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는 사실뿐 아니라, 앞으로도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서 시작된다. 여기에 그 슬픔이 자손들에게 유전된다는 ‘업보’까지 짊어진 자들이 있다.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될 때, 그 자리에 있던 그 사람들이 그렇다. 원폭의 피해는 당사자뿐 아니라 그 자손들에게까지 계속된다.
<저녁뜸의 거리>는 10년 전 원폭을 경험한 히로시마의 한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단편 <저녁뜸의 거리>와 피폭자 엄마를 둔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중편 <벚꽃의 나라>로 구성되어 있다. 멀리 떨어져있는 동생을 만나러 가기 위해 한푼 두푼 알뜰하게 살아가는 히라노는 평범한 아가씨처럼 보이지만, 시체가 떠다니던 강가와 죽은 여인에게서 나막신을 벗겨서 신어야 했던 지옥 같은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저녁뜸의 거리>), 나기오는 단순한 천식도 피폭의 영향이라는 오해를 받으며 엄마가 피폭자이기에 사랑하는 사람도 제대로 만나지 못한다(<벚꽃의 나라>).
<반딧불의 무덤>이 전쟁의 참혹함을 그린 수작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면서도, 동시에 이 작품이 은연중에 드러내는 ‘피해자 일본’의 얼굴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룬 <저녁뜸의 거리> 역시, 이런 모순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지만, ‘세계 유일한 피폭국이 원폭의 참상을 모른 채 평화를 누리는 이 꺼림칙함’을 극복하기 위해 그렸다는 작가의 말처럼, 가해국이든 피해국이든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의 참혹함은 경중을 가릴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어느 캐릭터고 착해 보이는 수채화 같은 화풍이 인상적인 이 작품은 2004년 일본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