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주위에 절망이 삼켜버린 젊음이 서성거린다는 느낌을 갖게 됐다. 대학을 졸업한 뒤 같은 과 여자동기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군대를 제대한 뒤 한때 함께 공부했던 후배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딘가 발을 헛디딘 듯 망연자실했던 기억이 난다. 전태일의 분신처럼 세상을 뒤바꾸는 외침이 아닌 자살, 딱히 누군가가 기억하길 원치 않는 자살을 나는 아직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수많은 책과 영화가 절망과 싸우는 법을 가르쳐도 자살자가 나오는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그럼 세상이 원래 그러려니,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는 전형적인 젊은 영화광처럼 보였다. 고작 서너번 마주쳤고 그가 쓴 평을 1년 정도 본 것밖에 없으니 선입견에 불과하지만 첫인상은 그랬다. 1997년 제2회 <씨네21> 영화평론상을 받았던 그는 수상소감에서 “누벨바그 감독들처럼 창작과 평론을 같이 하고 싶다. 사상은 지식과 실천의 결합이라고 생각한다. 능력이 닿는 한 시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밝혔다. 그뒤 1년 정도 꾸준히 <씨네21>에 평을 썼던 그는 방송사 PD 시험을 준비한다고 했고 얼마 뒤 PD가 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축하할 일이었지만 따로 축하 전화를 걸진 않았다. 우린 그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었으니 언젠가 그가 만든 드라마를 볼 날이 오겠구나, 했을 따름이다.
‘KBS PD 자살기도’라는 뉴스를 접했을 때 설마 그게 아는 사람일 줄은 몰랐다. 보도에 따르면 김의수 PD는 <피아노포르테>라는 HD영화를 준비 중이었고 제작비 부족 문제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한다. “잘 만들고 싶었는데, 나의 분신인 작품이었는데 그래서 더욱 애착을 가지고 감독 일만 생각하며 쉴새없이 달려왔는데 영화팀이 약속한 금액만 제때 줬어도 그랬으면 이 모든 일이 없었을 텐데 이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인터넷 뉴스에 공개된 그의 유서엔 그가 얼마나 이 작품에 애착을 갖고 있었는지 절절히 드러난다. 특히 마음이 아픈 건 그가 스탭들에게 미안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 대목이다. “나보곤 감독만 하라는데 그러면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더욱 미안해져. 미안해서 더욱 미안해서 진행할 수가 없어. 새롭게 세팅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그러면 너희들 급료도 계속 못 받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할지 상상이 안 가.”
김의수 PD를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간 것도 이런 여리고 착한 마음이었으리라. 그가 미안해한 마음의 절반이라도 나눠 가진다면 KBS가 지금처럼 책임없음만 주장하고 있진 않을 것이다. 스탭에게 월급을 줬다고 제작비를 방만히 쓴 것처럼 문제삼은 어느 KBS 관계자의 말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런 시스템에서 감독이라는 책임을 맡았으니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그의 자살기도는 젊은 영화광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예사로이 넘길 수 없는 일이다.
아마 그의 영화가 완성됐더라면 몇년 만에 시사회에서 다시 만났을 것이다.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을텐데…. 아무쪼록 그가 무사히 깨어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