔다면 <무극>은 아시아의 스타들과 중국 자본을 소란스럽게 뒤섞은 무국적 블록버스터를 만들어서 규모와 테크놀로지로 중국 인민에게 하소연한다. 첸카이거는 자기의 호소가 알려지기 위해서 무언가 매개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첸카이거는 그 매개를 자연의 풍경에서 경극, 고대의 야사를 거쳐 버추얼 테크놀로지의 전시에 이르는 시행착오를 끊임없이 시도한다. 장이모는 그냥 간단하게 스타의 육체를 전시한다. 공리에서 장쯔이에로. 하지만 둘 다 사실은 같은 전술의 증세에 매달리고 있다. 중국 제5세대 영화에는 어떤 노출증의 증세가 있다. 어쩌면 죽의 장막 저편에서 세상에 자신을 알리기 위한 전술에 역설적으로 그들 스스로 그 과정의 교육의 대상이 되어 매개없이 사유하지 못하는 상호의존의 수동성에 빠져들었는지 모른다. 그것이 ‘지하전영’ 세대가 그들의 형인 제5세대를 경멸하는 이유이다. 왜 당신들은 인민을 보지 않습니까? 이를테면 지아장커의 공공연한 비난. 보는 대신 보여져야만 한다는 노출증. 전달되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 그 사이에서 첸카이거와 장이모를 가로막는 정치적 검열이 사라지고 경제적 자본이 영화와 중국 사이를 매개할 때 그들은 무비판적으로 대중성을 껴안은 다음 그것을 인민주의라고 오해한다. 그때 <무극>은 괴물처럼 일그러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영화의 사회주의적 원형이판본이 된다. <무극>은 <영웅>의 가장 불편한 쌍둥이이다.

남자들의 운명과 의무에 관한 환상

만일 이것이 정치적으로 저항하는 자리의 권리를 빼앗긴 데서 오는 매개의 빈자리를 채울 때 그 자리의 성격이 자본으로 치환되는 순간 문화적 수집의 인민주의가 대중적 굴복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면 두 번째 의문은 그 과정의 번역의 오류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가 내게는 더 중요하다. <무극>의 영어 제목은 ‘No limits’가 아니라 ‘The Promise’이다. 이 영화는 해외에 <약속>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기를 원한다. 특히 북미 지역. 그런데 첸카이거의 영화가 줄기차게 ‘약속’에 관한 것이었다는 것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그의 첫 번째 영화 <황토지>에서 팔로군 구칭은 산베이 고원 마을의 처녀 추이차오에게 떠나가면서 돌아오겠노라고 약속한다. 그러나 그는 너무 늦게 돌아왔고, 추이차오는 황허강에 뛰어들어 자살한 다음이다. <현 위의 인생>의 늙은 악사는 천 번째 현이 끊어질 때 눈을 뜨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믿는다. 하지만 그 약속은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은 종이쪽지에 불과했다. <패왕별희>의 우미인은 항우의 사랑의 약속을 믿는다. 하지만 항우 역을 연기하는 살루(장풍의)는 우미인으로 자신을 착각한 데이(장국영)와의 사랑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그런데 <무극>의 ‘약속’은 매우 이상한 방식으로 집행된다. 나는 이 문제가 이미 제기한 시라노의 이야기가 야기하는 첫 번째 오해와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 시라노의 희곡과 마찬가지로 <무극>의 이야기의 중심에는 오해와 거짓이 있다. 쿤룬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오해를 만들고, 그런 다음 사랑하는 대상의 위엄이 상처받을까봐 거짓을 유지한다. 그리고 그 거짓의 네트워크 안에서 대장군과 북공작은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그 거짓을 유지한다. 대장군은 칭청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그리고 북공작은 대장군을 위협하기 위해서. 그런데 <무극>과 <영웅> 혹은 <무극>과 <연인>(이 영화의 원제가 ‘十面埋伏’이라는 사실을 떠올려보라)이 사실 같은 연극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첸카이거와 장이모는 단지 유사한 장르의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거짓말의 휴머니즘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장이모가 벌이는 거짓말의 게임 안에는 주인공들 사이의 정념이 문제가 된다. 반대로 첸카이거가 만들어내는 거짓말의 게임은 좀더 복잡하다. 우선 이 모든 이야기는 칭청이 미모를 얻는 순간 맞바꿔야 하는 선녀의 저주라고 할 수밖에 없는 교환의 운명에서 비롯된 것이다. 선녀는 세상의 누구라도 한눈에 빠질 수밖에 없는 미모를 준 다음 칭청에게 사랑을 바치는 남자들은 모두 떠나갈 수밖에 없다고 미리 선고한다. 말하자면 우선 여기에 운명이 있다. 그런 다음 칭청을 중심에 해 세명의 남자가 그녀를 놓고 다툰다. 나는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단지 그녀의 미모 때문에? 그렇게 해서 그녀를 얻음으로서 그들은 사실상 무엇을 얻는가? 쿤룬은 그녀의 사랑을 얻었지만 왜 그녀에게 진실을 고백하지 못하는가? 대장군은 그녀의 사랑을 얻었지만 왜 그녀에게 거짓을 고백하지 못하는가? 북공작은 그녀 때문에 왕을 죽이고 나서도 왜 그녀에게 진실을 알려주지 못하는가? 이 세개의 질문의 방점은 않는다가 아니라 못한다, 라는 동사에 있다. 그러므로 말을 바꾸어야 한다.

