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내에서의 유혹에 저항하라. 50년 동안 남들이 인정하는 인생을 살아온 사람도 한순간의 유혹에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 지위를 이용하여 섹스를 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라. 오히려 권력은 유혹하는 자가 쥐고 있음을 기억하라.
2002년 <카이에 뒤 시네마>가 그해의 10대 영화 가운데서도 첫손에 꼽은 영화지만 이런 사소한 주제 정도를 뺀다면 그리 낯설거나 도발적이지 않다. 지하철 승강장에서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은밀하게 팬티와 브래지어를 벗는 장면, 속옷을 벗고 거리를 활보하는 장면 등 욕망을 거리낌없이 실천해보는 ‘교육적’, ‘계몽적’ 측면이 흥미롭지만 남다른 얘기를 하고 있지는 않다. 상류층의 비밀 난교 파티는 <아이즈 와이드 셧>의 비밀스러움과 깊이에 미치지 못하며, 전제군주를 흉내내는 남자주인공의 캐릭터는 <칼리굴라>를 서투르게 베낀 듯하다.
영화가 하고자 하는 얘기는 사랑이라는 욕망의 형식, 욕망의 게임에 관해서다. <남자들이 모르는 은밀한 것들>이란 번역은 팜므파탈한테 남자들이 당한다는 식의 얘기로 오해될 수 있는데 원래 제목은 <은밀한 것들>이다. 주제는 유혹하면서 유혹하지 않는 척 또는 유혹당하면서 유혹당하지 않는 척 ‘연기 잘하는 자’가 승자가 되고, 애타게 더 원하는 자가 패자가 되는 욕망의 형식이다. 정신분석학의 연애술 축약 버전이라 할까. 남자냐 또는 여자냐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누가 더 매력이 있고 누가 더 연기를 잘하느냐의 문제다.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추는 나탈리(코랄리 르벨)와 물품보관을 담당하는 상드린(사브리나 세이베쿠)은 마음이 통하자 거리낌없는 욕망을 실천하기로 하고 같은 대기업에 취직해 회사 중역과 경영진을 유혹한다. 22년 동안 바람 한번 안 피운 들라크르와(로저 멀몽)가 속절없이 당한다. 그러나 경영권을 상속하게 될 크리스토프(파브리스 드빌)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등장인물들은 ‘욕망은 타인의 욕망’이며, 욕망의 충족은 언제나 지연된다는 정신분석학을 시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자신의 매력은 과장하고, 남의 유혹엔 냉담한 척하는 이들은 연애게임의 승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사랑에 빠져 얻게 될 고통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영화는 영리하게 게임을 시작했다가 예기치 못한 사랑의 고통에 이르러 허우적댄다. 작가는 ‘욕망의 형식’은 통과했지만 ‘사랑의 고통’ 과목에선 헤매고 있는 학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