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는 인생이 있다. 잃어버린 사랑과 추억과 빛나던 어느 한순간이 음식의 맛과 향기에서 되살아난다. 음식을 먹는다는 건 과거를 음미하는 것, 지나간 시간을 현재에 불러오는 것, 그리고 삶의 깊이를 터득한다는 것. 음식의 시각적인 이미지, 그것이 일으키는 후각적이고 촉각적인 상상력, 무엇보다도 음식 속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은 훌륭한 영화적 주제가 되어왔다. 우리는 영화 속 음식을 통해, 그걸 만들고 먹으면서 관계를 형성하고 삶의 구석구석을 나눠온 인간들을 통해 어떤 역사를 본다. 그래서 음식 영화에는 그 음식의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세월의 쓸쓸한 흔적이 새겨져 있다. <터치 오브 스파이스>도 역시 그렇다.
이스탄불에서 사는 그리스 혈통의 소년은 할아버지의 향신료 가게에서 지내며 요리와 인생의 철학을 배운다. 소년은 할아버지에게서 향신료에 비유한 천문학을 듣고 음식의 빛과 소리를 감지하는 법을 터득한다. 그에게 이 공간은 우주였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의 가족은 그리스인인 아버지 때문에 할아버지를 떠나 그리스로 추방된다. 이때부터 소년의 상실의 시간들은 시작된다. 그는 요리를 하며 끊임없이 과거의 추억을 되새기지만, 음식의 맛과 향이 과거와 현재 사이에 벌어진 틈을 메우지는 못한다. 그렇게 소년은 자라 늙어간다. 그는 향신료에 담긴 추억들과 멀어지며 과거를, 할아버지를, 첫사랑을, 고향을 잊었을까.
다양한 음식들의 등장에 겹쳐지는 인물들의 대사는 마치 인생을 축약해놓은 시 같다. 이를테면, “애피타이저는 여정의 신호탄이다. 오감을 자극하는 맛과 향기로 모험 가득한 앞길을 알린다”, “후추는 태양처럼 뜨겁고 후끈하지”, “이스탄불 요리의 설탕은 동화의 해피엔딩이다. 주인공이 품어온 두려움을 말끔히 녹여내주니까. 성찬이 끝나는 슬픔은 디저트로 달래야 한다”와 같은 대사들. 마치 코스요리처럼, 영화적 구성 또한 애피타이저, 메인코스, 디저트로 나뉘어져 있다. 그런데 요리가 끝났을 때의 포만감과 달리, 뒤로 갈수록 영화에 남는 건 낙엽처럼 부스러진 과거의 파편들과 마음에 부는 공허한 바람이다. 사랑하는 사람들도, 그들의 약속도 모두 떠난 뒤, 그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건 눈처럼 흩날리는 기억의 냄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