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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독립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1]
김현정 2005-11-15

우리들의 일그러진 내무반 잔혹사

영화제는 대부분 놀라움을 주는 축제다. 평소라면 광고의 홍수에 묻혀버렸을지도 모르는 이름없는 영화와 낯선 감독, 그 신천지에 발을 들이는 경이로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용서받지 못한 자>를 보았던 관객이라면 매우 드물게 경험하는 그런 발견의 순간을 체험했을 것이다. 중앙대 영화과 졸업작품인 <용서받지 못한 자>는 문턱을 낮춘 영화적인 재미와 침묵을 깨는 통렬함으로 부산영화제를 뒤흔들었다.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과 뉴커런츠 특별언급, 넷팩상, PSB관객상 수상이라는 쾌거는 그에 주어진 부상. “내가 절실하다면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는 윤종빈 감독으로부터 잊혀진 시간을 캐내어 옥돌로 다듬어 내놓기까지 고난과 환희의 순간을 들어보았다.

군대에서 담배를 배워 온 선배가 있었다. 여자처럼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가지고 있던 그는 이십대 중반이 되어서야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이유를 한번도 말하지 않았고, 험한 일 한번 해본 적 없는 고운 손가락 사이에서, 담배 연기만 허전해 보였다. 그때 처음으로 군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해졌던 것 같다. 그러나 대답은 얻어본 적이 없다. 군대 은어와 족구와 필요없는 잡무 이야기 사이만 미끄러지던 농담, 증발한 것처럼 보여도, 그 부재(不在)가 존재보다 묵직해진 2년의 시간. 윤종빈 감독은 “대한민국 남자 90%가 군대에 갔다왔지만 군대 이야기를 하는 영화는 없었다. 누구도 그 시절을 기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면서 안줏거리처럼 군대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것은 어느 정도 거짓말”이라고 남자들 사이의 기묘한 합의를 설명했다. 그리하여 그 자신이 영화를 만들었다. 비정한 제목을 가진 <용서받지 못한 자>는 침묵으로 묻어둔 2년을 애써 기억해내고, 그 고통을 고스란히 체험하며, 폐쇄된 소집단의 기억을 사회로 확장하는 영화다. 매우 조용한 악몽과도 같다.

군대 시절에 대한 솔직한 회상, <용서받지 못한 자>

허지훈 일병으로 연기까지 겸한 윤종빈 감독은 그의 군대 시절 기억을 청하자 모두 비슷한 경험일 거라며 애써 언급을 피했다. “연출부하고 시나리오 회의를 하는데 다들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대한민국 군대는 그런 곳이다. 나도 원죄의식을 가지고 있어 군대를 잊고 살다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다시 기억해내기 시작했다. 사람은 자신이 나쁜 놈이고 쓰레기라고 생각하면 살아갈 수가 없는데, 군대에서는 그런 사람이 되고 만다.” 원죄란 인간이기에 피하지 못하는 굴레라고 배웠다. 태어났다는 자체가 죄인 것이라고. 그렇다면 군인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짊어지고 살아야만 하는 원죄란 어떤 것인가. <용서받지 못한 자>는 그것을 모른 척하고 싶은 90%의 남자, 그것을 알지 못하는 10%의 남자와 100%의 여자에게, 햇빛이 찬란하던 날의 비극을 보여준다. 평범한 청년들이 어떻게 죄를 지었는가를. 그들은 모두 똑같이 행동했기에, 죽음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해도, 죄의식이 가슴을 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말간 얼굴이 소년 같은 승영(서장원)은 군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중학교 동창이자 선임병인 태정(하정우)은 고집 세고 답답한 승영을 감싸주지만, 눈치가 없는 승영은 오히려 군대를 탓하며 내무반에서 고립되어간다. 그는 물광내는 ‘생활의 지혜’를 알려주는 고참에게도 지겹도록 ‘왜’ 그런 거냐고 들이대곤 한다. 그러나 고참이 되면 군대를 바꾸겠다고 자신하던 승영은 태정이 제대하고 나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바꿀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승영이 새 군복과 군화를 빼돌려 고참에게 상납하는 사이, 승영에게 똑같이 길들여졌던 후임병 지훈(윤종빈)은 홀로 남겨져,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가엾은 처지가 된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평범할 수도 있었을 군대에서의 드라마를 휴가 나온 승영의 하룻밤 사이에 쪼개어 배치함으로써 미스터리에 가까운 긴장감을 얻어냈다. 승영은 자신을 귀찮아하는 태정에게 끈질기게 따라붙으면서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좋은 고참이었다고, 확인받고 싶어하는 승영. 그가 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무엇일까. 그 비극이 드러나는 순간, 승영 또한 비슷한 비극을 맞고, 죄의식은 태정에게 넘겨진다.

내가 있던 군대, 그들이 있던 내무반

윤종빈 감독은 중앙대 영화과 졸업작품을 찍기 위해 2003년 11월부터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고, 쓰다보니 장편영화 분량이 되어버렸다고 했다. 어찌보면 짧게 끝냈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무더운 여름밤 사이로 한 줄기씩 비집고 들어오다가 덩어리가 되어 감정과 긴장의 무게를 한층 높여가는 과거의 에피소드들은 하나하나 신랄하고 뼈아프다. 그것을 되새겨야만 했던 마음은 어땠을까. “여자들은 고3으로 돌아간 악몽을 꾼다고 한다. 남자들은 그런 악몽을 하나 더 가지고 있는 셈이다. 지금도 가끔 내가 군인이 되어 있는 꿈을 꾸곤 한다.” 대학에 들어간 다음해인 99년 겨울 입대했던 윤종빈 감독도 묻었다고 하여 사라지지는 않을 2년을 통과했다.

