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지만 신인 시절 배우 김선아는 술술 읽히다가 알쏭달쏭한 추신으로 마무리되는 편지 같았다. “위트있고 섹시한 젊은 여배우”로 간단히 정리하고 돌아서려고 하면, “이보쇼!” 하고 슬쩍 불러 세우는 구석이 그녀에겐 있었다. 첫 영화 <예스터데이>에서 김선아는 무지막지하게 강하고 과묵한 형사 메이였다. 그런 그녀가 다른 여자(김윤진)의 옷이 맞을까 몸에 대보는 장면이 있다. 멀리서 찍은 숏이라 표정도 희미하고 대사도 없지만 메이는 느닷없는 사랑스러움을 발한다. <몽정기>의 김선아는 사과 같은 볼을 지닌 천진한 교생 유리다. 그런데 ‘몇년 뒤’로 날아간 에필로그에서 그녀는 노련한 교사로 천연덕스럽게 변한다. 계백 장군 부인으로 딱 한 장면 우정출연한 <황산벌>에서 김선아는 번개처럼 반전을 만든다. 출정을 앞둔 남편(박중훈)으로부터 자식들과 함께 자결을 강권당한 그녀는 “뭐시라고라!”고 일갈한다. 새끼를 감싸는 암사자 같은 그녀의 포효는, 폭소를 기대하던 객석을 순식간에 엎어친다. ‘선아체’로 표현하자면,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뭐신가.
모두의 기억대로 첫 주연작 <위대한 유산> 이후 김선아의 위치는 달라졌다. 그녀는 더이상 알쏭달쏭하지 않은, 내용이 분명한 스타가 됐다. 배우 김선아의 이름이 무엇을 뜻하고 어떤 재미를 약속하는지 기자보다 관객이 먼저 정확히 알아차렸다. 그녀의 여러 재능 가운데 코미디언으로서 저력이 먼저 공인받았다. 그리고 2005년 여름 삼순이가 나타나 (무엇을 상상했건 그 이상을) 보게 했다. 삼순이 김선아는 여전히 친근하고 대담했으며 통쾌하게 웃겼다. 그러나 16회 미니시리즈로 찬찬히 들여다본 김선아의 코미디는 2시간짜리 영화의 그것과 확연히 달랐다. 훨씬 큰 멍석을 깔자 이제껏 접혀 있던 배우 김선아의 갈피가 주르륵 펼쳐졌다. 물론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도 김선아는 예전 영화에서 그랬듯 똑같이 술에 취해 토하고 마스카라를 녹이며 운다. 그러나 이 여자가 왜 술을 마시고, 왜 남자를 패고, 왜 통곡하는지 <내 이름은 김삼순>만큼 꼼꼼히 설득한 김선아의 작품은 없었다. 모래주머니를 뗀 단거리선수처럼 김선아는 펄펄 날았다.
열풍의 복판에서 한 발짝 걸어 나온, 그러나 생의 기념할 만한 한해를 아직 음미하고 있는 김선아를 만나고 싶었다. 지금이어야만 한다는 멋대로의 생각에 그녀가 응해 주었다. 까만 머리칼과 옷깃에 분기없는 얼굴을 묻은 김선아가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그녀는 인터뷰어를 게으르게 만드는 달콤한 강적이었다. 김선아가 콧망울을 울리며 “상당히”라고 강조하거나 “진짜”라고 첫 음절에 힘주어 말할 때마다 나는 번번이 다음 질문을 잊어버리곤 했다.
-<내 이름은 김삼순> 종영 이후 한참 쉬셨습니다. 학생들이 시험 끝나면 이것저것 하겠다고 벼르듯, 드라마 찍는 동안 그린 계획도 많았을 텐데 꿈꾼 대로 지냈나요? =오만 잡다한 쌓인 피로가 다 터져나왔어요. 일단은 쉬고 싶었고, 운동도 하고 교수님 찾아서 피아노 개인 교습도 받으려고 했는데 쉽게 안되더라고요. <내 이름은 김삼순> 끝내고 혼자서 힘들었던 것 같아요.
-왜죠? 본인 힘으로 한 영화를 짊어질 만큼 힘도 갖추었고, 방금 끝낸 작품이 흥행도 평도 성공을 거뒀으니, 다시없이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 같은데요. =영화 여러 편 하면서 성공도 실패도 겪어보니 결과에 대한 반응이 무뎌졌어요. 거기 매달리다보면, 전작 결과에 맞추어 다음 단계를 만들어가야 하니 다음 일을 계획할 수가 없어요. 아무래도 부담은 크죠. “성공해서”, “캐릭터가 강해서”, 부담되겠다고 남들이 말하니까 귀가 얇아지는 것도 같고. 제가 “다음 작품 진짜 중요하다”고 사무실에 얘기했더니 “너, 매번 그러지 않았어?” 하는 반응이 돌아왔어요. 그러니까 앞 작품이 잘되건 못 되건 제가 갖는 마음은 늘 똑같은 거죠.
