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는 중독된다. 늦은 밤 남산 소월길을 ‘목숨 내놓은 것’처럼 달리는 자동차들이나, 용인 레이싱 서킷을 돌고 도는 레이서들이나 속도에 중독된 것에는 차이가 없다. <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줘>는 속도에 대한 만화는 아니지만, 속도가 주는 쾌감을 느끼게 해주는 레이싱 만화다.
키도 스즈카는 생명보험 영업사원이며 동시에 250cc 바이크를 모는 여성 레이서다. 늘 동경하던 천재 레이서 오사무가 경기 도중 사고로 죽자, 스즈카는 오사무의 헬멧을 쓰고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서킷에 나간다. 그때 헬멧에서 들려오는 오사무의 목소리. 스즈카는 그 목소리가 일러주는 대로 바이크를 몬다. 스즈카는 보통의 만화 주인공처럼 타고난 ‘열혈’이 아니다. 바이크에 대한 열정보다는 짝사랑하는 남자에 대한 애정으로 레이서가 되고, 속도의 쾌감보다 사고의 공포에 더 시달리며 속도보다는 보험에 중독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던 스즈카가 오사무의 코치에 따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달리며 속도가 주는 쾌감으로 절정을 맛보는 순간, 평범한 것처럼 보이던 이 작품은 마법처럼 독자를 끌어들인다. 이때부터 헬멧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진짜 오사무의 혼령이 내는 것인지, 아니면 스즈카의 오사무에 대한 그리움이 만들어낸 환청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여기에 창작 바이크에 미친 바바 공작소 사람들과 바바 공작소 소장을 쫓다 오히려 바이크에 반해버린 사채업자,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인물인 오사무의 동생 와타루의 등장은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동글동글 귀여워 보이는 그림체이지만 레이싱 장면은 치밀하게 묘사되며, 레이싱에 문외한이라도 지루하지 않게 그리면서도 전문적으로 연출된 경주 장면은 실제로 바이크를 타는 라이더로서 작가가 이 분야에 가진 애정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