그는 강원도보다는 따뜻하다고 해도 공수부대였던 탓에 그다지 장점이 없었던 전북 익산 제7공수부대에서 군생활을 했다. “듣기로는 안경을 끼지 않고 신체검사 1등급을 받은 훈련병들 중에서 공수부대원을 차출한다고 했다. 300명이 육군에 지원했다면 그중 2∼3명 정도? 논산에서 훈련이 끝났는데 다시 경기도 광주로 가서 한달 내내 다리근육 키우는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비슷했다. 악의는 없다 해도 땅벌처럼 후임들을 괴롭히는 마 병장 같은 이도 있었고, 여자친구 사진도 보여주었고, 여자친구나 후배의 전화번호도 알려주어야 했다. 상병을 달았을 즈음엔 여자친구가 ‘도망을 갔다’. 몇번 전화를 하던 끝에 그는 이제 헤어진 건가보다 체념을 했지만, 밤에는 혼자서 울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여자들이 그토록 듣기 싫어한다는 ‘술자리 군대 무용담’과 비슷할 뿐이다. 그가 원죄의식이라는 관념으로만 돌아 말했던 기억의 핵은 아마도 승영과 태정과 지훈이 대신 들려주고 있을 것이다.

드라마가 비교적 간결한 <용서받지 못한 자>는 캐릭터를 먼저 분명하게 만든 다음 시작된 시나리오였다. 윤종빈 감독은 굳이 군인이 아니더라도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기존 사회에 저항하는 인물, 질서를 따라가면서 유들유들하게 굴지만 미워할 수는 없는 인물, 이도 저도 아닌, 뭐랄까… 여성적이고 연약한 인물”. 거기에 구체적인 언행과 에피소드를 더하여 이십대 초반 어린 나이에 죄를 얻은 ‘용서받지 못한 자들’이 탄생했다. 이를테면 태정은 윤종빈 감독이 군대에서 처음 만난 고참과 비슷하다. 그 고참은 운동을 잘했고 남자다웠으며 체격도 좋았다. 군대에 가고 나서야 세상엔 대학생보다 농부나 공장의 직공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윤종빈 감독 자신은 아마도 승영과 가장 비슷할 것이다. “승영은 영악한 캐릭터고 지훈과 다르게 타협하여 살아남았다. 그건 자신이 부정하는 세상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군대에 거부반응을 보이면서도 남성다움을 향한 동경과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다. 지나고 보니 내가 그런 인물이 아닐까 싶었다.” 이론적으로는 올바른 인물로 보여 마땅할 승영이 짜증스러운 고문관으로 비치는 건 그러한 자기혐오의 희미한 자국이 묻어 있는 탓일지도 모르겠다.

내무반은 우리 비겁한 얼굴들의 집합소

윤종빈 감독은 승영을 보며 자기자신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에 고르게 퍼져 있는 비겁한 이들의 초상 또한 발견했다. “영화에선 사회 불의에 저항하는 사람이 멋지게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이들도 과거에 저항했다는 386세대 아닌가.” 연세대 학생인 승영은 책과 음악을 좋아하는 듯하지만, 왜 신참은 연병장에 숨어 음료수를 마셔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여 따지고 들고, 자신을 감싸는 태정이 곤란해지는 줄도 모르고 자기 불만만 토로한다. 어쩌면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이내 변절한다. 자신이 타협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은, 의도가 아니라 할지라도, 더욱 가혹한 법이다. 군대와 쌍벽을 이루는 악몽인 고등학교 시절, 윤종빈 감독과 우리 모두는 올바르고 영리한 이들을, 혹은 자신의 고집이 선의의 결과를 부르리라고 믿는 이들을, 목격한 적이 있다.

부산에서 성장한 윤종빈 감독은 십대 시절을 그다지 순탄하게 보내지 못했다(영화 속에서 허지훈 일병은 템포를 늦춘 부산 사투리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공부만 하는 조신한 중학생이었던 그는 남녀공학이라는 이유로 부산외국어고등학교에 들어갔지만, 일학년을 마치고 일반고등학교로 전학했다. “남녀공학이다보니 아이들이 대부분 가식적이었다. 지나치게 깔끔을 떨고. (웃음) 재미없어서 학교에도 잘 나가지 않았는데, 담임선생이 대걸레로 뒤통수를 때려서 피가 솟구치고 쌍코피가 난 적이 있었다. 도저히 못 다니겠다 싶어서 학교를 옮겼다. 남자고등학교 아이들하고 노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학교에는 계속 안 나가게 되더라.” (웃음) 윤종빈 감독은 제대하고 나서 그 시절 고등학교 교사들을 이해하게 됐다. 군대에 갔다온 사람들이 계속 같은 구조를 창출하는 것 같더라고. 그러므로 <용서받지 못한 자>는 2년이라는 짧은 시간과 내무반이라는 소집단으로 응축되지 않아 눈치채지 못했을 뿐인, 우리 모두의 죄악을 들추는 영화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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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최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