-더 근본적인 문제로 생각이 가지를 치는 건가요. =사람들은 안 어울린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전 생각을 시작하면 너무 깊게 파고드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래서 쉬는 시간이 많으면 안돼요. 차기작뿐만 아니라 여자 김선아, 배우 김선아로서 복합적인 생각을 했죠. 뭐 하나 잡으면 미친 듯 매달리는 성격이라 그동안 생각할 여유가 정말 없었거든요. 일을 하면서 성격이 변하기도 했죠. 원래 외향적인 면과 내향적인 면이 구분된 성격인데, 그 골이 더 깊어졌다고 할까요.
노력 이상의 복도, 이하의 불운도 없어요
-5살 때부터 피아노를 친 걸로 압니다. 시초는 부모님의 희망이었나요? =아뇨. 스스로 시작했어요. 집 앞에 피아노 대리점이 있었고 그곳 사장이 만날 피아노를 쳤는데 꼬맹이인 제가 창가에 붙어 앉아 손가락을 움직이며 따라했대요. 그 모습 찍은 사진도 지금 있어요. 그래서 엄마가 재능이 있나보다 생각하고 교습을 시작했는데 정말 진도가 빠르고 선생님들마다 천부적 소질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거기부터죠. 농땡이란 농땡이는 다 쳤어요. 뒷방에 가서 연습하라면 피아노 뚜껑 닫고 그 위에서 공기놀이했죠. (폭소) 연습 안 해도 1등 하고 대회에서 상을 받아오니 자만한 거죠. 그러다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크게 물먹었어요. 예선 탈락했거든요. 주변의 모든 애들이 하루 8시간, 10시간 연습했는데, 저요? 단 30분도 안 했어요. 밖에 나가 바닥에 금 그어 오징어 하고 고무줄하다 만날 양말 구멍 내고. 워낙 새로운 일 하는 걸 좋아해서 7살 때는 피겨 스케이트를 배웠고, 수영, 테니스, 미술학원도 다녔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서예 학원에 멋대로 등록해놓고 나중에 엄마보고 가서 돈 내라 그랬어요. (웃음) 바이올린도 1년쯤 하다 턱이 아파서 그만뒀죠. 합창단에 들려고 갔다가 연령 제한이 있다는 말에 운 기억도 나요. 그러다 중학교 때 일본으로 이사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대학 전공으로 피아노를 고려하고 114에서 도쿄대 교수님 전화번호를 알아내 무작정 찾아갔어요. 연주를 들은 교수님이 소질은 있는데 손가락이 굳었다고 했어요. 지금부터 미친 듯 연습해도 힘들 거라고. 바로, 포기했어요. 고등학교 때 많은 생각을 했죠. 중국어 하면 먹고사는데 지장 없겠다 싶어 친구랑 중국 유학도 계획했다가 역시 너무 막연해서 미국 유학을 간 거예요.
-얘기 들으니 어렸을 때부터 뭘 배울까, 뭘 하고 살까 본인이 적극적으로 궁리하고 결정한 다음 부모님께 지원을 요청하는 스타일이었던 것 같네요. 피아노도 연주자가 되기 직전에 그만뒀고, 스케이트나 수영도 선수 활동할 수준에 이른 걸로 압니다. 아무리 농땡이를 쳤다지만, 그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은 어려서부터 내내 규율, 훈련, 연습으로 점철된 생활을 했다는 뜻 아닌가요? =(잠시 생각) 지금 가만 생각해보니 공부하기 싫어서 그런 거 같아요. (웃음) 뭔가 혼자서 재미를 느끼긴 했겠죠. 많이 맞기도 했어요. 피겨 스케이트 선수할 때는 하키 채로 맞고, 빙판에 30분 이상 엎드려뻗치기도 했어요. 그래도 굳이 한 걸 보면 재미가 있어서였겠죠? 동생 경우는 악기를 하다가 도저히 못하겠다고 그만뒀는데 저는 농땡이를 피우면서도 그만둔다는 말은 죽었다 깨도 안 하니 엄마가 더 힘드셨을 거예요.
-대학에 들어간 뒤에 피아노로 전공을 결국 바꾸었죠? =여름방학에 기숙사 밥만 먹고 외출도 안 하고 짠순이 생활을 했어요. 너무 할 일이 없어서 혼자 학교에서 하루 한 시간씩 피아노 치고 노래를 불렀죠. 혹시 부전공이라도 할 수 있을까 하면서. 그걸 우연히 들은 분의 소개로 음대 교수님을 만났고 한달 말미를 받아 두곡을 테스트 받았어요. 죽기 살기로, 병날 때까지 연습해서 장학금 타고 저널리즘에서 피아노로 전공을 옮겼어요. 아침 수업 뒤 두 시간, 점심 먹고 세 시간, 저녁 식사 앞뒤로 다시 피아노를 연습했어요.
