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 그 제목과 2차 세계대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다는 점만 놓고 보면, 이 영화는 영국의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을 주인공으로 한 전기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처칠>은 처칠을 비롯한 여러 역사적 실존 인물에 대한 관객의 지식과 영화에서 창조한 상상의 세계를 서로 어긋나게 하고, 이로부터 웃음을 유발시키는 코미디영화이다. 물론 이 영화에서 필요로 하는 관객의 세계사적 지식은 이들 인물이 얼마나 뒤틀리게 재현되는지를 알 정도면 충분하다(물론 전혀 없어도 무방하다).
영국의 명문가 출신으로 2차대전 당시 노년의 나이였던 처칠을 미국 국적에 20대의 젊은 장교로 회춘시키고,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한 그의 뛰어난 문장력을 암컷을 꼬드기는 수컷의 작업 기술로 변형시키는 것만으로 <처칠>의 웃음 유발 전략은 명백하게 드러난다. 물론 이러한 인물의 전도는 처칠에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의 대통령까지 역임했던 아이젠하워(로마니 말코)는 백인 조력자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흑인일 뿐만 아니라, 공주 시절의 엘리자베스(니브 캠벨) 여왕은 꽤 섹시한 매력을 지닌 열혈 애국자다. 또한 영국에 온 히틀러는 ‘영광스럽게도’ 찰리 채플린으로 오해받기 일쑤이고, 당시 영국의 국왕이었던 조지 6세는 술주정뱅이에 엄청난 짠돌이로 등장한다.
‘전쟁’을 소재로 하면서도 야외가 아닌 주로 실내에서 사건을 전개시키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처칠>은 가치가 전도된 인물들이 서로 좌충우돌하면서 발생하는 슬랩스틱적인 웃음에 승부수를 던진다. <처칠>은 이러한 면에서 충분히 엉뚱하고 혼란스럽지만, 이를 웃음으로 연결하지 못하는 치명적 약점을 지닌다. 즉, 주커 형제나 멜 브룩스의 패러디영화들이 보여주었던 혼란 자체가 웃음이 되는 ‘무질서의 쾌락’과 비교해볼 때, <처칠>은 그저 산만할 뿐이다. 거기에 처칠(크리스천 슬레이터)과 엘리자베스의 로맨스나 역사의 비밀이랍시고 반전삼아 보여주는 영화의 엔딩 역시 충분히 황당하지만 웃음은 없다. 데뷔 초기에 반항적이고 섹시한 분위기로 인기를 모았던 크리스천 슬레이터와 니브 캠벨이 분전하는 모습이 오히려 안쓰럽게 느껴질 무렵이면, 두 사람의 하소연이 들린다. ‘우리 어쩌다 이렇게 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