<무극>은 칭청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남자들 사이의 게임의 네트워크 안으로 들어온 칭청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게임을 진정 즐기고 있는 것은 칭청이 아니라 세 남자들이다. 칭청에게 이것은 운명의 이야기이지만 세 남자에게 이것은 연애의 대상을 놓고 벌이는 게임이다. 물론 칭청이 죽으면 이 보르메오의 매듭은 풀릴 것이다. 같지만 다른 말. 여기서 칭청은 매듭에 불과하다는 것을 놓치면 안 된다. 그 세 남자가 서 있는 자리는 다르지만 그들이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동일하다. 그것을 말하는 순간 칭청의 환상을 모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칭청이 믿는 사랑의 고상한 환상, 그녀를 위해 목숨을 걸고 기꺼이 저 폭포 아래로 뛰어든 갑옷 입은 남자가 대장군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지 못한다. 행위와 지위의 불일치. 여기서 칭청의 환상에 구멍이 있다고 생각하면 끝내 <무극>은 환상의 저편에서 이쪽으로 넘어오지 못한다. 이 이야기가 칭청을 중심으로 세워졌지만 그러나 이 이야기의 핵심은 칭청이라는 절세미녀에게 어떤 남자도 한눈에 사랑에 빠지지만 어떤 사랑도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칭청은 유혹인 동시에 금지이다. 그러므로 칭청의 환상에 구멍이 있는 것이 아니라 칭청 자신이 사랑의 블랙홀이다. 말하자면 쿤룬이 뛰어들어야 하는 그 폭포 자체가 칭청인 것이다. 그때 이 세명의 남자가 접근 불가능한 대상인 칭청에게 다가가는 방법은 거짓말이다. 거짓말을 함으로써만이 그들에게 운명의 신탁이 집행되지 못하도록 유예하는 길이다. 왜냐하면 칭청이 진정한 사랑을 깨닫지 못해야만 그 사랑의 접근 불가능성이라는 선녀의 예언이 지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거짓말은 그 누구의 권리가 아니다. 혹은 그 권리는 세명의 게임의 네트워크 안에서만 성립된다. 이 게임의 원리는 간단하다. 만일 누군가 이 게임을 끝내고 싶다면 진실을 말하면 된다. 하지만 그때 그 진실을 말한 자가 사랑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 모두가 사랑의 대상을 상실하는 것이다. 세명의 남자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그 상실에 있다. 그때 이 권리는 의무로 탈바꿈한다. 이 세 사람은 덫에 걸려든 것이다. 그러나 그 덫은 칭청이 만든 것이 아니라 선녀가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초월적 운명의 예지가 던져놓은 덫에 말려드는 남자들의 운명과 의무에 관한 환상의 내러티브이다.