-그렇게 되찾은 피아니스트의 길인데, 한국에서 모델과 연기를 시작하면서 또 한번 진로를 바꿨을 때는 어떤 결단이었나요? =비엔나 교환학생을 갔다가 러시아에서 공부하고 미국 대도시에서 석·박사를 밟고, 10년 앞까지 나름 계획도 세워둔 상태였어요. 그런데 한국 나와서 잠깐 한 이쪽 일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짭짤하고. (웃음) 미국에서도 줄곧 아르바이트를 했으니 한 학기만 일하자 생각했는데 (모델)계약 때문에 한쪽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 왔어요. 인생이 판가름나는 시점인데 어쩔 줄 몰라 많이 울었어요. 그러나 ‘내가 다시 이런 기회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어요. 지금도 그때의 결정은 미스터리예요. 학교에 대한 미련은 계속 남아 활동하면서도 매년 다시 가려고 노력했지만 도저히 시간이 허락지 않았죠. 6년간 휴학계를 지속한 끝에 경희대 연극영화과로 편입했어요. 그런데 바로 <내 이름은 김삼순>에 들어가 학교는 딱 한번 갔어요.
-초등학교는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는 일본에서, 대학은 미국에서 다니셨습니다. 각국의 친구들은 김선아씨를 어떤 급우로 기억할 것 같나요? 모습에 차이가 있을까요? =초등학교 때는 선머슴 같았어요. 근데, (소리 죽여) 그 뭐, 자랑은 아니나, 남학생들이 좀 많이 쫓아다녔어요. 지금도 제가, 이해를, 못해요. 요즘도 통화하다보면 옛날에 좋아했다, 너도 그랬냐 얘기하곤 하죠. (웃음) 중학교 때 일본 가서는 살이 무진장, 한달 만에 15kg이 쪘어요. 저뿐 아니라 집안 식구가 다같이 살이 쪘어요. 처음엔 말도 안 통하는 학교 다녀와 삼남매가 과자 먹고 TV만 봤거든요. 중학교 때 친구들은 저를 소심했다고 기억할 수도 있을 거예요. 고마운 기억이 있어요. 전학 일주일 만에 말 못하는 제게 담임선생님이 피아노가 특기냐면서 합창대회 반주를 맡기신 거예요. 처음 곡을 치고 나니 애들이 막 박수를 치는데 됐다 싶었죠. 중요한 계기가 됐어요. 그때 제가 사전을 5권 갖고 다녔어요. 한일, 일한, 한자, 한영, 영한에다 부록까지. 일본어가 필요한 과목인 국어, 사회, 자연은 다 빵점을 맞았죠. 선생님은 뭐라도 찍으라고 당부했는데 저는 가책이 되어 백지를 낸 거예요. 딱하셨는지 선생님이 중3 때는 학교에 남겨 특별과외도 해주셨어요. 제가 상상한 일본은 이지메 많은 나라였는데, 실제로 겪은 인상은 상당히 좋은 편이에요. 반 친구들이 한국어 회화책 들고 와 말도 걸어주었는데, 그때 처음 한국말 걸어준 남자애가 정말 멋있었어요. 짝사랑만 1년 넘게 했고 수영부도 따라 들어갔죠. 그애한테 수영복 차림을 보여줄 수가 없어서 무슨 이유를 대서든 수영은 안 했어요. 지상 훈련만 하고요. (폭소) 너무 친해지는 바람에 끝까지 좋아한다는 말도 못했죠.
-환경이 변해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변치 않는 인력이 김선아씨에게 있나봐요. =덩치 때문 아닐까? 맞을까봐서. (웃음) 정이 많아 사람 인연 때문에 힘든 일이 없진 않았어요. 남자나 여자나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도와주다가 오해도 많이 받았죠. 특히 한국에 온 다음에는. 이젠 적응이 된 것 같아요.
-저는 김선아씨가 외국에서 오래 살아 한국말이 서툰 연기자라는 평판을 뒤늦게야 접했습니다. 조금 의아했습니다. 말의 맛이나 억양, 구어의 예민한 차이를 활용하는 배우라고 생각했거든요. =아무래도 잊어버린 단어나 감각은 있었죠. 청소년기에 한국에 없었으니 은어나 어려운 단어를 모른 것도 당연하고요. 그러나 늘 친구들에게 편지도 쓰고 소통이 힘들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그런데 연기를 하면서 오디션에서 늘 한국말 이상하다, 연기 이상하다 말을 들으니까 연기수업을 시작하게 됐죠. 저도 모르게 입 안에서 맴돌고 입을 많이 안 벌리는 일본어식 발음 습관이 밴 모양이에요. 자존심 상하는 일도 많았어요. 이미지 맞는 배역에서 대사 때문에 떨어진다든가. 제 프로필만 읽어선 모르실 거예요. 쉴새없이 일을 한 걸로 보이니까. 하지만 그 이면에는 거절당한 것도 많아요. 어느 순간 진짜 제대로 하겠다고 결심하고 연기수업을 열심히 했어요.
