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광 시대>라는 책을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김유정이나 채만식 같은 30년대의 작가, 지식인들이 ‘황금’에 미쳐 있었다는 사실은 꽤 흥미롭다. 무지몽매한 서민들이 아니라, 그 고상하고 유식한 사람들이 신기루를 좇아다녔다는 것은. 하긴 시대 여하를 막론하고, 황금을 포함한 횡재를 꿈꾸는 ‘배운 자’들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았다. 도박에 전 재산을 탕진하고, 허무맹랑한 꿈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몽상가들.
왜, 무엇이, 그들의 합리적인 이성을 막아버린 것일까. 도박이 사람들을 매혹하는 이유는, 누구나 돈을 딸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누구나 승자가 될 수 있다는, 그 달콤한 속삭임에 넘어가는 것이다. <MBC 스페셜-보물사냥>에 나오는 보물 사냥꾼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이번에는 확실하다고. 저번에는 무엇이 부족했지만, 이 장소는 분명하다고. 누가 보기에도 허접한, 조잡한 지도를 놓고, 엄청난 보물이 묻혀 있는 장소라고 확신한다. 물론, 그 확신이 없다면, 그들은 보물 사냥꾼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필리핀에서 만난 보물 사냥꾼은, 태연하게 말한다. 깨달음을 얻었다고. 보물에 희생된 자들이 많기 때문에, 그냥 들어가면 그들이 눈을 가려버린다고. 그들에게 빌어 그들이 허락해줄 때만, 보물을 찾을 수 있다고. 모든 것을 성 베네딕트에게 물어보고, 그의 말대로 행동한다고 말하는 보물 사냥꾼의 신념은 확고하다. 당연하다. 신실한 신도일수록, 눈앞의 보물은 더욱 밝게 빛나는 것이니까. 결코 잡을 수는 없을지라도.
세상에는 수많은 보물이 있다. 한국의 보물은 대부분 일본군 것이다. 약탈한 물건이 있고, 그것들을 급히 숨겨두고 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보물찾기가 성행하는 이유는, 수많은 영주들의 싸움 속에서 망해간 일족이 많았기 때문이다. 망해가면서, 언젠가 부흥하기 위하여 보물들을 숨겨놓았다는 말이 전해지는 것이다.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말인지는, 누구도 확언할 수 없다. 다만 누군가가 도전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비웃고. 보물 사냥꾼은 이상과 신념으로 살아가는 자이고, 비웃는 자는 현존하는 가치로 살아가는 자다.
<MBC 스페셜-보물사냥>이 재미있었던 것은, 한국에도 그토록 많은 보물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보물찾기의 허망함이 와닿은 것도 아니다. 나는 일본군이 제주도와 부산에 뚫어놓았다는 수많은 동굴이 가장 궁금했다. 그 동굴 속에는 지금 무엇이 있을까, 가 아니라 그 동굴의 역사는 무엇일까, 였다. 미군과의 최종전을 위해, 제주도를 요새화하려 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게 구체적으로 진행되었는지는 잘 몰랐다. 미국이나 중국에 비하면 엄청나게 좁은 나라이지만, 그것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세상에는 숱한 보물과 비밀이 존재한다.
보물 사냥꾼은 물론 몽상가이지만, 세상에는 그들이 필요하다. 몽상가들은 결코 세상의 법칙이나 관습을 따르지 않는다. 그들이 따르는 것은, 오로지 욕망과 신념이다. 그들이 꿈꾸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모든 것을 정당화시킨다. 그들은 세상을 파괴할 수도 있지만, 그들이 아니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어리석지만, 그 어리석음이 꿈을 현실로 바꿀 수 있다. 아니면 말고. 그들을 비웃는 값싼 즐거움이라도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