나는 이 순간 이 내러티브 위에 이미 제기한 첫 번째 의문을 겹쳐놓고 싶다. 이 남자들은 어떤 남자들인가? 첸카이거가 줄곧 자신의 영화에서 남자들 사이의 게임을 반복해왔다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황토지>에서 팔로군 병사 구칭과 추이차오의 남동생 한한, 그 사이에서 괄호쳐지는 한한의 누나 추이차오의 죽음, <해자왕>에서 선생님 라오간과 그 학생 왕푸, 그리고 요리사 라이디. 물론 <패왕별희>의 데이와 살루, 그 사이에 끼어든 쥬산(공리)의 자살로 귀결된 결론. 그때 첸카이거의 질문은 명백하다. 문화대혁명 이후 (여자들을 매개로 하여) 중국의 남자들은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가? <무극>은 같은 질문을 하는 중이다. 천안문 이후 (칭청을 매개로 하여) 중국의 남자들은 자신의 의무를 하고 있는가? 아니, 차라리 그 임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때 여기에 이 다국적 아시아 스타들은 바로 그 중국 남자들의 정체성의 포기가 아니고 그 무엇이란 말인가? 자본주의 앞에 선 사회주의 중국의 불안과 위기.

<무극>의 약속이 의미하는 것

여기서 미루어둔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할 차례이다. <무극>의 영어 제목이 ‘약속’이라면 이 영화에서 약속은 두번 있다. 그리고 그 약속은 두번 모두 배신당한다. 한번은 칭청이 소녀 시절 전쟁터에서 북공작에게서 먹을 것을 받는 조건으로 그의 노예가 되기를 약속한다. 하지만 칭청은 음식을 먹자마자 북공작을 배신하고 도망친다. 다른 한번은 쿤룬이 대장군의 노예가 되기를 약속하는 것이다. 칭청은 노예가 되기를 거절하고, 쿤룬은 노예가 된 다음 충성을 바치지만 마지막 순간 배신한다. 두개의 약속? 그런데 쿤룬과 칭청 사이에 하나의 매듭이 더 있다. 그리고 그 매듭이 이 영화의 수수께끼이다. 쿤룬이 이 이야기에서 하는 역할은 칭청의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다. 그는 칭청을 예언이 주어지기 전으로 되돌려 보내주는 일종의 타임머신이다. 나는 쿤룬이 설국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그가 그걸 되찾았다면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는 이 연애 게임에 왜 끝내 남아 있는가? 쿤룬은 칭청을 다시 한번 예언의 자리로 돌려보낸다. 선녀는 이번에는 운명 대신 의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 자리를 떠난다. 그러므로 사실상 이 약속은 이중으로 묶은 하나의 매듭이다. 쿤룬의 약속은 칭청의 약속을 돕기 위한 이 운명을 고정시키기 위한 보충이다. 아니,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다. 쿤룬의 약속은 그 자신이 알지 못하는 운명을 보충하는 사기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이 질문을 하고 싶다. 칭청을 진정 사랑한 사람은 누구인가? 대답은 북공작이다. 오직 그만이 선녀가 칭청에게 미모를 준 다음 사랑을 뺏어가기 전에, 그러니까 오직 북공작만이 선녀가 칭청에게 미모를 주기 전에 그녀를 선택한다. 그러나 칭청은 선녀의 예언(과 협상)으로 인해 게임의 네트워크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그때 그녀는 칭청을 함께 이 네트워크 안으로 끌고 들어온다. 칭청은 일종의 팜므파탈이다. 그때 이 남자들에게 이 영화는 동시에 필름 누아르이다.

