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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드라마 [1] - <그레이 아나토미>
이다혜 2005-12-03

해외 메디컬 드라마 시리즈의 참을 수 없는 매력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인간이 평등함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은 죽음 앞에서뿐이다. 아름다워도 죽고 젊어도 죽고 돈이 많아도 죽고 인기가 많아도 죽는다. 죽음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현대 의학이 발전하기 전까진 그랬다는 것이다. 사람은 이제 쉽게 죽지 않는다.

메디컬 드라마는 바로 그 생사의 기로에서 탄생한다. 중환자들을 살려내기 위해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은 분주히 움직인다. 환자들은 죽음의 기로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메디컬 드라마에서 감동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메디컬 드라마는 전통적인 <종합병원>(제너럴 호스피털) 식에서 여러 변형으로 다시 태어났다. 의사들은 더 위험한 환자의 시술을 하기 위해 경쟁하기도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신원도 불분명한 외국인의 성형수술을 해주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병원 내에서 연애질을 하다가 떼로 매독에 걸리는 일도 있다. 때로 천사 같고 때로 신 같던 의사들의 이중생활을 즐겨보시라.

결국 의사도 사람인 것을, <그레이 아나토미>

<그레이 아나토미>는…

인턴의 삶은 고달프다. 환자는 죽어가고 연애가 당신을 물먹인다면 더더욱.

의사들을 소개합니다

<그레이 아나토미>의 의사들은 사실 의사는 아니다. 주인공은 바로 인턴들. 이들 중 다수가 일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탈락할 것이며, 그게 아니면 실력이 안 되어 탈락할 것이다. 인턴들은 위험한 수술에 자원해서 경력을 알아서 챙겨야 하고, 친구의 얼굴을 한 경쟁자들과 싸워 자신의 자리를 얻어내야 한다. 주인공들은 의사라기보다 아직 학생이다. 직접 치료해본 질병보다 책에서 본 게 더 많고 알고 있는 것만큼 공부해야 할 것이 많은. 이들은 앞으로 의사라는 직업으로 평생을 살 수 있는가의 문제와도 맞서 싸워야 한다. <그레이 아나토미>는 미국 <ABC>에서 지난 3월27일부터 5월22일까지 1시즌 9회가 방영되었는데, <위기의 주부들> 방영이 끝난 뒤 깜짝 히트를 기록하면서 현재 미국에서 2시즌이 방영 중이다. ‘그레이 아나토미’라는 제목은 의대 본과에서 배우는 해부학 교과서의 제목인 <그레이 해부학>(Gray’s Anatomy)에서 따온 것으로, ‘그레이’의 철자 하나만 다른 주인공 메러디스 그레이(Grey)의 이름을 의미하기도 한다. 크리스티나를 연기한 샌드라 오는 2005년 에미상에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주인공들이 비교적 젊은 나잇대의 학생이라는 점은 학생들간의 로맨스(불륜을 포함한)를 꽃피우는 데도 제격인 설정이다. 불특정 시간대를 일에 바쳐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의사들도 같은 서클 밖에서 연인을 찾기가 불가능한 모양으로, <그레이 아나토미>의 주인공들은 너나할 것 없이 연애에 정신을 쏟고 있다. 외과를 주무대로 삼고 있기 때문에 긴박감 넘치는 수술장면과 수시로 죽어나가는 환자들도 드라마의 중요한 요소지만, 연애사건 또한 그런 것. 주인공 메러디스는 새 병원으로 출근하기 전날 하룻밤을 같이 보낸 상대가 상관인 닥터 셰퍼드임을 알게 된다. 메러디스의 집에 하숙하는 조지는 그런 줄도 모르고 메러디스를 좋아한다. 메러디스의 집에 하숙하는 또 다른 인턴인 이지는 성공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안하무인의 알렉스와 티격태격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사이가 야릇하게 좋아진다. 크리스티나는 상관인 닥터 버크와 자기 시작한다. 종횡무진하는 연애사건들은 1시즌 마지막에 이르러 병원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매독에 걸렸음을 알게 되면서 절정에 이른다. 원나이트 스탠드로 매독에 걸리거나 임신을 하는, 헛똑똑이 의사들의 대단히 ‘인간적인’ 이야기.

왜 <그레이 아나토미>인가?

