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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연인’ 끝낸 전도연

“나를 키운 건 8할이 시련과 실연”

올 가을은 전도연의 계절이었다. 안방에선 사랑에 빠진 대통령의 딸로, 스크린에선 인생의 막다른 길에 이른 후천성면역결핍증 바이러스 보균자인 다방 종업원으로 동분서주했다. 그리고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3년만에 출연한 에스비에스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은 과도한 말 장난식 대사, 설득력 없는 반전과 결말 등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그에 견주듯 전도연의 연기는 빛났다. 영화 <너는 내 운명>은 배우 전도연의 진면목 덕에 흥행과 비평 양쪽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1분 키스신을 7시간 찍어 ‘몸 던진’ 촬영 막내리자 눈물 데뷔 때부터 따라다닌 악소문 때문 이를 악물고 연기로 승부했다

1992년 문화방송 <우리들의 천국>으로 데뷔한 이래, 어느덧 13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30대 중반을 향해 줄달음치는 그지만, 앳되고 귀여운 소녀적 이미지는 여전하다. 이번엔 더욱 진짜 모습이 드러났다. 고화질 클로즈업 화면을 통해 화장기 없는 얼굴을 자신있게 드러낸 전도연.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지만, 솔직히 드러난 희미한 주름자국들은 전도연이 어떤 배우인가를 소리 없이 말해줬다.

이런 이미지의 배경에는 역설적으로 연기라면 모든 것을 바칠 준비가 돼 있는 전도연의 배우로서의 자세가 버티고 있다. 그가 연기한 드라마와 영화 속 캐릭터들은 어느 하나 같지 않았던 것도 그래서였을 터다. ‘몸을 던진다’는 표현이 적확하다. 영화 <해피엔드>와 <스캔들>을 보며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던 사실. 한국의 여배우 가운데 그토록 연기에 몰입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투여하는 이가 얼마나 있었던가. 그러나 스스로는 “여배우치고는 용감한 편”이라며 사소한 듯 웃어 넘겨버리곤 한다.

<프라하의 연인>에서도 그랬다. 대표적인 장면이 김주혁과의 키스신. 1분여의 키스신은 방송 드라마로서는 이례적으로 길었다. 그러나 실제 촬영은 더욱 뜨겁고 길고도 길었다. 무려 7시간 동안 키스신을 찍었던 것. ‘재희(전도연) 휙 돌아서면 그대로 재희 팔 잡아돌려 키스하는 상현(김주혁)’이라고 대본에 적힌 한 줄을 연기하기 위해 감정 잡고 몸을 던지는 시간은 이토록 길었다.

전도연은 <해피엔드>의 최보라 역과 <너는 내 운명>의 전은하 역에 스스로 여우주연상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해피엔드>에서는 정말 많은 걸 버리고 연기를 했기에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리고 이번에 <너는 내 운명>을 하고는, 주위 분들에게 이전 연기와 많이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았거든요.” 전도연의 트레이드 마크인 콧소리 섞인 귀여운 말투가 뜻밖에 당당한 자세와 잘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정작 실제의 전도연은 과감한 도발이나 애교·내숭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털털하고 소박한 성격이 진가를 발휘한다. “남자친구 앞에서는 애교와 내숭을 떨지도 못해요. 선물 받는 것도 쑥스럽고 겸연쩍어서 같이 쇼핑을 다니지도 못하고요. 저도 ‘오빠, 이거 예쁘지? 근데 너무 비싼데 어떻게 하지?’ 하고 애교도 떨어보고 싶은데 말예요.”

나이에 대해 민감하고 성형수술 없이 작품에 나서지 못하는 여느 여배우들과도 전도연은 한참 다르다. “체력이 굉장히 좋은 편인데, 요즘엔 밤샘 촬영을 하고 나면 얼굴에 나타나는 거예요. 요즘 젊고 예쁜 배우들이 참 많은데 덜컥 겁이 났죠. 그렇지만 그들과 견줘서 내가 어떻게 꾸며야지, 이런 생각은 안해요. 저는 나이에 맞게 늙고 싶고 세월을 거스르고 싶지 않거든요.”

긴 연기의 여정을 거치며, 이겨낸 고빗길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시련과 실연이었다”고 전도연은 담담히 털어놓을 수 있는 거다. 연기 인생 시작부터가 그랬다. “한 방송사 탤런트 공채 시험에서 떨어졌었죠.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그 방송사 드라마에 출연할 수 있었어요. 그랬더니 그 뒤에 많은 사람들은 ‘전도연이 뇌물을 썼다’, ‘연기가 아닌 몸으로 승부한다’느니 하면서 갖가지 없는 말들을 만들어내서 정말 많이 힘들었죠.”

그가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다는 말을 들으며 배우로서의 참맛을 보여주기 시작한 영화 <접속> 때, 미확인 소문들은 극에 이르렀다. “<접속>을 찍었을 때였죠. ‘감독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이 돌았어요. 그래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을 이겨내려면 연기로 승부하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생각하고 이를 악물고 열심히 연기했었죠.”

시련과 아픔 없이는 따뜻한 봄날의 포근함이나 인생의 참맛을 깨닫지 못하는 법이다. 전도연 또한 그토록 힘들었던 시절이 없었다면 지금의 전도연은 없었을 터. 그 역시 “그때 힘들었던 기억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작품이 끝날 때마다 눈물을 흘리는 것도 배우만이 알고 느낄 수 있는 아쉬움 때문이다. 이번 역시 전도연은 <프라하의 연인>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눈물을 쏟았다. 특유의 미소를 잃지 않고도 눈물에 붉어진 눈으로 제작진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인물에 푹 빠져들지 않고서는, 극에 모든 것을 던져넣지 않고서는 흘릴 수 없는 눈물이었을 것이다. <프라하의 연인>을 마치며 남긴 전도연의 마지막 말에선 진심이 읽힐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를 찍을 땐 너무 힘들어서 작가와 피디를 원망도 했죠. 그렇지만 그분들 덕에 정말 좋은 작품을 했어요. 함께 고생한 모든 스태프에게 이 영광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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