-발성 지적을 받던 초기와 지금의 본인 연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보십니까? 표준에 안 맞는 부분이 지적의 대상이었다가, 김선아식 연기가 하나의 스타일로 인정되면서 포용된 건 아닐까요? =많이 변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얼마 전 미국에 가서 예전 드라마를 봤는데, 차이가 좀 나긴 하더라고요. 카메라 의식하는 것이 눈에 보이고, 어쩌면 연기를 저렇게 했는지 보신 분들한테 죄송했어요. 그래도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는 것이고 그 경험이 없었으면 지금도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느낀 것이 있어요. 나란 사람은 노력한 만큼 가질 뿐 더 가져오는 것도 덜 가져오는 것도 없다는 교훈이요. 인복은 있지만 그 나머지는 운이랑 무관해요. 제 노력 이상의 복도, 이하의 불운도 없어요.
외국어건 사투리건, 언어에 대해 강박이 있어요
-우리나라 여배우들의 매력은 소녀적인 속성에 기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청순함이라든가, 성인다운 현실적 책임에 대한 거부나 무력함이라든가. 그런데 김선아씨는 소녀적 매력을 경유하지 않고 빛나는 여배우 중 하나입니다. 지금 본인의 실제 나이가 극중에서 호소력을 발휘하는 캐릭터의 나이와 거의 일치하고 있는 시기라고 느끼지 않는지요? 예컨대 에마 톰슨은 그녀가 더 젊었을 때도 30대 후반 느낌이었는데, 그 나이를 넘겨서도 역시 30대 후반 여성의 인상이 강하거든요. =이제야 제 실제 나이와 캐릭터 나이가 만난 것 같아요. 남들보다 데뷔를 한참 늦게 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저를 어리게 봤고 항상 나이보다 어린 역을 해왔어요. <몽정기>가 21살, <위대한 유산>이 24, 25살이었으니까. 복 많다는 소리도 들었고, 외국에서 생활한 때문인지 워낙 나이를 신경 안 쓰고 살기도 했고요. 상대가 어른이건 아이건 일이나 대화에 차별을 두지 않았어요. 그러다 처음 제 나이에 맞게 연기한 것이, 19살에서 29살에 걸친 연기이긴 했지만, <S 다이어리>예요. (작은 소리로) 그 다음에 교복입고 <잠복근무> 하긴 했지만. (웃음) 그러다가 서른살 삼순이를 연기하면서, 제가 스물네댓살이었으면 그리고 지금까지 연기가 없었다면 이 역 못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이제 서른 넘은 역할들이 들어와요. 어, 현실을 직면해야 하나보다 싶죠. 결혼한 여자 역이요? 들어왔어요. 처음은 아니죠. <황산벌>에서 애가 셋 딸린 계백 부인이었잖아요.
-<예스터데이>에서 연기한 메이는 무척 말이 없었습니다. 같은 과묵한 연기라도 이제 와서 다시 메이를 연기한다면 조금 다를 것 같나요? =다르겠죠. 그때는 열심히 했고 즐겁기만 했지, 뭘 하는지는 잘 모르고 했어요. 지금 하라면 컨셉을 바꿔서 다른 연기를 하겠죠. 메이는 뭐랄까 묵직한 캐릭터였는데, 헤어스타일이며 말투며 그것을 겉으로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 많았던 거 같아요. 감독님 지시하에 90% 이상을 후시녹음으로 대사를 바꿨는데, 목소리 톤을 전부 낮췄어요. 미래에는 마이크폰으로 대화하니 급박한 상황에서도 큰소리치지 않아도 된다는 이치였는데 관객에게는 잘 전달이 안됐죠. 겉으로 풍기는 무게감을 위한 제 연기표현이 지금 보면 피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영화가 너무 하고 싶었고 감독님도 너무 좋았는데, 제가 어려운 시나리오를 충분히 파고들어가지 못했어요.
-<위대한 유산>의 경우, 미영 역에 대한 확신이 본인에게 처음부터 있었고 하겠다는 의지가 대단히 강했다는 후일담이 많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김선아의 전환점으로 평가되는 영화인 만큼 당시 꼭 해야겠다고 확신한 직감의 내용이 궁금합니다. =결론이나 결과에 대한 기대치는 조금도 없었어요. 다만 이걸 내가 하면 정말 잘할 수 있겠다는 뭔지 모를 자신감, 무조건 해야겠다는 생각이 읽자마자 들었어요. 그래서 미친 듯이 달려들었죠. 임창정씨가 이미 캐스팅된 상황이어서 대사나 상황이 읽으면서 금세 그려졌어요. <예스터데이>와 <몽정기>의 캐릭터도 차이가 컸는데, <위대한 유산>도 많이 달라졌죠. 하지만 말씀드린 대로, 이미지 변신을 목적으로 다음 작품을 고르진 않아요.
