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CNN을 볼 때가 있다. 영어를 못하니 제대로 볼 리는 없지만 신기하게 느꼈던 것이 하나 있다. 미국 얘기 못지않게 외국 얘기가 많이 나온다는 점이다. 분명 미국인이 주시청자일 텐데 전세계인이 CNN만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여러 나라를 두루 살핀다. 전세계 어디서 일어나는 일이라도 미국인의 의무와 책임 아래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CNN을 만드는 사람들은 분명 세계를 바라보는 기준이 미국에 있다고 확신하는 듯하다(이라크전쟁 당시 아랍 방송 알자지라는 이런 기준이 허상이란 걸 까발렸다). 하긴 CNN만 그런 건 아니다. 아카데미 영화상은 미국 영화인의 축제인데 가끔은 전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영화들이 자웅을 겨루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은 상징적이다. 들러리처럼 보이는 이 상을 타기 위해 올해도 여러 나라에서 엄선한 후보를 내놓았다. 들러리처럼 보이는 상인데도 수상을 고대하는 이유는 아카데미상이 가져다줄 경제적 이익 때문일 것이다. 거꾸로 미국인들에게 이 상은 할리우드가 세계영화를 대표한다는 신화를 거듭 심어준다.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는 그렇게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도 확인된다.
미국의 기준을 보편타당한 기준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제동을 건 쪽은 알자지라만이 아니다. 영화계에서 칸, 베니스, 베를린 등 유럽의 유서 깊은 영화제들은 할리우드와 다른 기준을 보여주는 일을 해왔다. 서구의 몇몇 평론가들은 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를 찾기 위해 아프리카로, 남미로, 아시아로 긴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인터넷의 등장과 더불어 획기적인 변화가 찾아오긴 했지만 미지의 영화를 찾아다닌 선각자들이 없었다면 영영 잊혀졌을 걸작이 한두편이 아니다. 한국에서 그런 인물을 찾으라면 부산국제영화제의 김지석 프로그래머를 들 수 있다. 부산영화제의 초창기에 처음 접한 아시아영화들은 너무나 낯설었다. 일부에선 수준 이하의 작품을 모아오는 게 아니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산영화제는 ‘아시아영화의 창’이라는 모토를 버리지 않았고 그 때문에 개성있는 영화제로 성공할 수 있었다. 이번 기획기사에서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영화제가 나를 그렇게 키웠을 뿐”이라며 겸손하게 말했지만 자비를 들여서라도 아시아 여러 나라를 다녀오는 열정이 없었다면 부산영화제의 방향 설정이 달라졌을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그는 논지 니미부트르,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무랄리 나이르 등 외우기 힘든 이름들을 우리에게 알려줬고 그들의 이름을 기억해야 할 이유를 가르쳐줬다.
할리우드영화가 중심이고 비영어권 영화는 변방이라는 사고 또는 서구영화가 중심이고 아시아영화는 변방이라는 사고는 은연중에 널리 퍼져 있다. 무엇보다 영화를 소비하는 시장 자체가 그런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져 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게 한국영화 아니면 할리우드영화로 양분된 상황에선 더욱더. 스크린쿼터를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비주류영화 쿼터제를 도입하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스크린쿼터가 문화의 종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시장에서 배척하는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일 테니까.
올해도 <씨네21>은 지난해 우리가 놓친 영화들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특집기사를 준비했다. 10편의 영화 가운데 몇편은 개봉 예정이 잡혀 있는 작품이지만 나머지는 극장에서 볼 기회가 있을지 알 수 없다. 모아놓고 보니 미국영화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의 한계를 보는 듯도 하다. 그러나 당장의 개봉작에 한정되는 영화 소개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시장의 논리가 만들어놓은 중심과 변방의 질서를 흔드는 일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