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디자이너인 드류 베일러(올랜도 블룸)는 8년을 준비한 신제품을 선보이지만, 작품은 회사에 10억달러 가까운 손해를 입히는 대참사를 부르고 그는 해고된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자살하려는 베일러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의 부고를 알린다. 베일러는 켄터키 루이빌을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고 스튜어디스 클레어(커스틴 던스트)를 만난다. 루이빌에 도착한 베일러는 아버지의 흔적을 따라 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클레어는 그를 위로한다.
<엘리자베스타운>의 초반부는 이 영화의 제작자 톰 크루즈가 주연한 <제리 맥과이어>의 후렴구처럼 보인다. 제리 맥과이어는 재기를 노리지만 드류 베일러는 뜬금없이 떠난 여행을 통해 성찰하는 발길을 택한다. 켄터키의 풍광과 네브래스카의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미국 남부 고속도로를 달리며 클레어가 골라준 음악을 듣는 베일러의 마지막 여행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하다. 이처럼 카메론 크로의 영화는 한적한 오후에 선곡이 좋은 카페에서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는 느낌을 선사한다. <엘리자베스타운>에서도 레너드 스키너드, 톰 페티, 엘튼 존의 음악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린다. 카메론 크로의 아내이자 음악감독인 낸시 윌슨도 변함없이 동참했다.
하지만 알렉 볼드윈과 수잔 서랜던을 조연으로 기용한 캐스팅과 눈부신 음악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타운>은 메인요리가 빠진 만찬처럼 느껴진다. 이 영화는 너무 많은 이야기와 감정 과잉으로 인해 하고 싶은 이야기의 중심을 스스로 무너뜨린다. 재능있는 감독들이 자신과 감정적으로 밀접한 자전적인 이야기나 가족사를 소재로 삼을 때 범하는 실수를 카메론 크로도 피해가지 못했다. 2시간이 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타운>은 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클레어와의 러브스토리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끝내 서성인다. 베일러는 엄청난 실패 뒤 “사람들은 위대함이 아니라 성공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클레어의 대사처럼 “정말 위대한 것은 왕창 망하고도 버티면서 질기게 웃어주는 것”이 아닐까. <엘리자베스타운>은 로맨틱코미디의 장르적 성공을 기대하기보다는 자아를 찾아가는 로드무비에 집중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싶다. <제리 맥과이어>의 간결하고 일관된 이야기의 부재가 아쉬움으로 남는다.