메디컬 드라마답게 적절한 시점에 눈물과 감동을 주는 것을 잊지 않는 <그레이 아나토미>의 매력은 주인공들이 의사라는 소명을 ‘직업’으로 바라보면서 흥미롭게 진행된다. 환자의 생명을 구하면서 보람을 얻지만, 그 보람을 앞으로 계속 얻기 위해서 그들은 병원이라는 직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들은 동료를 속이거나 남의 환자를 가로채기도 하고, 드문 수술일수록 눈을 번뜩이며 달려든다. 위중한 환자는 그들에게 있어 ‘좋은 경험’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레이 아나토미>는 음악의 사용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발휘한다. KBS의 <그레이 아나토미> 홈페이지에서는 에피소드별로 어떤 음악이 수록되었는지 그 리스트를 제공한다.

‘사랑과 감동의 메디컬 드라마’, <ER>

<ER>은…

‘원조’의 힘은 강하다. 조지 클루니를 낳았으며 12시즌까지 순항 중인 메디컬 드라마.

의사들을 소개합니다

<ER>이 있기 전 <제너럴 호스피털>이 있었으니 ‘원조’라고 치켜세울 수만도 없는 노릇이겠지만, 무려 12시즌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한국에 소개되어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드라마라는 점에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는 최고의 메디컬 드라마. ER은 응급실을 의미하는 ‘Emergency Room’의 약자로 에미상 최우수 드라마상을 수상했으며, 베스트셀러 작가인 마이클 크라이튼(<쥬라기 공원> <펠리칸 브리프> 등)이 기획한 드라마이다. 응급실의 특성상 <ER>의 가장 큰 매력은 속도감이다. 환자들은 쏟아져 들어오고 여기저기서 급하게 의사를 찾는 호출이 이어진다. 드라마보다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형식으로, <ER>은 숱한 전문용어들을 쏟아낸다. 신경을 써야 할 환자도, 등장하는 의사들도 너무 많다. 마치 점묘화처럼 하나 하나의 에피소드가 거대한 그림을 만들어내고 감동을 엮어내는 식으로 진행되는 것.

국내 방영 당시 홍보 문구였던 ‘사랑과 감동의 메디컬 드라마’라는 표현은 <ER>을 설명하는 가장 적확한 말이다. 의사들의 사생활에 얽힌 이야기들도 볼거리지만 무엇보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깊은 교감은 싫증나지 않는 깊은 우물처럼 끝없이 이야기를 길어올렸다. 긴급 상황에 환자가 들어오면 환자에 몰려든 의료진들 주위로 뛰어들 듯 들어온 카메라가 어지럽게 떠다닌다. 속도감 있는 편집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응급실의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는 느낌을 준다. 환자는 비명을 지르고 보호자는 울부짖으며 음악 대신 타악기의 둥둥거림이 심장 고동 소리를 연상시키며 보는 사람을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들이 늘 쏟아져 들어오고, 죽음에도 익숙해져야 하는 곳에서 꺼져가는 생명을 살려내는 <ER>의 의사들은 자연스럽게 존경심과 따뜻함을 이끌어낸다. 피곤에 절어 있으면서도 환자가 실려오면 새벽 4시에도 아침 9시처럼 말짱한 정신으로 달려나가야 하는 의사들의 고단한 삶은 시청자들의 공감과 사랑을 한몸에 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ER>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1시즌부터 4시즌까지는 현재 DVD로 국내 출시되어 있다.

왜 <ER>인가?

오랜 시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시리즈답게 <ER>은 최고의 스타를 배출해냈다. 철없는 바람둥이 소아과의인 닥터 로스를 연기한 조지 클루니는 <ER>을 떠난 5시즌까지 시리즈의 한 기둥을 이루었다. 역설적이게도, 그가 담당한 소아과는 <ER>에서 가장 한가한 편으로, 동정심 많은 간호사 캐롤과 사귀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2시즌부터 등장한 닥터 케리 위버는 냉정한 성격과 특유의 모난 면으로 병원의 트러블메이커가 되지만, 가장 오랫동안 시리즈를 지킨 인물이기도 하다. 4시즌에서는 <C.S.I. 라스베거스> 시리즈에 나오는 조지아 폭스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주역배우들이 교체되었는데, 최고의 인기캐릭터였던 로스가 5시즌 이후 응급실을 떠난 것을 시작으로, 8시즌에서는 불같은 성격의 외과의사 벤튼도 아들과 함께 살기 위해 응급실을 떠났다. 가장 변화가 컸던 인물의 이동은 바로 8시즌에 있었던 응급실장 그린의 사망. 수석 레지던트이자 일 때문에 결혼생활까지 희생했던 그린은 뇌종양으로 사망한다. 그뒤 시즌1부터 신참으로 닥터 벤튼의 엄격한 훈련을 받은 카터가 응급실장을 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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