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작업녀’ 한지원(손예진)은 타깃 안으로 들어온 남자를 놓치는 법이 없다. 상대의 자동차를 받은 뒤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어대는 그녀의 수작에 안 넘어오는 남자는 별로 없다. 서민준(송일국)의 실력 또한 만만치 않다. 자신이 찍은 여자에 대한 풍부한 사전조사와 ‘제휴’관계를 맺고 있는 점집 등을 활용해 안다리, 밭다리를 걸어대니 상대 여성 쓰러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리고 마침내 프로 중의 프로라 할 만한 이 두 ‘선수’가 서로를 작업 상대로 골랐으니 이제 남은 건 진검승부뿐이다.
<작업의 정석>에서 묘사하는 작업의 세계에는 두 가지 모드가 있다. 공격 모드와 수비 모드가 그것. 상대방을 자신에게 홀딱 빠지게 하기 위한 공격도 중요하지만, 극중 지원의 말처럼 상대방의 공세에 쉽게 넘어가지 않으면서 “나를 간절하게 원하게 만드는 것” 또한 작업 남녀가 항상 염두에 둬야 할 필수 덕목이다. 민준이 자동차 사고를 낸 지원에게 무심하게 “내일 병원에서 보자”고 말하거나 지원이 민준의 서가에서 만화책을 찾아내는 일 등은 그런 의도에서 비롯된다. 두 사람은 자신의 기술이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에 당황하게 되고 공격의 강도를 높이게 된다. 그런데 공방이 치열해지면서 남녀의 행동은 점점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이들의 공격과 방어는 상대를 유혹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골탕먹이거나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게다가 남자를 애타게 하기 위해 초대형 파티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지원이 고작 유럽행 항공권을 위해 섹시 댄스를 추는 등 이들의 캐릭터는 이해할 수 없는 점투성이다.
<작업의 정석>은 남녀가 티격태격하는 가운데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는 스크루볼 코미디의 공식을 피해 가려 하지만, 이 와중에 캐릭터의 내면과 관객을 이어줄 끈마저 놓쳐버림으로써 로맨스와 코믹함을 반감시킨다. 트로트 리듬에 몸을 맡기고 “쌔끈하게 땡기네” 따위의 대사를 하는 손예진의 이미지 변신이나 화려하기 짝이 없는 부유층의 라이프 스타일 또한 볼거리는 될지언정 영화를 풍부하게 하는 데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자잘한 에피소드라는 구슬이 서말이지만, 이들을 꿰어낼 바늘과 실을 갖추지 못했다는 얘기. <작업의 정석>은 플롯과 캐릭터라는 ‘영화의 정석’이 아쉽게 느껴지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