-<위대한 유산>을 보면서 감탄한 점은 사실 예쁘게 보이기를 포기했다는 면은 아니었어요. 영화 몇편 안 찍은 배우가, 과장된 상황을 연기하면서도 당황하거나 필사적으로 무리하지 않고, 타이밍이나 표현 수위를 통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관객이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는, 원숙한 코미디언이나 줄 수 있는 안정감이 있어서 좀 놀랐습니다. =<위대한 유산>은 제 나름의 시나리오가 머릿속에 다 들어 있었어요. 워낙 촬영에 들어가면 시나리오를 잘 안 보거든요. 생소한 사투리나, <잠복근무> 같은 전문직업 연기는 미리 준비하지만, 보통은 대사를 잘 외지 않아요. 애드리브든 뭐든 계산없이 현장에 가서 작품 안으로 얼마나 들어가느냐에 따라 연기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말하자면 순간 집중력이 좀 큰 편인 것 같아요. 하지만, 세 작품을 동시에 찍었던 당시 제일 열심히 한 작품은 <황산벌>이었어요. 아마 <내 이름은 김삼순>까지 통틀어 제일 열심히 한 것도 <황산벌>일 거예요. 물론 <S 다이어리>도 시나리오 단계에서 제가 개입했다는 점이 특별하지만.
-순간적으로 바뀌는 상황에 대해 빨리 적응한다는 뜻인가요? =살아온 이력 때문인지 어떤 환경에든 적응이 빠르다는 것이 정답인 거 같네요. <S 다이어리>가 10년에 걸친 이야기인데 차례대로 찍는 것이 아니잖아요. 파트너도 현우 오빠, 수로 오빠, 공유가 왔다갔다 하고. 너무 헷갈려서 티저 포스터 찍을 때 촬영한 커플별 폴라로이드 사진을 차 안에 붙여놓고 감정이 혼동되지 않도록 상기하며 다녔어요.
-적극적으로 <황산벌>의 계백 부인 역을 희망하고 공들여 연기했다는 이야기를 정승혜 대표(영화사 아침)로부터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시나리오를 무척 마음에 들어 하셨다고요. =시나리오와 배역에 강한 인상을 받아 오케이했는데, 그 다음부터는 부담이 엄청나게 컸어요. 한 3개월 대본을 붙잡고 살았어요. 첫째 작품에 폐가 되고 싶지 않았고 둘째로는 처음 하는 사투리 연기를 어설프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외국어건 사투리건 저는 특히 언어에 대해 강박이 있어요. 그 말에 익숙한 사람이 들으면 분명 거슬릴 거라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어떻게든 사실에 근접하게 연기하고 싶었는데 호남 사투리는 모르겠고(김선아는 대구 출신이다). 그래서 농담으로 “김유신 장군 와이프로 바꾸면 안될까?” 묻기도 했죠. (웃음) 그러다 여수 출신 아주머니들의 말을 녹취해서 듣고, 의자왕 아들로 출연한 안혁모 선생님 모시고 새벽까지 연습했어요.
-무슨 악기 배우는 이야기 같네요. 그래도 보람은 충분했겠습니다. <황산벌>에서 처음 김선아씨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된 사람이 많았으니까. =달랑 한신 연기하고 얻은 게 너무 많아 시켜준 것만도 진심으로 감사해요. <황산벌> 이후 영화쪽에서 다른 시각으로 저를 보고, 다른 연기, 내면 연기도 할 수 있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의 민경은 <위대한 유산>의 미영과 많이 다른 역 같습니다. 일단 연기자 입장을 상상해보면, 감정을 발산하는 부분이나 클라이맥스가 없으니까요. 어느 기사를 보니 민경이 매력있다는 감독님 말씀에 김선아씨가 “아니 대체 이런 바보 같은 여자가 뭐가 좋다는 거죠?”라고 말했다면서요. =여자라서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성격은 사랑스럽긴 한데 답답하죠. 솔직히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는 가장 안타까운 작품이기도 해요. 결과를 떠나서 제가 올인을 못했기 때문에 후회가 많아요. 한다 안 한다 설왕설래하다가 갑자기 들어간 작품이라 감독님과 사전에 이야기도 한번 못했거든요. 등장인물이 많은데 전체적으로 파악하지도 못했고, 제가 많은 일을 못한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었던 것이 홍보였죠. 차태현씨랑 TV 프로그램에 제일 많이 출연한 것 같아요.
-하지만 그처럼 자신이 매진하지 못한 작품의 경우 홍보에서도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배우도 있잖아요. =개봉까지는 작품과 같이 간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이 문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고 저도 싫은 걸 억지로는 못해요. 물론 운이 너무 좋아서 영화만 덜렁 개봉하고 아무 홍보 안 했는데 터지면 좋죠. 하지만 그런 상황도 아니고, 내가 이렇게 찍어왔으니 보아달라고 얘기하는 것은 보는 분한테 예의라고 생각해요. <예스터데이>는 월드컵 개막날 개봉했거든요. (웃음) 그때 압구정동 군중 사이로 밴 타고 지나가면서 코디네이터들이랑 <예스터데이> 엽서를 돌렸어요. 저 나름대로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 거예요.
