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2일 아침 토고가 강적 가나를 1 대 0으로 무찔렀다며 만만찮은 전력을 지니고 있다는 속보를 봤다. 불과 나흘 전에는 기니와 졸전 끝에 0 대 1로 패했다며 걱정 안 해도 될 상대라고 하더니, 말이 휙휙 바뀐다. 다음 프로를 기다리느라 스포츠 뉴스를 보는 탓에 내 비록 충성도는 낮지만, 자꾸 보다보니 우리나라가 토고만을 상대로 월드컵을 치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같은 조 첫 상대라 주목되지만 토고가 얼마나 가난한지, 정부 부처 에어컨도 어찌나 낡았는지, 빨래는 어떻게 원시적으로 말리는지까지 시시콜콜 알아야 할까? 실컷 깎아내리고는 그래도 애들이 곳곳의 공터에서 맨발로 뛸 정도로 축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크다고 덧붙인다. 우리나라도 동네 축구 맨발로 하는 아저씨들 아직 많거든?
토고를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신념과 의지로 점철된 보도를 보면서, 집단적·국가적 신념과 의지라는 것이 일상을 얼마나 메마르게 하고 위험하게 하는지 새삼스럽다. 경남 밀양 밀성고 이계삼 국어교사가 얼마 전 <한겨레21>에 썼던 글이 떠오른다. 그는 “전체주의가 삶의 양식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모두는 ‘안락에 대한 희구’와 ‘그 안락을 박탈당했을 때의 공포’로 꽁꽁 묶여버린다”고 지적했다. 이 교사에 따르면, 그래서 아주 작은 일탈도 전 존재를 걸어야 하는 모험이 되고 모두에겐 시스템이 만들어놓은 ‘뻔한 길’만 남아 있을 뿐이다. 특히 우리 시대의 아이들에게는 그 나이와 세대에 고유한 ‘구체적인 경험의 세계’에 대한 감각이 결정적으로 퇴화했다. 부모 세대의 욕망이 구축한 시스템의 상자 안에 갇혀버린 탓이다. 남은 건 가치의 니힐리즘,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실체건 상상이건)에서의 존재감의 확인, 그것밖에는 없다…. 그래야 안락하기 때문이다.
월드컵도 황우석도 상상 속의 공동체다. 황 박사는 마지막(이라고 믿고 싶은) 기자회견에서 ‘불광불급’이란 말을 했다. 미치지(狂) 않고서는 미치지(及) 못한다는 뜻이다. 유구유언이라 말하지만, 황 박사의 경우를 두고는 딱 맞는 얘기 같다. 문자 그대로 볼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