판타지의 세계로 도피한 첸 카이거

여기에 <무극>과 시라노의 이야기의 결정적 차이가 있다. 시라노는 자신의 외모 때문에 자발적으로 사랑을 미루지만, 세명의 남자는 운명적으로 주어진 사랑하는 대상에로의 접근불가능성으로 인해 사랑을 미루는 것이다. 같은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여기서 차이는 두 이야기를 정반대로 이끈다. 하나가 자유로운 주체의 선택이 주는 슬픔에 관한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운명이 주는 선택의 지연을 통해서 얻는 즐거움에 관한 것이다. 즐거움이라고? 그렇다. 이것은 슬픔을 가장한 (게임이 주는) 즐거움이다. 세명의 남자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때 첸카이거는 <황토지>와 별 다름없는 이야기를 하이테크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그는 중요한 것을 포기하였다. 첸카이거는 말하자면 근본적으로 계몽주의자였다. 그는 끈질기게 교육에 대해서 말하고 또 말했다. 그러나 그는 천안문 ‘이후’ 그것을 포기한 것 같다. 그런 다음 이 계몽주의자는 정반대로 점점 역사란 그저 한순간 무대 위에 올려진 꿈같은 것이 아니겠는가라는 나른한 도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장자의 호접몽과도 같은 일순의 꿈처럼 다루어진 도가(道家)적 도피주의에 심취해서 단지 이야기에서만이 아니라 그 형식에서도 디지털 버추얼리티의 신화적 세계에 빠져들어 <무극>이라는 결론에 이끌렸다. 물론 마지막 장면을 끌어들여 이제 운명이 아니라 의지를 선택하라는 호소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반성적 성찰의 매개없이 선녀의 유혹에 이끌려 또 다른 길이 있다는 제안을 따른다면 그 또한 운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니, 어떤 점에서 미모도 없이 주어진 의지로 위장된 운명이란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차라리 그 마지막 장면은 내게 그런 의지로 위장된 운명을 선택하느니 사랑을 얻지 못하는 배부른 미모가 낫지 않겠는가, 라는 제안의 역설처럼 보였다. 여기서 칭청은 주인공이 아니라 세명의 남자들이 추구하는 하나의 대상-원인에 대한 알레고리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칭청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옮겨가고 있는 중국의 비전이다. 첸카이거는 때로는 그의 동료들과 함께, 때로는 경쟁적으로, 그 자신이 해온 중국 제5세대의 역할이 문화대혁명 ‘이후’에 황폐해진 중국에서 여전히 비전을 안고 자신의 나라를 미적 대상으로 다루는 데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첸카이거는 그때 자신이 다루는 대상이 단지 중국이 아니라 사회주의 중국이었으며, 그가 미적이라고 여긴 것이 사회주의의 비전이었음을 잊었다. 물론 그들에 대한 비판도 잘 알고 있다. 제5세대는 중국을 둘 중 하나(이거나 둘 다)로 만들었다. 미술관이거나 박물관. 그러나 그들에게는 중국이 문화대혁명의 참혹한 결과 ‘이후’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명백하게 저항하였다.

영화사에 기록될 또하나의 실패

1986년 6월30일,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도쿄를 방문한 첸카이거는 오시마 나기사와의 대담에서 “우리는 (중국 제5세대 영화들은 그들의 제작 배경을 통해서) 베이징을 포위하였다”라고 호기롭게 말했다. 지금 그들은 자본주의에 포위당했다. 아니, 투항하였다, 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내가 <무극>에서 보는 것은 첸카이거의 실패가 아니라 중국 제5세대의 자멸이다. 영화사에서 하나의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났다. 아니면, 이제 그 소임을 다하고 퇴장한 것일까? 그것을 마지막을 지켜보는 나의 마음은 슬픔에 젖어든다. “자, 돌아가자. 고향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려 하지 않겠는가. 지금까지는 고귀한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만들어버렸다. 어찌 슬퍼하여 서러워만 할 것인가. (중략) 내가 인생길을 잘못 들어 헤맨 것은 사실이나 아직은 그리 멀지 않았다….” 도연명의 시 <귀거래사>(歸去來辭)의 첫 구절. 내가 첸카이거를 위해 부르는 간절한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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