대본을 안 보고 가도 난 삼순이였어요
-박중훈, 임창정, 김수로, 이범수씨처럼 던지고 받는 연기에 능숙한 배우들과 짝을 이루어, 많은 영화에서 팽팽히 주고받는 식의 연기를 하셨습니다. <S 다이어리>는 아예 쇼케이스처럼 남자 파트너를 바꾸는 구성이었죠. 그런 일대일 상황에서 상호작용이 성공하고 실패하는 관건은 어디 있다고 보십니까? =욕심을 내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큰 욕심은 화를 불러요. 매번 던진다고 될 일이 아닌 거죠. 서로 의논 안 해도 무엇이 주(主)인지 분명히 알고 넘어갈 때 좋은 결과가 나와요. 영화를 보면 대화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대사는 오가는데 따로 논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죠. 시청자도 관객도 많은 작품들을 보아왔기 때문에 아무리 연기라도 눈에서 나오는 감정, 진정성은 그대로 가 닿아요.
-어머니와 유난히 돈독한 딸로 분한 적이 많습니다. 그 어머니는 주로 딸의 애칭이 “이년, 저년”인 친구 같은 어머니고요. =우리 엄마는 저를 그렇게 부른 적 단 한번도 없어요. (웃음) 엄마와 저는 성격이 아주 비슷해요. 본래 내 일은 내가 해결한다는 주의라서 속병이 많은데 엄마도 그러신 것 같아요. 엄마와 둘이 사는데 제가 만날 나가 있으니 엄마는 저를 많이 그리워하는 반면, 저는 집에 가면 마냥 쉬고 싶어하죠. 가끔은 제가 남편 같은 느낌이 들어요. (웃음)
-<위대한 유산>의 김수미 선생님, <S 다이어리>의 나문희 선생님,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자옥 선생님과 공연했습니다. 그분들을 바라보며 미래를 그려보거나 조언을 구한 적이 있나요? =두 작품을 같이 한 나문희 선생님은 <내 이름은 김삼순> 때는 8회 끝나고 전화를 하셔서 너무 잘했다, 그런 연기를 하고 싶었는데 못한 걸 네가 잘해서 기분이 좋다고 말씀하셨어요. 선생님들이 평소 잘해주셔도 후배에게 전화까지 하는 일은 드물잖아요. 뭉클했고 나도 후배에게 그런 얘기 해줘야지 싶었어요. 이쪽 세계는 칭찬이 인색한 것 같아요. 네티즌과 연예인 사이도 그렇고, 배우들끼리 서로도 그렇고.
-그러나 김선아씨는 동료들을 잘 챙기는 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솔직하려고 노력하다보니 쓸데없는 간섭도 많이 해요. 예를 들어 속눈썹 왜 붙였냐고 연기 방해된다고 떼라 그런 적도 있고요. (웃음) 욕먹을 얘기지만, 나도 바꿔야 되지만 너도 말투 좀 바꿔라 한 적도 있고요. 아는 애들한테는 다 뭐라고 하고 싶어요. 서로 잘되면 좋잖아요? 외로운 직업인 것 같아요. 점점 누구한테 전화 걸어 이야기하는 것이 오버인가 하는 생각도 들긴 해요. 이제 그만 오지랖 넓히고 나나 잘해야지, 지금 내 앞길이…. (좌중 웃음)
-김선아씨 출연작에는 우연치 않게 반복되는 요소들이 있죠. 그중 많이 언급되는 것이 욕설입니다. 욕 자체보다 김선아씨의 욕 대사는 민망하다거나 가학적인 느낌이 없다는 점이 특기할 만한 것 같습니다. =살면서 욕하지 말자는 철칙이 있었어요. 그런데 <위대한 유산> 전에 연기 수업을 하면서 욕도 할 줄 알아야 하고 다른 대사처럼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걸 배웠어요. <위대한 유산> 때는 지방 사람이 표준어하듯 어색하기도 했고 ‘어휘’도 단조로웠죠. 외국어와 마찬가지로 귀와 모든 걸 열어놓아야 해요. 그런데 하다보니 스트레스도 풀리고 재미있더라고요. (웃음) 요즘엔 간혹 평소에도 툭 튀어나와요. <내 이름은 김삼순> 하면서 넉달 가까이 얼마간 욕을 하며 지냈으니… 그래도 제가 욕한 건 <위대한 유산>과 <내 이름은 김삼순> 정도 아닌가요?
