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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랑해도 되나요?>의 사라 제시카 파커
오정연 2005-12-21

6년 내내 화려했던 그 여자, <섹스&시티>의 사라 제시카 파커. 시리즈가 지속된 1998년부터 2004년까지, 그의 발을 감쌌던 마놀로 블라닉은 최고의 명품 구두 브랜드에 등극했고, (본인은 이에 대해 과장이라 항변했지만) 파커는 연간 380억원의 소득을 올리는 뉴욕 최고의 여성 갑부로 떠올랐다. 네번의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부문 여우주연상, 에미상 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 그리고 수많은 상이 그의 것이 되었다. 연말이면 베스트 드레서, 청소년들이 닮고 싶은 스타 등에 선정되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 X세대들의 과소비 허영증세는 (<섹스&시티>에서 파커가 연기한 배역의 이름을 따서) 캐리 브로드쇼 증후군으로 불린다. 어마어마한 하이힐을 신고 뉴욕을 휘젓고 다니기 전, 그는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았을까.

사라 제시카 파커에 대한 많은 글은 그의 길고도 다양한 경력을 언급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어느 순간 시대의 아이콘이 된 그가, 27년 경력의 중견배우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파커가 13살부터 스크린과 브라운관, 무대를 옮겨다녀야 했던 이유가 가족의 빈곤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나의 유년기는 마치 디킨스의 소설과도 같았다. 전기가 끊긴 적이 있을 정도”라는 파커의 회고는 어이가 없을 정도지만, 아버지가 다른 8남매를 거느린 파커의 어머니가 대부분의 아이들을 연예계로 투입한 것만은 사실이다. <사운드 오브 뮤직>과 <애니> 등의 뮤지컬에서 시작해, 몇몇 TV시리즈를 거쳐 <풋루스> 등의 알려진 영화 속 기억할 수 없는 조연이었던 그는, 백치미 가득한 LA 처녀로 등장한 <LA 스토리>를 통해 조금씩 알려졌다. 못말리는 새끼마녀(<호커스 포커스>), 별볼일 없는 여배우(<에드우드>), 개와 머리가 바뀌는 비운의 앵커우먼(<화성침공>), 균형잡힌 몸매에 지성까지 겸비한 해상경비대(<스트라이킹 디스턴스>)… 40편에 달하는 필모그래피는, 뜻밖의 행운을 거머쥔 반짝 스타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상상 밖의 사실은 그의 과거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정착보다는 자유를, 변변찮은 남자보다는 뉴욕을 택하겠다 천명했던 화려한 싱글 뉴요커는 이제, 결혼 10년차를 바라보고 있다. 니콜라스 케이지, 존 케네디 주니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을 거쳐 동생의 소개로 만난 매튜 브로데릭과 5년 연애 끝에 결혼한 파커의 가장 큰 즐거움은, 3살 난 아들 제임스와 함께하는 저녁 산책을 즐기는 것. “친구들에게 결혼생활이 지루하다는 말을 해요. 하지만 그건 미혼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농담일 뿐이죠.” 몇년 동안 캐리의 말을 경구삼았던 이들에겐, 실로 청천벽력 같은 얘기다.

그러나 입이 딱 벌어지는 고가 브랜드를 매일같이 갈아입던 캐리를, 파커와 별개로 생각하는 것은 아직까지는 불가능하다. <우리, 사랑해도 되나요?>는 <섹스&시티>가 시작된 이후 몇편의 저예산영화에 출연했을 뿐인 그가, 시리즈의 종영 이후 처음으로 선택한 개봉작. 성공한 전문직 여성, 매리디스가 남자친구의 가족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내면서 벌어지는 야단법석을 그린 이 영화 속 많은 장면은 부담스럽게 화기애애한 중산층 가족 사이에서 캐리가 겪을 법한 에피소드를 연상시킨다. 매리디스는 털털한 가족들이 이해할 수 없게끔 깔끔을 떨고, 일상적인 스킨십도 그에겐 끔찍한 벌레처럼 싫을 뿐이다. 그러나 매리디스의 알 수 없는 매력은 우리가 캐리 혹은 파커에게 끌린 지점에 대한 대답이 되어준다. 도시 아가씨의 병적인 면모와 감출 수 없는 무례함 때문에 도저히 사랑스러운 구석을 찾을 수 없다가도, 어느 순간 딱할 정도로 인간적인 그 모습에 동조할 수밖에 없다는 점까지, 매리디스와 캐리는 닮아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경로로 스타덤에 오른 제니퍼 애니스톤은 파커와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깍쟁이여도 어리숙했던 레이첼 그린(<프렌즈>)과, 반복되는 실수에도 당당했던 캐리 브로드쇼. 브래드 피트와의 요란한 만남과 헤어짐으로 연일 타블로이드 신문을 장식했던 애니스톤과 달리, 파커의 사생활은 비교적 알려진 바가 없다. 에미상 수상소감에서 남편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은 것으로 불화설이 떠돌았던 것 정도가 전부. 사람들은 파커의 사생활이 아닌, 그가 입는 옷과 그가 신는 신발을 궁금해한다(그는 임신 당시에도 몸에 달라붙는 임부복을 유행시켰다). 애니스톤이 서글픈 실연을 함께 아파하고 싶은 친구라면, 암울한 과거조차 농담처럼 고백하는 파커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따라하고 싶은 우상이다. 별이 반짝이는 방법이 어디 한 가지 뿐일까. 평범하고 평범한 우리로선, 스타는 다양할수록 즐거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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