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단칸방. 고된 하루를 마치고 돌아온 허기진 엄마가 불도 켜지 않고 뭔가를 입속에 넣는다. 등돌린 채 잠을 청하던 아들이 엄마를 부르는데, 그 얼굴이 인간의 것이 아니다. 아늑한 보금자리가 될 수 없는 가정, 더이상은 무조건적인 의지가 될 수 없는 가족. 주인공 동규(유형근)의 악몽으로 밝혀지는 영화의 첫 장면은 가족의 신화를 거부하는 일종의 선언이다.
가출 청소년 동규는 얹혀살던 친구의 집에서 나올 궁리 끝에, 사소한 사고를 빙자하여 도시락 가게 점원인 시내(조시내)의 집에 눌러앉는다.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희한한 가족(?)의 탄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월급을 받지 못하고 식당을 그만둔 조선족 처녀 영희(최가현), 그런 영희를 짝사랑하다가 자신 마저 길거리로 내몰린 식당 주인 만수(김도균) 등이 동규의 후발주자들이다. 시내는 이들의 입주를 별수없다는 듯 받아들이고, 염치없는 객들은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다. 이쯤되면 “시내씨, 너무 착한 거 아니에요?”라는, 시내와 평범한 가족을 꾸리고 싶어하는 청년의 항변은 꽤나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다섯은 너무 많아>의 주요 인물들은 우리 사회의 주변부를 대변한다. 그러나 스스로를 동정하는 법이 없는 이들 모두는 마냥 착하지도, 극단적으로 악하지도 않다. 시내의 집에 머물기 위해 기억상실증을 가장하는 동규가 누나뻘 되는 시내에게 귀여운 성적인 농담을 던진다. 우연한 기회에 모여살게 된 이들은 티격태격하기 일쑤지만, 인생의 굴레로 다가오는 진짜 가족보다 서로를 위하고, 해를 끼친 대상에게 힘을 합하여 나름의 복수를 꾀하기도 한다.
<다섯은 너무 많아>의 미덕은 소박함이다. 첫 번째 장편영화를 찍는 독립영화감독의 시선은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다. 안슬기 감독은 모든 인물의 상황을 일일이 설명하며 동의를 구하려 들지 않고, 적지 않은 인물의 조화를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무겁게 다가올 수 있는 주제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다. 기분 좋게 영화를 보고난 뒤, 영화 속 인물들의 미래를 확신할 수 있는 관객이 몇이나 될까. 안슬기 감독 스스로 욕심이라 여기고 미뤄뒀던 영화적이고 윤리적인 고민은, 그가 두 번째 장편에서 풀어야 할 것으로 고스란히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