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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레디 액션, 친미바보협상

영화인들의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투쟁

어리둥절했다. 지난 1월26일 정부가 스크린쿼터를 지금의 절반으로 줄인다고 발표했을 때 영화계 관계자는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007 작전처럼 은밀히 진행된 축소방침은 설 연휴를 앞두고 전격 발표됐다. 한국 경제의 미래가 한-미 FTA에 있기에 스크린쿼터를 축소해야 한다는 정부의 홍보는 주류 언론들에 별다른 비판없이 받아들여졌다. 몇몇 여론조사에서도 스크린쿼터 축소를 지지한다는 견해가 많았다. 특히 포털 사이트의 댓글은 영화계에 적대적이었다. 영화계는 지금 사면초가처럼 보인다.

먼저 밝히자면 나는 스크린쿼터가 축소된다고 당장 한국영화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지금 축소 반대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당장 올해 1월 한국영화 점유율이 역대 최대를 기록한 상황이니 쿼터가 없다고 돈 잘 버는 영화를 극장에서 내릴 리는 없을 것이다. 쿼터 축소를 반대하는 입장에선 장기적인 효과에 주목한다. 20% 수준이던 한국영화 점유율이 최근 몇년 만에 50% 넘는 수준이 됐지만 이런 호황이 지속되리란 보장은 힘들다. 일종의 안전장치로서 쿼터가 필요하다는 얘기이고 쿼터가 없으면 작은 영화가 극장에 걸리는 일은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판단이다. 어떤 면에선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분신하는 농민들 주장도 묵살하는 판에 한가하고 사치스러운 것 아니냐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한국 경제의 미래가 한-미 FTA에 달려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녕 한-미 FTA는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일일까? <씨네21>은 특집 기사에서 한-미 FTA를 바라보는 상반되는 두 입장을 비교해봤다. 여러 가지 쟁점에 대해 숙고해볼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쟁점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한-미 FTA의 손익은 계급과 계층에 따라 다르다. 만인의 행복을 보장하는 국익이 있을 리 없지만 이 협상은 특히 그렇다. 협상을 주도하는 층이 내세우는 수출증대나 일자리 창출도 국내 농업이나 서비스업의 몰락을 대가로 삼은 것이다. 나는 한-미 FTA가 밝은 미래를 약속한다고 믿지 않으며 동시에 현행 스크린쿼터에도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얘기를 하기에 앞서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정말 그렇게 불가피한 것이라면 왜 스크린쿼터부터 내주겠다고 했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건 간단한 덧셈, 뺄셈만으로도 용납하기 힘든 일이다. 스크린쿼터 76일 축소를 통해 한국이 미국한테 얻은 것은 무엇인가? 한-미 FTA가 한국의 일방적 요구가 아니라 미국의 요구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FTA를 시작했다는 것은 답이 될 수 없다. 미국이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는데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가장 중요한 걸 내주고 시작하는 협상이 어디 있는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런 건 아껴뒀다 써먹는 게 이치에 맞다. 쌀수입을 10년 더 유예한다는 조건이랑 맞바꾸기라도 했다면 모를까, 세상에 이렇게 한심한 협상이 또 있을까 싶다. 미국이 1억원이라고 생각한 걸 한국은 100만원짜리라고 생각하고 내준 꼴이다. 언젠가 이 사건은 친미굴욕외교가 아니라 친미바보외교라고 불리지 않을까.

정 불가피해서 줄이더라도 정부 역시 최선을 다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 때 할 수 없었을까. 지금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투쟁은 정부가 싸놓은 똥을 영화계가 치우는 일이 됐다. 생색도 안 나고 박수받지도 못할 일이지만 내가 다닐 길이니 어쩔 수 없이 치워야 한다(영화계에서 목소리 높이지 않았으면 똥인지 된장인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지금 영화계가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투쟁을 하는 건 배가 고파서가 아니다. 무엇보다 그건 저들이 싸놓은 똥이 더러워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