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야, 생기는 게 뭐꼬?” “그거는 달라는 소리도 안 하고 가마이 있는데 사람들이 뭐 갖다주는 거. 돈도 갖다주고, 묵을 거도 갖다주고!” KBS <황금사과>의 애들은 영악하다. 이미 세상사는 데 ‘뭐 갖다주는 게’ 중요하단 걸 안다.
경민(박지빈)이는 감옥에 있는 아버지를 보려고 형사 아들에게 구슬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애들은 그래서 애들이다. 뇌물을 통한 ‘청탁’은 하급이다. 청탁엔 ‘인간관계’가 최고다. 수방사로 가고 싶은 정 소령(이기영)이 박 의원(이덕화)한테 뭘 주나. ‘처남’이니까 다 해결된다. 경민이나 경구(김명재)보다 좀 살아본 경숙(이영아)이가 두 동생에게 가족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도 당연하다. 경민이가 얻어터지면 경구가 싸워야 하고, 경구가 맞으면 경숙이가 나서야 한다. 또 경숙이는 ‘아는 오빠’ 봉구(김수용)의 도움으로 아무 절차없이 노래자랑 대회에 참가할 수 있고, 마을을 ‘먹여살리는’ 박 의원(이덕화)의 국회의원 선거에는 경찰서장부터 동네 청년까지 나서 부정선거를 돕는다. 그래서 박 의원은 농민들에게 당당하게 말한다. 우리 마을이 야당을 뽑으니까 발전이 안 된다고. 대통령 각하께서 얄미워서라도 발전 안 시킨다고.
집과, 마을과, 나라는 모두 ‘가족‘이고, 그들을 먹여살리는 사람은 곧 ‘아버지’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에 반대하는 것은 ‘배신’이다. 그래서 박 의원의 스캔들 상대였던 경숙의 엄마는 의문의 살해를 당하고, 형사들은 범인을 경숙의 아버지로 조작하기 위해 거리낌없이 고문을 가한다. ‘아버지’는 무오류의 존재고, 아버지의 잘못은 그 아버지에게 대항하는 존재들이 뒤집어쓴다. 대신 박 의원은 고문을 당해 거짓 증언을 한 피해자 가족에게 온갖 편의를 봐준다. 무고한 경숙의 가족들은 ‘살인자의 가족’으로 낙인찍히고, 진실을 밝히려는 경숙의 노력은 ‘철없는 것’이 된다. 마치 독재권력보다 ‘소요’를 일으키는 학생운동이 더 욕을 먹었던 것처럼. 그래서 박 의원의 아들이면서도 부정선거를 비판하는 종규(정찬)는 ‘못된 자식’이 되고, 법과 정의에 대한 의지는 온 마을, 더 나아가서는 온 나라에 걸쳐 있는 그 이상한 ‘가족’의 끈끈한 무엇에 의해 꺾인다.
우리는 결국 배부름이라는 ‘황금사과’를 얻었지만, 대신 수많은 ‘착하고 약한’ 희생양을 만들었다. <황금사과>는 우리가 향수의 대상으로만 기억하던 평화로운 농촌도 그 시절의 지배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그래서 ‘모두를 위한 정의’를 위해 ‘모두가 비열’했음을 순박한 농촌 사람들의 얼굴을 통해 폭로한다. 그래서 <황금사과>는 <제5공화국>보다 오히려 더 정치적이고, 독한 풍자가 살아 있다. 그 시절의 어른도, 아이도, 농민도 모두 알고 있었다. 이제 그 당시의 그들을 정면으로 바라봐야 할 때가 됐다. 아무래도 김운경 작가가 이번엔 단단히 각오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