-그리고 화장실, 술 마시고 토하기, 화장이 번지게 울기 같은 특정한 상황이 김선아씨 영화에 약속한 듯 반복되는 현상은 좀 흥미롭기도 해요. =마스카라가 번지는 건 화장을 하는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잖아요. 상황은 다 달랐어요. <위대한 유산>에서는 소화기 가루가 뿌려진 거였고, <S 다이어리>의 울음과 <내 이름의 김삼순>의 울음은 뉘앙스가 달랐고요. 망가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예를 들어 술 먹고 예쁘게 토하는 사람이 있나요? 실연당해 미쳐버리겠는데 (조신하게 옷소매를 올리고 훌쩍거리는 시늉) 이러는 사람이 있겠냐고요. 제가 지금까지 연기한 인물이 대개 우리 주변의 여자들이잖아요. 그래서 화장을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는 거고, 마스카라 칠하고 우는데 초강력 워터프루프 제품 아닌 다음에야 안 번지면 이상한 거고, 오바이트하다가 묻으면 머리칼 넘기는 거고요. 보통 여자 캐릭터들이니 비슷한 일들은 겪지만 그렇다고 결코 성격도 비슷하지는 않을 거예요.
-저는 <내 이름은 김삼순>이 김선아씨 경력에서 전작의 연장이라기보다 다른 국면의 시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는 2시간의 길이 제약이 있어서 아무래도 코미디 기교나 개인기에 주의가 쏠렸다면, 드라마는 여러 회에 걸쳐 다채로운 상황을 제공하면서 김선아씨의 다른 잠재력, 이를테면 <황산벌>에서 단초를 보인 재능을 널리 인식시킨 작품 같습니다. 본인은 어떻게 정리하시는지요? =<내 이름은 김삼순>의 원작과 시나리오를 읽으며 생각했던 것은 나름의 캐릭터 안에서 움직일 수 있는, 한 사람이 살아가는 희로애락을 이 드라마를 통해 잘 표현할 수 있겠다는 거였어요. 제작발표회 때 받은 질문의 대다수가 이미지 변신 왜 안 하고 또 비슷한 역할을 하냐는 거였는데 그때 저는 “드라마 다 보고 얘기해주세요”라고 답했어요. 변신이 왜 그리 중요한지도 모르겠고 물이 흐르듯 흘러가야 한다고 믿어요. 전들 비슷한 장르 안에서 몇 작품 한 걸 왜 모르겠어요. 그러나 그것이 없었다면 이 드라마도 제게 들어오지 않았고 저도 그런 연기를 못했을 거예요. 연기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도 많이 얻었어요. 용기를 줘서 고맙다는 인사도 많이 받았는데 제 자신도 드라마를 통해 성숙한 것 같아요. 아직도 가슴이 아려서 다시 보지 못해요. 중요한 건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제가 가장 많이 느끼고 가장 진실되게 연기를 했다는 거예요. 전에는 예컨대 우는 신이다 하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 생각이 많았는데,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는 그런 고민해본 적도 없었어요. 대본을 안 보고 가도 난 삼순이였어요. 내 안에 쌓인 것이 많아 이 인물을 통해 얘기를 해보자, 이렇게 된 건지 아니면 많은 사람이 공감하게끔 연기를 만든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화나는 장면에서는 미칠 정도로 화가 치밀고 죽은 아버지와 재회하는 신을 찍고 나면 집에 가서 잠을 못 이뤘어요. 해외 프로모션을 이제 시작하니 어차피 내년까지 이 여운을 겪겠죠. 아마 이 작품으로 인해 ‘해’도 있을 거예요. 여기서 ‘해’란, 너무 많은 사람이 보았기에 제가 이후 어떤 연기를 해도 완전 다른 장르를 하지 않는 한 비슷해 보일 수 있다는 점이죠. 그러나 그것도 과정이니 귀를 닫고 눈을 감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소한 차이가 또 있어요. <몽정기> <위대한 유산> <S 다이어리> <잠복근무>에서 스틸 이외에 따로 연출한 포스터 컷은 모두 영화 내용과 다소 무관하게 김선아씨의 섹시함을 부각시키고 있잖아요. 그런데 <내 이름은 김삼순>은 그런 요소에 작품 안팎으로 거의 기대지 않은 첫 작품 아닌가요. =그렇죠. 포스터들은 다 섹시하게 찍어놓고 내용을 보면 제 모습이 전혀…. (웃음)
-어차피 여성 캐릭터면에서는 TV가 영화보다 현실을 더 빠르게 쫓아가는 면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현실과 밀착된 캐릭터에 강한 김선아씨는 TV에서 좋은 작품을 도모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내 이름은 김삼순>을 하면서 이 작품이 영화였다면 이 정도로 공감 못했을 거라는 생각을 많이 했죠. 왜냐하면 <S 다이어리>를 하면서 한달 반 동안 감독님과 수많은 경험담을 나누었지만, 10년을 보여주기에 영화는 너무 짧았거든요. 드라마를 하면서 16부도 짧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다음에 영화를 할 때에는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겠구나, 좀더 시나리오가 체계적으로 탄탄해야 제대로 이야기를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오랜만에 TV를 했더니, 모니터도 없고, “밥 먹으러 어디로 가요?” 하니까 각자 알아서 먹으라 그래서 적응이 안됐죠. 다들 너무 차갑구나, 같이 밥 좀 먹지. 그랬어요. (웃음)
