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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로 미리 보는 <음란서생> [5] - 소품
김현정 2006-01-04

내시들이 사용하는 검은 조근현 미술감독이 가장 기특하게 여기는 소품이다. 내시란 사내가 아니지만 여인도 아닌 존재. 그때문에 이중적인 느낌이 있어야 하지만, 검날의 폭을 좁혔더니 지나치게 여성적인 느낌이 묻어났다. 밤새 고민하던 그는 ‘민첩하다’는 한단어를 떠올렸고 검날의 가운데를 도려내는 모험을 했다. 날렵한 인상을 주면서도 베고 찌르기가 쉬운 이 검은 근육이 물리지 않도록 식칼에 구멍을 뚫는 이치를 차용한 것. 내시는 관련기록이 미미해 창작의 여지가 많았는데 거세된 남근을 이름써서 보관하는 대나무통이나 거세도구들이 새로 고안된 소품들이다.

정빈 회화

어릴 적부터 골동품을 좋아했던 정빈은 처소 한쪽 벽을 터서 일종의 갤러리를 만들어 두고 있다. 이방에 걸린 당·송대와 한국고대회화는 진짜 그림을 약간 변형하여 아마추어 동양화가가 모사한 것이다. 수천년된 작품이지만 행여 저작권에 문제가 생길까 염려한 처사.

쇠좆매

의금부 도사 광헌(이범수)이 애지중지하는 무기. 문헌에 등장하는 쇠좆매는 쇠좆 안에 철구슬을 넣어 휘두르는 잔인무도한 무기로 그 모습은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문헌대로 만들면 배우가 다칠 것이므로 동물의 피부 느낌을 살려 재현한 모양새가 이 쇠좆매다.

윤서 안경

안경을 구하기 위해 황학동을 드나들던 강정훈 소품팀장은 우연히 안경수집가를 만나게 됐다. 안경은 모양도 좋아야하지만 쓰는 사람의 골격과도 어울려야하므로 한석규와 이범수가 직접 그를 찾아가 이것저것 써보고 안경을 선택했다. 두가지 모두 조선후기에 사용됐던 안경. 한석규가 사용한 철제무테안경은 중인이 썼던 것이고, 동물의 뿔로 만들어 조각까지한 이범수의 안경은 사대부가 썼던 것이다. 영화에는 코팅지를 붙여 선글래스로 만든 한석규의 안경만이 등장한다.

고문기구

의금부에서 사용된 고문기구들로 곤장이나 주릿대처럼 덩치가 큰 것들은 따로 벽에 세워놓았다.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었지만 인두와 송곳처럼 낯익은 도구를 제외하면 그 용도를 모르는 것도 꽤 된다고. 구부러진 갈퀴살 여러 개가 붙어있는건 뼈와 뼈사이를 찍어 비트는 기구다.

흑곡비사

김대우 감독이 몇가지 견본 중에서 붉은색 표지를 고른 건 그옛날 청소년기에 ‘빨간책’을 읽던 추억때문이었다고 한다. 음란한 내용은 <소녀경>에서 빌려왔고 그림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오돌또기의 작가들이 그렸다. 감독이 원했던 일본 목판화 우키요에(부세화)와 비슷하지는 않지만, 매우 적나라하다.

다이어리

황가(오달수)는 유기전 주인이면서 음란서적 유통책이기도 하다. 직업이 두가지인 사람에겐 다이어리가 필요할 것 같아 한지를 묶어 월력까지 그려넣은 수첩을 만들어주었고, 그때그때 적을 수 있도록 붓 대신 목탄을 덧붙였다. 황가가 윤서를 재촉하며 <흑곡비사> 인쇄와 발행일을 챙겨 기록하는 수첩.

유기

놋쇠를 불에 달궈 두드려만든 방짜유기는 사람 손이 닿으면 소금기때문에 부옇게 흐려진다고 한다. 매매가 1억원에 달하는 3톤 분량의 유기를 수천만원을 주고 빌려온 소품팀은 행여 손을 탈까 바닥에 떨어질까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고, 장터 왈패들과 광헌이 격투를 벌이다가 넘어지는 유기장엔 깨끗이 닦은 헌유기만 넣어두었다. 유기전은 그릇만 팔거라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놋쇠로 만든 풍경과 타악기도 파는 곳이었다.

<음란서생>에 식기 등을 지원해준 회사는 민화로 유명한 회사이기도 했다. 그에 단서를 얻어 밋밋한 백지 대신 프린트한 민화를 틀에 발랐더니 꽃잎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어여쁜 등이 만들어졌다. 기생집에서 랜턴처럼 매달아두기도 하고 바닥에 놓아두기도 하는 등. 정빈(김민정)도 비슷한 등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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