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화를 향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영화를 직접 관람하는 것이다. 지나칠 정도로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 영화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길어야 1년을 기다리면 온전한 ‘작품’으로 만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무리한 조급증을 문제삼는다면 사실 할 말은 없다. 한편의 영화가 완성된 형태로 관객과 소통해야 한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지만, 우리가 마주하게 될 영상을 한땀 한땀 공들여 완성하는 촬영과정을 미리 엿보는 것은 기다림의 시간을 더욱 즐겁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호기심은 무모한 채근이 아닌, 설레는 기대에서 비롯된 애정의 다른 말이다.
임상수, 유하, 김대승. 대중영화의 화법으로 견고한 세계를 전달해온 세명의 감독이 신작을 찍고 있는 현장을 찾은 것은 그 때문이다. <눈물>과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거쳐 <바람난 가족>을 만든 솔직대담한 독설가 임상수 감독은 <그 때 그사람들>에 이르러 만만찮은 시대의 무게까지 자기만의 방식으로 소화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현재 그는 역시나 상당한 무게감으로 다가오는 동명 소설 <오래된 정원>을 영화로 옮기고 있다. 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두 남녀의 파란만장한 인연을 다룬 원작이 감독의 독특한 필터를 투과하면서 흥미로운 변화를 겪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이후 오랜 휴지기를 가졌고, <결혼은, 미친 짓이다>로 복귀한 유하 감독은 <말죽거리 잔혹사>를 통해 마초되기를 부추기는 사회적 메커니즘을 응시한 바 있다. 전작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그는 삼류건달의 파멸과정을 그린 <비열한 거리> 안에서, 남성성과 가족, 영화적 장르 등을 향해 좀더 심화된 매혹과 반성의 시선을 던지려 한다. 미스터리 구조를 지닌 멜로 <번지점프를 하다>로 데뷔한 뒤 역사추리극 <혈의 누>로 변신(?)한 듯 보였던 김대승 감독은 복잡하게 얽힌 사랑의 기억과 시간을 영화적인 방식으로 더듬는 멜로물 <가을로>를 만들고 있다. 섬세한 감정의 리얼함에 복무하는, 그만의 영화적 시간구성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것이 긴박하기만 한 촬영현장에서 심신이 복잡한 감독을 붙잡고 인터뷰를 청하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감독이 직접 몸을 움직이는 육체노동을 통해 머릿속 그림을 구체화하는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완성된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진행되는 인터뷰나 시나리오 단계에서 청하는 인터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띤다. 물론 우리가 맞닥뜨리게 될 이 영화들의 모습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변해갈 것이다. 촬영현장을 지켜보고 감독의 말을 들으며 완성본을 짐작해보는 이 과정이, 언젠가 극장에서 맞닥뜨리게 될 영화를 좀더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