후배들에게 미리 무술도 배우러 다니라고 말하곤 해요
-굳이 남성에 빗대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여배우들의 경우 커리어가 아직 남자배우들의 그것보다 다양하게 분화되지 않아 김선아씨의 행보를 보며 박중훈씨나 송강호씨 같은 선배 남자배우들의 길을 상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자들은 이미지에 데미지가 올 수 있다는 우려로 선택 폭이 좁을 수밖에 없어요. 네티즌을 포함한 시스템이, 남자배우가 뭘 하면 큰 말이 없는데, 여자는 이렇다고 규정해놓고 조금만 벗어나도 떠들썩해요. 안젤리나 졸리, 안 파릴로(<니키타>)를 보면 멋있다면서 국내 여배우가 근육 키워 나오면 멋있다기보다 “어, 여자가?” 그래요. 저는 그런 걸 포기한 지 좀 됐으니까 그렇다 쳐도 안타까워요. 제가 올해 시나리오를 많이 받았어도 대부분 로맨틱코미디, 멜로, 약간의 스릴러, 그리고 휴먼드라마 정도예요. 웬만한 대작들은 남자배우의 것이죠. 그렇다고 제가 꼭 할 테니 이런저런 시나리오 좀 써달라고 부탁드렸다가 결과물이 좋지 않으면 어떡하겠어요. 한편, 액션영화가 만들어진다 해도 할 수 있는 여배우가 몇 없다는 생각도 들어요. 액션 시나리오 하면 저하고 하지원씨, (일동 김윤진씨, 윤소이씨를 거명한다) 그렇게 넷이 다 거절하면 그 영화는 그냥 엎어지는 거잖아요? 코미디도 지금까지 제가 한 역할들을 두고 여자가 살도 찌우고 무지 용기있다고 하는데, “연기인데 그걸 왜 못해요?”라고 반문할 여배우가 얼마나 있을까도 생각해봤어요. 물론, 체질적으로 살이 안 찌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정말 있다니까요! (좌중 폭소) 그 경우는 체계적으로 운동하면서 살을 찌워야 돼요. 저는 시간이 없어 무식하게 먹고 자서 늘리는 바람에 몸이 아픈 거죠. 변하려면 준비도 필요해요. 시스템은 준비가 됐는데 배우가 정작 모두 못한다고 뒷걸음쳐도 안되죠. 솔직히 어린 후배들 보면, 저 애는 체격도 맞는데 왜 안 할까, 지금부터 단련하면 정말 멋진 영화를 찍을 수 있을 테고 이미 멜로를 찍었다면 장르도 넓힐 수 있을 텐데, 욕심이 나요. 저만 해도 5년 전에 비해 한 템포 힘들거든요. 우리도 열심히 해야겠지만 후배들에게 미리 운동도 하고 무술도 배우러 다니라고 말하곤 해요. 저는 미리 해뒀더니 <잠복근무> 때 연습을 많이 못하고 들어가도 나중에는 따라갈 수 있겠더라고요.
-김선아씨는 옆모습보다 정면의 배우인 것 같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똑바로 표정과 동작을 보여주는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본인은 특별히 마음에 드는 앵글이 있나요? =글쎄요. 옛날엔 이것저것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어떻게 나가든 모르겠다 싶어요. 다만, 앙각은 조금 피하죠. 흥분하면 콧구멍이 벌름벌름하니까. (웃음) 밑에서 찍으면 다 볼 거 아니에요. 근데 이젠 하도 많이 다들 봐서 뭘 해도 상관이 없을 거 같아요. 하하하.
-그러고 보니 정면 아닌 신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이 <S 다이어리>에서 청바지만 입고 벗은 등을 드러낸 장면이 있어요. 어깨에서 허리로 흐르는 선이 무척 가파르고 멋있었죠. =허리가 들어간 체형이죠. 제가 수영을 해서 어깨가 떡 벌어지고, 스케이트를 타서 다리도 튼튼해서 박스형으로 옷을 입으면 아무리 마른 상태에서도 몸이 커 보여요. 옷 잘 못 입으면 큰일나는 스타일이죠. (자라목 흉내를 내며) 어깨 패드가 들어간 옷은 절대 못 입어요.
-다음 활동 일정은 시나리오들에 대한 판단이 끝난 다음 나오겠군요. =시나리오도 시나리오지만, 체중도 평소대로 돌아가야 하고, 또 체중뿐 아니라 건강을 되찾은 뒤에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서두르지 않으려고 해요. 병원에서도 피로가 쌓이고 순환이 나쁜 상태라 무리한 다이어트 스트레스를 받아선 안된다고 그래요. 시나리오 주신 제작사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천천히 하려고요. 최근 한두달에 많은 작품을 읽었어요. 그러다보니 지금 머릿속에 여러 인간이 뒤섞여서 혼란이…. (웃음) 그래도 다양한 작품이 들어와 혼자 만족하고 기뻐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