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전이 한창이던 1939년, 중국의 한 가난한 산골에 구전민요를 수집하기 위하여 팔로군 병사가 찾아든다. 그는 그곳에 머무르면서 한 소녀에게 공산당의 거점인 옌안에서는 여성이 평등한 대접을 받는다고 말한다. 병사가 떠나고 얼마 후 돈에 팔려 마을의 노인에게 시집을 간 소녀는 힘겨운 결혼생활을 견디다 못해 옌안으로 도망가기 위해 강을 건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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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첸카이거의 (황토지)는 세계 영화사에 "중국 5세대"라는 걸출한 영화재능을 지닌 새로운 감독들이 출현했음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황토지)를 이번 회고전에 추천한 홍콩 평론가 웡아인링은 "장준자오의 (한 사람과 여덟 사람)이 가장 먼저 발표된 중요한 5세대 영화이긴 했지만 85년 홍콩영화제에 소개된 첸카이거의 (황토지)야말로 5세대 영화가 처음 세계영화계에 등장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고 말했다. 지평선이 화면의 상단 2/3까지 올라오는 특이한 구도로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이 영화는 그 파격적인 구도의 형식미뿐만 아니라 역사와 개인을 묶는 5세대 감독들의 재능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민요수집의 임무를 띠고 산페이 공원의 산촌지방을 돌아다니는 한 팔로군 병사의 모습을 담은 (황토지)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병사는 마을에서 알게 된 처녀와 사랑을 나누고 처녀는 병사에게서 대륙 저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세상, 해방의 희미한 조짐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병사가 다시 그 마을을 찾았을 때 처녀는 군에 입대한 뒤였고 병사의 귀에는 민요가락만이 남는다.more
언뜻 계몽적인 성격의 영화처럼 보이지만 (황토지)는 대륙적인 형식미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배포 큰 영화였다. 무엇보다 중국인들의 심상에 자리잡고 있는 땅의 중요성, 땅이 대변하는 자연과 인간의 무심한 듯하면서도 긴밀한 관계를 웅장하게 보여준다. 영화의 말미에 팔로군 병사들이 추는 군무의 복판에 카메라가 끼어들어 들고 찍기로 보여줄 때 (황토지)는 그야말로 혁명의 에너지와 중국적인 삶의 방식을 기개있게 보여주는 비범한 영화로 비쳤다. 첸카이거는 그 이후로 (대열병)을 거쳐 (아이들의 왕)에서는 문화혁명을 거친 중국현대사를 더 느리게 성찰하는 영화로 방향을 튼 뒤 마침내는 멜로드라마의 틀에 예술영화의 장식을 입힌 (패왕별희)로 나아갔다. 첸카이거의 최근작에 대한 감상이 어떻든지 간에 (황토지)는 분명 영화역사에 기억될 만한 뛰어난 재능의 출현이라는 점과 한 나라의 문화적 전통이 영화라는 현대적인 매체와 만났을 때 얼마나 감동을 전해줄 수 있는지를 웅변했다. / 씨네21 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